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장일범              

발레(Ballet).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루이 14세에 의해 프랑스에서 꽃봉오리를 피우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그 화려한 열매를 맺은 이 고급예술이 21세기 초 한국 청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신체적인 조건이나 테크닉에 있어서나 우리가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되어왔던 이 서양 예술 발레는 이제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연이어 입상하는 뛰어난 기량의 한국 발레 스타들의 등장과 과감한 투자로 한국 예술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국립 발레단이 소련 예술의 상징인 하차투리안의 발레 '스파르타쿠스'(러시아 원어는 스파르타크)를 공연하겠다고 했을 때 난 반신반의했다. 이미 1992년에 볼쇼이발레단이 내한공연을 통해 보여주었다시피 극도로 어려운 고난도의 테크닉과 남성군무의 압도적인 힘 등으로 인해 러시아 발레단 이외에는 전세계에서 로마발레단 밖에 공연을 올린 적이 없는 쉽사리 제작하기 힘든 대작 발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파르타쿠스가 한참 제작되고 있었을 때 '남자 무용수 구함(군무)'이란 신문기사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제작과정은 쉽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는 커크 더글러스(캐서린 제타 존스 시애비)가 주연한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제정 로마 시대 때의 글래디에이터(노예검투사)들의 무장봉기를 다룬 이야기이다. 워낙에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노예들의 무장봉기라는 소재나 주제가 소비에트 리얼리즘과 아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소련 시절 이 발레는 더더욱 특별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쿠스'의 막이 오르기 2주전, 1968년에 '스파르타쿠스'의 볼쇼이발레 초연 때 안무를 맡아 오늘날 한국 무대에까지 올렸으며, 볼쇼이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33년 간 볼쇼이에서 발레 안무를 해온 것 뿐 만 아니라 전세계의 주요극장에서 최고의 무용수들과 자신의 안무를 선보여온 세계적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를 만났을 때 그는 매우 자신있는 어조로 내게 이번 공연의 성공을 확신했다. 첫 막이 오른 지난 8월 27일의 프레미어(국립발레단의 초연 공연, 서양에서는 발레나 오페라, 그리고 뮤지컬에서 첫 날 공연이 가장 중요하다)의 1막이 끝나고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와 포옹하며 감격스런 성공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공연 전부터 성공예감은 있었지만 국립발레단이 이렇게 훌륭하게 '스파르타쿠스'를 역작으로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스파르타쿠스 역의 이원국의 강렬함, 프리기아역의 김지영의 부드러움, 예기나 역의 김주원의 요염함에 이르기까지 주역들의 고른 활약과 개인기 그리고  다이내믹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군무의 아름다움과 러시아에서 공수해온 무대와 의상이 무대를 가득 메워주었다. 특히 러시아 지휘자 알렉산드르 라브르뉴크가 조련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열과 성을 다한 러시아 사운드는 이 발레의 성공에 결정타가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발레리노, 발레리나들의 열연에 화답하는 우리 청중들의 반응이었다. 이미 청중들은 볼쇼이 발레, 메트로폴리탄의 청중들 못지 않은 열성팬들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구나'하고 놀랄 정도로 독무가 끝난 뒤에 그리고 막간의 커튼 콜에 무용수들에게 쏟아지는 갈채와 환호성은 뜨거웠다.   

이튿날에도 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김용걸과 배주윤이라는 또 다른 발레 스타들의 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둘째 날 공연은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파리 발레와 볼쇼이 발레에서 연마하고 있는 두 젊은 주역의 탁월한 테크닉과 연기력은 보다 자연스러워진 군무진과 어울려 잊을 수 없는 '스파르타쿠스'의 명 장면들을 재현해 냈다.
 
무대 위에서는 세계 최고의 발레 안무가와 한국 발레 스타들, 상향 평준화된 고른 군무진의 창조적 만남이 그리고 무대 밖에서는 1천 여명이 넘는 국립발레단 동호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홍보와 도움이 빛나는 무대를 만들어준 국립 발레단의 이번 '스파르타쿠스' 공연은 한국 발레사를 새로 쓰게 한 '꿈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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