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내가 탄 버스는 새로 운영되고 있는 굴절버스여서 장애인이 휠체어를 장착할 수 있는 장애인석이 두 자리 마련되어 있었다.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탔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장애인석에 자리를 잡으셨다.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한 남학생이 버스에 올랐다. 그는 할아버지 앞에 남은 다른 장애인석에 앉았다. 학생이 앉자마자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시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버스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노인들을 위한 자리에 어딜 앉아. 넌 에미 애비도 없냐.” 그리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마구 퍼부으셨다. 약간 당황한 듯한 남학생은 “어른이 오시면 비켜드릴께요”라고 대답하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구 화를 내시며 그 남학생의 등을 몇 대 때리셨다. 놀란 남학생이 뒤를 돌아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순간, 할아버지가 “튿하고 남학생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나를 비롯해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과격한 일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그건 물론 때마다 다르다. 젊은 사람의 무례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이 드신 분이 타셨는데도 경로석에 떡 하니 버티고 앉아 있거나 일부러 조는 척을 한다면 분명 젊은 사람의 잘못이다. 경로석은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자리다. 경로석이 다 찼다면 일반석에 앉아있다고 해도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려야 한다.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가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시거나 다짜고짜 화부터 내시는 어른들도 계신다. 이런 경우, 버스에서 일어난 일처럼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살펴보자. 물론 할아버지가 장애인석을 경로석으로 착각하신 건 문제가 아니다. 착각하실 수도 있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 버스에 탄 승객들 중에 나이 드신 분은 모두 자리에 앉아계셨다는 사실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서 있는 사람은 한 두명 뿐이었다. 장애인석을 비워두는 것도 좋지만, 그 상황에서 남학생이 장애인석에 앉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어른이 타시면 비켜드리겠다고 공손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 갑작스러운 수모를 당해야 했다.

승객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 그 남학생을 안타깝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서 할아버지를 말리지는 못했다. 왜일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화를 내시는 어른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일거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피하며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이미 할아버지는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어른들을 공경할 줄 모른다는 편견에 빠져 계셨다. 무례한 젊은 사람을 꾸짖으시는 게 아니라, 무례함을 탓할 꼬투리를 먼저 찾아내려 하시는 어른들이 가끔 계시다. 괜히 다른 자리를 두고도 정말 자고 있는 젊은 사람 앞에 가서 화를 내시는 것 같은 경우다. 버스나 전철에 타자마자 강제로 자리를 양보받으시려는 어른들께는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리를 양보해드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드신 어른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젊은 사람이 진심으로 웃으며 자리를 양보해드리고 또 어른은 웃으면서 감사를 표하는 것. 이게 진짜 공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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