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5명 모집에 5,592명 지원, 6.2대 1의 경쟁률. S대 인기 학과 이야기도 S전자 신입사원 모집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2004년 11월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발표한 서울 시내 관공서 아르바이트 경쟁률이다. 방송, 문화 부문 4.3대 1, 관광, 호텔, 여행업 3.5대 1, 일반기업체 3.4대 1, 교육, 학원 2.7대 1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치다. 한유연(22)씨는 지난 겨울방학, 송파구청에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일도 편하고, 몇 시간 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경쟁률이 10 : 1이나 되더라고요. 결국 떨어졌지요.” 주 5일 근무에 비교적 편하다고 알려진 업무 내용과 하루 수당 2만 5천 원이라는 짭짤한 급료 때문에 방학 초마다 관공서 아르바이트에 대학생이 몰리고 있다. 어렵게 뽑힌 대학생,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이제 아르바이트도 관공서가 책임집니다!

(사진 1)관공서 아르바이트는 크게 시청 아르바이트와 구청 아르바이트로 나뉜다. 2004년 겨울방학에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모집한 서울 시내 관공서는 서울시청과 종로구청을 비롯한 25개 구청이다. 지원자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관내에 거주하는 대학생이나 관내에 소재한 대학의 학생으로 제한하고 있다. 선발은 전자추첨이나 공개추첨으로 이루어진다.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의 과세 대상자는 선발 대상에서 제외되고 국가유공자나 생활보호대상자 등이 우선 선발되기도 한다.

관공서가 제공하는 아르바이트 자리이니 만큼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관공서 스스로 밝히는 취지도 대학생들의 이런 기대를 부풀게 하기 충분하다. 2004년 4월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름방학 대학생 아르바이트’에 대한 게시물에서 “대학생들에게 여름방학기간을 활용하여 사회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서울시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취지 무색 관공서 아르바이트, 돈만 벌면 되는 건가요?

실제 관공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학생들은 편하게 일하고 돈도 쏠쏠히 벌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서은혜(24, 대학생)씨는 한 번 뽑히기도 어렵다는 관공서 아르바이트를 4번이나 했다. “강남구청 본청에서도 해보고 구청 산하 수도사업소나 보건소, 시립은평병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산하 기관에서는 그나마 하는 일이 있었는데 본청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네요.” 서은혜 씨는 강남구청에서 주로 정리되어 있는 자료를 꺼내 풀러 다시 정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랬더니 구청 직원 한 분이 ‘학생은 왜 이렇게 일을 빨리 하나? 산책도 하고 놀면서 천천히 일해’라고 하시더군요.” 시킬 일이 없다는 구청 직원의 말에 서은혜 씨는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생각만큼 보람된 일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서은혜 씨, 애초 관공서 측에서 광고했던 행정업무에 대한 이해나 사회생활 경험을 얻었을 것 같지 않다.
자료정리와 복사하기 등 관공서에서 제공하는 업무의 내용으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취지를 달성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관공서 측은 “본인하기 나름”이라고 답한다. “학생들이 소극적이고 시키는 것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가 적극적으로 하면 얻어가는 게 있지 않겠어요?” 종로구 대학생 아르바이트 담당자는 학생들의 자세가 문제라고 말한다. 강남구청 대학생 아르바이트 담당자 주현진 씨는 “학생들은 편한 일만 찾고, 행정업무 중 많은 부분은 학생에게 함부로 맡길 수 없는 내용이니 결국 단순 업무만 시키게 되는 거죠”라며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한계도 한편으로 인정했다.

거저 받는 혜택은 반갑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편한 일만 찾고 능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업무를 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수요 예측이나 교육프로그램 확충 등 준비 없이 대학생 아르바이트 제도를 실시한 관공서의 책임도 적지는 않다. 주현진 씨는 “업무에 필요한 아르바이트생의 수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뽑는 게 사실”이라며 내년부터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수를 줄일 예정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부서 별로 인력 배분 요청을 받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만큼의 학생을 선발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사진 2)학생들의 능력이 부족해 업무를 맡기기 어렵다면 사전에 선발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킬 수는 없을까. 현재 관공서에서는 나름대로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내용은 굳이 교육이 필요 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영등포 구청 대학생 아르바이트 담당 노성기 씨는 “민원인을 대상으로 한 친절교육, 단정한 복장 등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청이나 구로구청도 친절이나 공무원에 대한 호칭 교육 등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육을 실시한다. 종로구 대학생 아르바이트 담당자는 “한 달 정도 일을 할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무슨 전문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겠냐”며 업무교육은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요 인원을 예측하기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하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익한 경험까지 제공하는 관공서 아르바이트의 진짜 장애물은 이 제도를 학생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혜택이라고 생각하는 관공서 측의 태도다. 노성기 씨는 “관공서 아르바이트의 큰 취지 중에 하나는 학비보조”라고 말했다. 학비보조라는 취지도 좋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주는 수당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생각해보자.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가 짭짤한 수당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마치는 학생들의 찝찝한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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