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85일째다. 굼벵이 기어가듯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고 남자친구가 군대에 간지 벌써 100일이 가까워진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지냈던 눈물과 외로움, 서러움으로 얼룩진 나날들. ‘커플 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는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하는 나는 군바리 여자친구다.

그러나 나는 철녀가 아니다. 봄바람에 가슴 설레는 21살 평범한 여자애다. 그러니 우리 사랑이 아무리 끈끈하다고 한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말로만 듣던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겪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 요즘 이런 것들에 흔들린다.

미친 듯이 밀려드는 외로움

내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남자친구가 군 입대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설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는 "나, 군대 가. 기다려줘." 라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1주일 뒤, 거짓말처럼 남자친구는 군대에 갔다.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내 옆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늘 함께 있었고, 모든 걸 같이했던 사람이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날부터 너무 담담해 친구가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내고 문자나 전화가 한 통도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남자친구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하루는 너무 외로워서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1.5리터 콜라 페트병을 남자친구 대신 꼭 껴안고 있던 적도 있다. 그런 날 보고 친구들은 미쳤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에 대한그리움이 도를 넘어, 누가 날 툭 건드리면 그냥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다.<twenty_campus_1>

그 사람만 바라봐야 한다는 부담감

그렇게 외로움에 절어 살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뜨겁게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내가 망부석처럼 내 님만 기다리는 게 쉽지 않다. 어느 날 모임에서 만난 연하의 남자아이와 전철을 탔다. 노량진역에 도착한 전철은 밀려들어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나와 그 남자아이는 본의 아니게 딱 붙게 됐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전철이 다음 역에 도착할 쯤, 출입문에 가까이 있던 나는 사람들에 휩쓸려 내려버릴까 하는 걱정에 남자아이에게 잡아달라고 말했다. 손 정도 잡아주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갈 때 그는 나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순간 내 가슴에 밀려오는 감정이란! 서로 말없이 몇 초가 흐르고  그는 어색하게 손을 풀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 가슴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친구만을 바라보면서 살기에는 잘난 남자들이 너무 많다. 내 삶에서도 또 다른 봄날이 오지 않을까, 괜히 그런 기회를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놓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여자나이 21살, 다시 오지 않는 젊음을 묻혀버리기에는 내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다.

기다림의 외로움을 나누고 싶은 바람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군대 간 남자친구가 남자친구냐? 그냥 딴 사람 많이 만나봐.", "요새 군화들이 더 무서워, 기다리면 독한 여자라고 생각한다니깐?"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아야하는 군인의 여자친구인 나는 이런 말 들을 때마다 상처 받는다. 나에게 잘 견뎌내라고,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나 힘들고 외로워" 라고 말할 수도 없다. 특히 이런 말은 갓 제대한 복학생들에게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다른 남자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변함없이 혼자서 믿고 기다리는 게 힘들어서 하소연이라도 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온다. 그럴 줄 알았다는 둥, 네가 이런 생각하는 거 훈련받는 남자친구가 알면 좋아하겠다는 둥. 무섭다, 복학생들……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는 사람과 하염없이 기다리라는 사람,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모르겠다.

지금은 사랑하니까 <twenty_campus_2>

아직은 모른다.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남자친구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나와 마찬가지로 비자발적 솔로(난 군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그녀들을 이렇게 부른다)의 길을 걷는 동지가 한 명 있다.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 친구는 의연하다. "뭐, 지금 좋아하니까 기다리는 거지, 신경 쓰지 말라니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 그 말이 맞다.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물 흐르듯이 감정이 통할 수 있도록. 내 감정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이 바로 군인 남자친구를 가진 내가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기다림이 아닐까 한다.

 

-나름대로(?) 기다림을 실천하고 있는 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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