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토토로가 이웃집 식구들에게 인사한다. 토토로와 아이들은 곧 매우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아이가 실종된다. 연쇄 유괴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실종된 어린이가 11명이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꿈과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며 이웃집 아저씨를 위로하는 토토로. 하지만 뒤돌아서 자기 배에 주름 2개를 표시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세어보니 주름이 모두 11개. 어린이들의 친구 '귀여운 토토로'가 알고 보니 연쇄 유괴범이었다.

이상은 영화 전문 웹진 NKINO(www.nkino.com)에서 볼 수 있는 영화 패러디만화 <이웃의 토토로>의 줄거리다. '토토로는 우리의 친구'라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뒤집어놓은 마지막 발상이 인상적이다. 그 반전의 주인공 만화가 고리타씨(본명 이제혁, 28세)씨를 만나보았다.

석양이 지는 초저녁 한 카페에서 만난 고리타씨는 자신이 그려낸 만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낯을 가린다. 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존 레논을 떠올리게 한다. "고리타분한 사고를 벗어나자는 뜻의 반어적 표현이지요." 필명 고리타(GORITA)를 설명하는 모습도 차분하다.

28살짜리 98학번

어린 시절부터 그는 만화를 좋아했다. 특히 꺼벙이나 둘리같은 명랑 만화를 좋아해서 책갈피건 달력 뒷장이건 공간만 있다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엉뚱한 애고 나쁘게 말하면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혼자 만화를 그리던 왕따였어요." 그는 혼자 상상하며 만화 그리는 순간이 그저 즐겁기만 한 아이였다. 1994년 대학생이 된 고리타씨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공부는 안하고 매일 만화만 그렸다. "도서관에서 1∼2시간동안 수학 한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춰보면 거의 틀렸어요. 공부가 어려워지니까 이게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제대 후에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1998년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지금 그는 28살, 곧 졸업을 앞둔 4학년이다.  "재수하면서 만화 외에도 점점 영상, 애니메이션, 디자인에 관한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어린 시절 끄적끄적 그려대던 낙서수준에서 벗어나 좀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안돼요.

틈틈이 그린 낙서와 카툰을 자신의 홈페이지(www.gorita.net)에 올리던 작년 10월 그는 NKINO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게된다. 그렇게 시작한 만화 시리즈가 바로 영화 패러디이다. "저는 일단 영화를 안보고 만화를 그려요." 패러디 하려면 당연히 원작을 봐야한다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 패러디를 못해요. 영화를 따라가기 때문이지요." 그는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나 핵심적인 사건, 인물 같은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민다. 영화에 매달리지 않다 보니 캐릭터를 이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패러디가 아니라 캐릭터를 이용한 재창조와 같아요." 영화를 본 후에 그의 만화를 보면 영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새롭게 해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탄생한 만화들은 모두 48개. <영웅본색>부터 최신작 <늑대의 후예>까지 가지각색이다.

혹자는 패러디를 뒤집어 내는 힘, 즉 전복이라고 한다. 서태지와 이재수의 패러디 논란에 대해 역시 '패러디'로 주목받고 있는 고리타씨는 무엇보다 원칙이 중요한다고 말한다. "문화 권력의 집중현상이냐 아니냐를 떠나 저는 이 논쟁이 이익관계를 가진 사람끼리 법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재수가 잘못한 것 같아요. 서태지가 하지 말라고 공문을 보냈는데도 했으니 이건 이재수가 서태지를 '씹은' 상황이지요." 원리원칙을 어겨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싶진 않다는 그의 얼굴에 잠시 굳은 표정이 지나간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당신의 캐릭터를 패러디 한다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당연히 지금은 좋다며 즐거워한다.
 
국내 만화시장의 체감온도는?

고리타씨의 만화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작품들은 거의 일본만화다. 좋아하는 작가도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시 루미코 같은 일본 만화가들이다. 그는 자신이 일본 만화에 물들었다고 말한다. "솔직히 어렸을 때 일본 만화를 많이 봤고 그만큼 영향을 받았어요. 80년대 이후로는 국내 만화는 거의 안볼 정도였지요." 그가 생각하는 일본 만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다양한 장르를 포용할 수 있는 시장이다. 그에 비해 우리 만화는 우선 수요층이 적고 공급자도 다양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나중 탁구부>같은 만화가 나오기 힘들어요." 요즘 애니메이션 사업은 봉이다 뭐다 하지만 출판 만화 시장은 상황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책이 잘 안 팔리기 때문에 출판사가 부도나고 인기 있는 만화가 감소하는 게 국내 만화 시장의 현주소다. "저도 이젠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진출하고 싶어요. 하지만 신인 만화가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리타씨의 냉장고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단편극화 <고리타씨의 냉장고>를 보면 삶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허덕이며 고갈된 상상력에 괴로워하는 한 만화가가 나온다. 이 극화에는 그의 만화에 대한 애증이 묻어있다. "만화 속에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있어요. 때려치우고 싶고, 힘들고 보기도 싫지만 그럴 수는 없지요. 부둥켜 안아줘야 하는, 운명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현실에 문제가 있으면 대응해야지 만화 속으로 숨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고리타씨의 냉장고>의 주인공은 "만화는 진통제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는 고리타 자신이 현실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만화로서 현실을 피하거나 그것에 몰입해서 살고 싶진 않아요. 만화를 내 인생의 신념으로 삼고 삶을 즐기면서 현실적으로 살고 싶어요." 사람은 각자 믿는 신념이 있는데 그것이 깨지면 폐인이 된다. 마치 <x-file>의 멀더처럼, 그는 만약 자신이 실수로 만화를 못 그리는 상황이 된다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거라며 웃어 넘긴다.

"앞으로 뭐하고 살지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것보다 이젠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걱정이 조금씩 든다. 취직을 할 것이냐 만화를 계속 그릴 것이냐. 이 순간은 적어도 '고리타'라는 기발하고 엽기적인 만화가가 아니라 '이제혁'이라는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이다. "마음은 만화 쪽인데 굶어죽지 않으려면 취직해야 해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누들누들>의 작가 양영순처럼 잘나가는 만화가가 꿈이지만 현실에서 고리타가 아닌 '이제혁'으로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고리타의 상상력과 놀라운 반전으로 현실의 이제혁을 이겨내길 바란다. 만화는 아프고 괴로울 때 먹는 '진통제'가 아니라고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서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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