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 - 로이터 한국]의 부지국장 유춘식

김지연 기자<white0164@hanmail.net>


“본래 외신 기자의 특성상 다른 매체의 취재 대상이 될 수는 없어요. 내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얘기는 아마 돌려 말하거나 피하게 될 겁니다.” <Reuters - 로이터 한국>의 부지국장 유춘식(42)씨의 첫 마디였다. 그가 일하는 Reuters는 AP, AFP, UPI 등과 함께 세계 유수 통신사 중 하나. 가장 일찍 뉴스를 뽑아 언론사에 전달하는 통신사들, 세계에서 제일 부지런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로이터 기자되기

유춘식씨는 다른 로이터 기자들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밟았다. 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87년 PC통신 하이텔에 들어가 영문 컨텐츠를 만들고 영자 매거진의 기사를 썼다. 그러다 92년에 선배의 권유로 로이터 입사 시험을 치뤘다. 한 차례 낙방했지만 그 다음 해에 바로 빈 자리가 나서 면접을 보고 취직을 했다. 대학 시절, 기자가 될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는 그의 인생이 전환점을 만났다.                        

그는 로이터에서는 출근 첫날부터 선배들과 똑같은 업무를 요구받기 때문에 인턴부터 시작해서 취직하는 것이 더 좋다고 추천한다. 학점, 전공은 입사 시험에서 참고 대상이 아니다. 학점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수치로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 까다로운 시험 절차를 거친다. 각 상황별로 기사를 쓰는 시험을 거친 뒤, 인터뷰를 한다. 면접관들끼리 응시자들에 관하여 토론을 하고 채용 대상을 결정한다. 여기서 뽑힌 사람은 몇 달간 적응기간을 가지는데, 적응기간에서 탈락하지 않아야 비로소 채용이 확정된다. 예전에는 기사를 맛깔스럽게 잘 쓰거나 발굴력, 추진력이 좋은 사람을 첫째로 꼽았다면 요즘은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과 과감함을 요구한다. 어떤 기사가 가치가 있는지 기준을 잡는 것도 기자에게 달렸다. “군사정권 때까지는 자기 아니면 이 정보가 묻혀버린다는 정의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겠지만 요즘에는 ‘내 독자들이 보면 좋을 것들’을 알아야 할 것들을 골라 보도해요.” 유춘식씨는 도처에 널려있는 정보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기자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고 강조한다.

식은땀 나는 작업 현장

로이터 기사의 가장 큰 특징은 객관성. “남 얘기 하듯이 굉장히 거리감을 두고 써요. 9/11 때도 ‘테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테러라는 말은 감정적인 표현인데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에는 이미 가치판단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죠. 단지 ‘누군가에 의한 비행기 공격’이라고 썼어요.” 지구 밖에서 본 것 같은 객관성을 가지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제한된 시간 안에 얘기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쓴단다. 독도 문제를 어떻게 표현했냐는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분쟁’이라고 얘기한다. “한쪽이 어떤 것을 주장하고 다른 쪽이 그것을 제어할 힘이 없으면 분쟁이지 뭐겠어요. 한국 사람으로서는 뭐라 얘기할 수 있겠지만, 로이터 사람으로서는 할 말이 없어요.” 축구 중계를 할 때 특정 팀을 중심으로 찍을 수 없듯이, ‘공’ 그 자체만을 보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진3-테러>

“같은 업계에 있는 언론사들은 기사를 누가 먼저 올리는지 매초 측정되는데, 이 경쟁에서 져도 안 되고 기사를 못써도 안돼요.” 로이터는 매초가 마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급사태에 대비해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밤 당번이 상주한다. 오보 숫자도 카운트된다. 그는 오보의 숫자보다는 오보를 얼마나 빨리, 정직하게 바로 잡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오보는 독자가 전화해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가 틀려서 정정합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 기자가 스스로 정정하는 것이 관례다. 그는 국내 언론사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도 오보의 인정과 정정이라고 꼬집었다. 스펠링 하나 틀린 것도 정정해야 한다. 로이터는 속보가 생명이므로, 오보의 위험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다. 최대한 오보를 내지 않으면서도 가장 빨리 보도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뉴스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수다. “실업률이 지난 달에 3.6이었으면 이번 달 경제지표가 웹에 뜨기 전에 기사를 써두는 거예요. 3.6 하나, 3.7 이상으로 하나, 3.5 밑으로 하나... 이런 식으로 준비를 하는 거죠.”  
<사진2-오보>

국내 언론은 고정적인 수요가 있는 편이지만 국제 언론은 그렇지 않다. 기사가 재미있고 논리가 정당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구미가 당겨 바로 클릭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자 개인의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회사의 재원을 낭비한 것이 되고, 내 기사 때문에 뒤로 밀린 기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또한 경제에 관한 기사도 중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돈’의 흐름 중심에 위치해 있다. “기사 하나 때문에 투자를 하고 안하고가 판가름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독도 문제도 정치, 외교적 문제만은 아니거든요.” 경제적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것은 뉴스거리가 안된다고 간주된다. 딱 하나 예외는 대홍수 등 인간의 생명, 존엄성과 관련된 뉴스다.

보다 정확하게, 보다 진실하게

유춘식씨는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논리’와 ‘양심’을 꼽는다. “비가 많이 와서 벌레가 많아졌다는 기사가 났다고 합시다. 하지만 농사를 100년 동안 지은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매순간 자기 논리를 의심하고 검증해봐야 해요. 독자들 중에는 그 분야 전문가도 수두룩하거든요.” 논리가 대충 맞는 걸로는 독자들에게 면목이 없으니 피곤해도 도리가 없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를 항상 의심해야 하므로 신경이 민감해진다. 아무리 간단한 기사라도 ‘취재’에 의한 ‘진실’만을 써야 함은 물론이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유족들 반응을 취재해야 해요. 그 상황에서 유족들이 제대로 대답해 주겠어요? 하지만 어렵다고 대충 조작해서 쓰는 것은 당시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분명 ‘비양심적인’ 일이죠.” 필요 없는 단어, 과장 모두 다 빼고 가장 적절한 단어만을 골라 쓰는 노력도 요구된다. “급증이나 살인더위 등의 단어도 기준을 가지고 써야 해요. ‘급증’과 ‘단순 증갗의 차이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해요. 영문 기사에서도 주가는 몇 % 오르면 jump, 몇 % 오르면 rise, 다 기준이 있거든요.” 그는 논리와 양심의 문제를 여러 번 강조한다.

외신은 특히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언제, 누가 말했는지를 계속 데스크에 물어보고 정확한 표현을 찾는다. 이에 비해 국내 언론들은 같은 독자, 같은 생활공간에서 기사를 쓰기 때문에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연하게’ 기사를 써내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경기 회복 기대감에 힘입어 주가가 상승했다는 기사 자주 보이죠? 하지만 급속한 경기 회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채권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는 당연해 보이는 표현들도 이처럼 경우에 따라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아직 정부의 주장일 뿐, 전문가나 소매상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한국, 한국

국제 세계에서 한국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 한국은행의 한 마디에 나스닥 주가와 U.S $가 폭락하는 것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춘식씨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실제의 위상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위상과 진짜 위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갭이 멀어지고 있는지 가까워지고 있는지 신경을 별로 안 쓰는 것 같아요.” 그는 바로 옆 동네 비교만 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이터의 객관적인 기사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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