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면 공항은 해외로 떠나는 대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들 대부분이 가방 하나 달랑 매고 떠나는 배낭여행족들. 해외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돌아오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90년대 초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배낭여행은 요즘들어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갔다와야 할 의무코스가 돼버렸다. 해외로 떠나는 배낭여행족 뿐 아니라 국내의 명소로 떠나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시아의 진주' 태국에서...

주재환(23)씨는 제 작년 겨울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여름방학 때 떠난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경유했던 곳이 바로 태국이었다. 이번에는 그 곳을 제대로 보기 위해 떠난다. 그는 그 곳에서 잠시 보낸 하루가 그의 여행관을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태국이라 하면 동남아 패키지 여행 코스, 보신관광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태국만 여행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5년 정도 그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주씨. 그는 과연 무엇을 느꼈기에 이토록 태국에 매료된 것일까.

홀로 여행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그는 유럽 여행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이 서구화가 되어버린 탓인가. 배낭족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유럽의 건축물들과 그 곳의 분위기는 그에게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오히려 태국의 문화는 충격이었다. 같은 아시아임에도 한국과는 다른 풍습을 가진 그 나라. 한 예로 그 나라 사람들은 밥을 직접 짓지 않는다. 태국에 노점식당들이 즐비해있는 것도 이 탓이다. 이처럼 작은 문화적 차이에서부터 드러나는 '태국만의 아시아'에 그는 감탄했다. '치앙라이'로 이동한 그는 '킵'이라는 한 현지인을 알게 된다. 그녀 언니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그는 태국 전통 결혼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3박 4일 동안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동네 사람들은 잔치를 열고 흥겹게 즐겼다. 그는 이 순간이 태국 여행에서의 압권이었다고 말한다.

정글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그곳. 진정한 베테랑 여행자들만이 찾는다는 그곳, 태국. 강원도와 같이 자연 그대로인 곳이 좋다는 그의 말에서 태국의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자전거로 떠난 '땅끝 마을'

작년 12월, 김동휘(21)씨는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땅끝마을로 향했다. 왜 하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났을까.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그는 갑자기 인위적인 것들이 너무 싫어졌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수원에서 출발해서 천안, 논산, 전주, 순창, 광주, 나주, 영암을 거쳐 땅끝 마을인 해남에 다다랐다. 8박 9일 동안 하루에 약 10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렸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점심을 빵으로 때우기까지 하며 땅끝 마을을 향해 다가갔다. 달리는 내내 느껴지는 바람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그에게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었다.

여행 도중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하는 유혹에도 시달렸다. 가끔 트럭 아저씨들이 태워주겠다며 구원의 손길을 뻗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처음 다짐했던 올곧은 마음을 계속 지니고 싶었다. 농담 삼아 '악의 유혹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을 써가며, 그는 자신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목표지점에 닿았을 때의 그 느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한다. 땅끝 마을에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고향인 '울산'을 향해 패달을 굴렸다. 여행 후 몸이 많이 망가졌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느끼고 싶었던 자연을 마음껏 즐겼고 스스로를 이겨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의 변화를 가져다준 유럽여행...

대학교 재학시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일본, 호주 등 주로 선진국만 골라서 여행을 다닌다는 백두현(27)씨는 4학년 2학기 때 떠났던 유럽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다. 사고의 차이! 유럽에서 그는 지금까지 가졌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단순히 '유럽의 자연이 아름답다. 건축물이 멋있다'를 떠나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 불이고 지나가는 자동차는 없다, 어떻게 할 것이냐?' 이 황당한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우물쭈물하는 동안 그가 말했다. 이러한 상황일 때 유럽사람들은 지나간다고 한다. 한국인의 사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오히려 그는 그런 유럽인들의 사고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인간을 존중하는 유럽인의 태도. 그의 대답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자동차가 우선이다. 자동차가 먼저 지나가고 다음이 사람이다. 이러한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사고에선 도덕적이지 못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올바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백씨. 우리나라보다 앞서가는 나라를 여행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들이 단순히 자연경관만을 보러 떠나는 모습을 달갑게 보지 않는다. 닫힌 사고를 깨고 선진국에서 얻은 새로운 발상들을 배워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백씨의 말이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대학생들에게 큰 조언이 되지 않을까.

 

최정민 기자 <jmini0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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