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희(44) 목사가 대문 밖을 나서자마자 대문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곁으로 몰려든다. 종종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그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배어있다. 알콜 중독의 후유증으로 얼굴에는 새파란 멍자국 투성이인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친형을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이다. 그는 임 목사의 손을 잡고, 대뜸 감사하다는 말부터 꺼낸다.

"목사님 나오셨어요? 감사합니다. 저 술 끊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잘 살게요."
"네, 그러셔야죠. 잘 하셨습니다."

영등포역에서 파출소 쪽으로 10분 남짓의 거리에 있는 '광야교회-부설 광야의 쉼터' 앞이라면 언제든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광야의 쉼터(이하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임명희 목사는 13년째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자, 윤락여성, 쪽방 사람들과 지내고 있다. 그의 '영등포역 사람들 돌보기'는 지난 '87년 아시아연합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영등포역 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이들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다들 폐기처분 해야할 사람들이라고 흘겨보지만 그들이야말로 가장 사랑 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쉼터 사람들과 함께

임명희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쉼터는 현재 21개의 방에 8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허름한 3층 건물이다. 그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멀리서부터 점심을 먹으러 쉼터에 오는 노숙자들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하지만 쉼터가 정부에게 허가를 받은 지는 이제 겨우 1년이다. 그 전까지 임 목사는 '88년 3평 판잣집에서 시작한 광야교회에 영등포역 주변의 노숙자들과 윤락여성들, 알콜 중독자들을 불러모아 판잣집 공동체 생활을 했다. 2∼3평 남짓한 크기의 쪽방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생필품, 구급약, 장사 보증금까지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쪽방 사람들과 함께 공사장에서 일하고, 돌아다니면서 장사도 했다. 지금은 후원자가 조금씩 늘어 경제적인 사정이 한결 나아졌지만 한 때는 시장에서 국거리를 주워 쉼터 식구들과 나누어 먹은 적도 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판잣집이 무허가 건물이라고 관청 사람들에게 강제로 철거당하기도 하고, 제가 지역 폭력배들에게 끌려가서 맞기도 했습니다. 한밤중에 누군가 와서 저희 판잣집 공동체에 불을 내고 달아난 적도 많았지요." 임 목사는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쉼터에 해가 될까 걱정이 되서다. 임명희 목사는 거의 매일 경찰서, 교도소, 병원 영안실을 찾는다. 쪽방을 직접 방문하면서 상담하는 것도 임 목사의 일과이다. 쉼터 사람들과 쪽방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이들 중에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임 목사가 나서서 해결해 주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쉼터에서 새 삶을 찾은 8쌍의 사람들이 합동결혼식을 통해 가정을 이루었다. 이들 중에는 쉼터에 들어오기 전까지 유흥업소의 포주나 윤락여성, 알콜 중독자였던 사람들도 끼어 있다. 합동결혼식 참가자였던 조상철(42)씨는 전문 도박꾼이었지만 지금은 임 목사를 도와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임명희 목사의 일을 돕기 시작한 나두산(46, 서울 영복교회) 목사는 합동결혼식에 해군본부의 협조를 이끌어 냈다. "임 목사가 밖으로 일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에요.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나왔을 때도 거절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 합동결혼식에서는 제가 나서서 해군 측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해군본부가 결혼식 장소부터 신혼부부들이 이용한 제주도 호텔 숙식비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해군본부의 도움 덕분에 합동결혼식에 든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줄었다. 임 목사는 앞으로도 매년마다 합동결혼식을 마련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방문을 열고 임명희 목사를 찾았다. 신혼여행 잘 다녀왔다는 인사부터 마음 잡고 잘 살겠다는 다짐까지 인사마다 임 목사에게 고맙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방금 장사하러 돌아다니고 왔다며 수세미가 든 가방을 매고 방에 들어선 이춘복(33)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임 목사 칭찬을 한다. "이 분은 선물 받으신 것도 쪽방 사람들,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세요." 

임명희 목사가 꿈꾸는 또 다른 쉼터

얼마 전 임 목사는 쉼터의 좁은 부엌을 무허가로 개조했다는 이유로 관청으로부터 벌금 150만 원의 청구서를 받았다. 예전처럼 쉼터를 강제로 철거하지는 않더라도 임 목사에게 벌금 150만 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그렇지만 임 목사는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없이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벌금을 두려워하는 대신 임 목사는 '광야의 쉼터'에 이어 또 다른 쉼터를 꿈꾼다. 그는 앞으로 영등포역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모든 역에 종합사회복지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역 주변에 떠도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복지센터에서 알콜이나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을 치료하고, 교육도 시키고 싶습니다."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속에는 소외된 사람들과 더 가까이 있고 싶다는 임목사의 바람이 스며있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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