이화여대 최선열 교수                 

바로 10년 전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CNN을 통해 생방송으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정말 전쟁을 보고 있는 것인지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무척 혼란스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사막 한가운데 위성통신용 파라볼라를 마치 우산처럼 펴놓고 CNN기자들은 의기양양하게 미국이 자랑하는 첨단 전자 무기들의 승전보를 외쳐다.


첨단 전자무기들이 총동원되었던 그 전쟁은 CNN에 의해 우리들이 갖고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현란한 전자게임처럼 구성되었다. 첨단 미디어가 첨단 전쟁을 한낱 구경거리로 재현하였던 것이다.  일부 미국인들에게는 분명 신나는 구경거리 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전쟁을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 CNN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전쟁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당시 우려의 소리가 높았었다. 그후 10년간 전자무기와 영상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이제 보다 진보된 영상기술로 21세기 첫 번째 전쟁이 생방송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이다.

우리가 정말 영상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요즘처럼 실감나게 느낀 적이 없을 것이다. 거대한 비행기가 드높은 월드트레이드 센터 빌딩에 꽂히는 기막힌 장면을 보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영상시대를 축복으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비수가 가슴이 꽂히는 것과 같은 영상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되어 우리의 뇌리에 박히면서 사람들은 영상정보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동안 영상시대의 메카인 헐리우드는 엄청난 자본력과 기술력으로 허구의 세계를 너무나 정교하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재현시켜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켜왔다.헐리우드의 오락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영상이미지들은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보였고 이런 영상이미지에 장기간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실제현실보다 영상으로 재현된 현실을 더 현실처럼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영상물의 이와 같은 강력한 현실구성 효과가 우리 인간의 정보처리능력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정보처리 당시에는 메시지의 내용과 그 메시지의 상황적 정보가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되어 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 점차 그 연결고리가 느슨하게 되고 아예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지능력의 한계 때문에 허구라는 상황적 정보가 떨어져 나간 뒤 남는 것은 맥락에서 벗어난 강력한 이미지뿐인 것이다.  상황적 정보가 떨어져나간 이미지들로 인해 우리는 현실과 허구를 착각하는 것이다.

그날 밤 텔레비전을 통해 뉴욕의 무역센터 참사 보도를 처음 접한 사람들중에는 처음에는 "왜 뉴스를 하다가 갑자기 영화를 보여주는 거지" 라고  의아해 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테러의 발상자체가 허구에나 있을법한 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온 장면들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상시대에 살다보니 이제 사람들은 허구적인 영상 이미지를 현실로 착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진짜 현실을 허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당황한 헐리우드가 이 사건으로 다소 움츠러든 것은 사실이며 당분간은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그들의 본질인 오락논리가 이 사건으로 대폭 수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뉴스 미디어 역시 흥분을 가라 안치고 차분하게 사태의 전개를 주시하고 있지만 뉴스의 본질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선과 악의 대결구조의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천문학적 피해를 침착하게 복구하면서 전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여유있게 사태를 관망하는 미국의 영상 이미지와 절대빈곤과 끊임없는 전쟁으로  비참하게 살아가면서 종교적 광기로 미국에 맞서겠다는 아프카니스탄의 영상 이미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들이 맞상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맞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선과 악의 프레임으로 이들의 대결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첨단무기로도 종교적 광기는 쉽게 제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이들의 대결은 해결되어야 한다.

만약 미국이 대대적인 공격을 강행하여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  우리는 10년전과 비슷한 이상한 전쟁을 텔레비전을 통해 또 다시 보게 될 것이다.   10년전보다 전자무기와 통신장비가 더 발달했을 터이니 CNN은 더 현란한 전자 쇼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영상시대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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