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랑머리 앤, Philosophy가 무슨 뜻이라고 했지요?"
" 네? 플라스틱이요? 플라스틱이 무슨 뜻이에요?"

철학을 공부하는 '논리로 세상 따라잡기' 시간. 계속 친구와 떠들던 소영이(16)는 선생님의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한다. '노랑머리 앤 '은 염색한 머리를 보고 선생님이 즉흥적으로 지어준 별명이지만 "노란색이 아니라 커피 갈색"이라며 소영이는 계속 못마땅해 한다.

한국 청소년 재단 소속 '도시 속 작은 학교'는 지난 8월 27일부터 31일까지 자퇴 학생들을 위한 프리스쿨을 열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거나 타의에 의해 그만둔 학생들에게 교육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시도였다. 해마다 12만 명 정도가 가출하고 이 중 7만 여명이 자퇴나 퇴학을 하는 현실에서 이들을 위한 교육의 장이 열린 것이다. 

프리스쿨은 기존의 학교와는 달리 '팝송으로 영어 배우기', '밝은 성교육' 등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11시부터 시작되어 하루 3교시로 이루어진 수업은 오후 5시쯤이나 되야 끝이 난다. 마지막 수업은 주로 '역사둘러보기체험', 'NGO탐방' 등 외부 견학으로 이루어졌다. 첫날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성격을 알고 미래를 구상할 수 있도록 MBTI(성격 유형 선호 지표) 검사부터 시행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또 다시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 아직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해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대안학교를 통해 한 달 정도 이러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곧 제도에 익숙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청소년 재단 황인국 상임이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학교는 시간 때우는 곳?

'철학이 먼데?', '세상은 어떻게 졸라 움직이나?' 등 10대들의 언어로 철학을 설명함으로써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던 '논리로 세상 따라잡기' 수업은 결국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떠들거나, 단체로 화장실에 가는 등 참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수업 후 7~8명의 남학생들은 담당 교사의 허락도 없이 노래방에 가버렸다.
" 행동하는 것은 아이들의 자유죠. 저는 내일 아침에 각 가정에 전화해서 아이들이 부담 없이 다시 수업에 올 수 있도록 할 뿐입니다." 도시 속 작은 학교 이경미 교무부장은 아이들의 행동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시간 때우러 학교에 가죠."
다음날 이루어진 '수화로 노래 배우기' 시간. '가다'라는 수화 동작을 설명하던 강사가 학교에 가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미선이(가명,17)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현재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선이는 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날 보다 훨씬 적극적인 자세로 수화 수업에 참여했다. 무단 조퇴를 했던 학생들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친구들과 어울렸다.

"우린 전부다 알아요"

수화 시간부터 조금씩 수업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들은 성교육 시간이 되자 자기가 알고 있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았다. 처음엔 "우리가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며 시시해하던 아이들이 몇몇 질문을 통해 그동안 궁금해했던 사안들을 해결해갔다.
성병과 같은 실질적인 질문에서 성은 쾌락인지 사랑인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까지.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는 아이들은 이 교실에서 한 학교의 학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비슷한 처지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금새 친해지고 그들을 이해해주는 선생님들과도 쉽게 가까워졌다.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불러 그들의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상담을 했다. 복학 또는 대안학교 입학을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적당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었다.
" 이번 프리스쿨이 끝나면 '도시 속 작은 학교'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김선예(19)양은 프리스쿨을 통해 다시 공부할 곳을 찾았다. 

지난 5월 홍익대 김영화 교수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부모의 57.0%, 학생의 68.0%, 교사의 81.1% 가 대안 교육, 대안 학교의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대안 교육은 미흡한 점이 많다. 정부 지원 부재와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식부족은 대안학교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요즘. 자퇴한 아이들도 교육받을 수 있는 장기적인 프리스쿨 프로그램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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