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indigo) : 마디풀과 식물인 쪽 등에 들어 있는 색소 성분. 짙은 남색. 양람(洋藍). 인도남(印度藍). 청람(靑藍).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31)씨 작품집 이름

인디고만의 색깔

나룻배를 탄 푸른 머리의 그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를 따라 인디고의 첫 장을 넘긴다. 수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안개가 인디고를 감싸고 있다.

권신아씨는 작년 봄 그 동안 연재했던 그림들을 모은 일러스트집 '인디고'를 출판했다. 인디고의 의미인 짙은 남색은 깊은 바다의 음울함과 차가움을 연상시키는 색이다. 바로 그 색의 느낌을 인디고 안의 그림들은 담고있다. 인디고는 화사한 색깔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색감의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그림엔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그림의 인물들은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이 많다. 간혹 웃고 있는 인물들이 있지만 이 역시 활짝 웃고 있지는 않다. 이는 그녀의 취향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의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서 그리지 않아요. 원래 슬퍼도 너무 슬프지 않은 중간적인 태도를 좋아하거든요."

인디고 속의 인물들은 가는 팔과 다리, 여러 색깔로 강조된 볼 터치를 하고 있고 꽃과 별 등이 그려져 있는 옷 등을 입고 있다. 그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같이 느껴진다. 그녀가 그림의 소재를 인형에서 일정 부분 얻는 것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무의식적으로 머리에 남겨진 영화, 음악, 여행의 분위기들을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인물 같은 경우는 인형에게서 소재를 얻기도 하지요.” 인형 수집이 취미인 그녀는 여러 종류의 인형들을 모아왔다. 바비인형부터 짱구 인형까지, 다양한 인형의 사진이 인디고 뒷장엔 담겨있다.

인디고 그림들엔 꽃, 열대어, 나비, 별 등이 많이 그려져 있다. 아름다운 꽃이 벽지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여쁘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이미지들만으로 인디고가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각 부분이 뜯어진 것을 실로 다시 꿰맨 것처럼 보이는 앨리스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머리를 보며 서있는 그림은 약간의 오싹함 마저 들게 한다. 사실 이것이 그녀가 좋아하는 취향이다. " 그로테스크한 것을 좋아해요. 팀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같은 것들이요. 원래 이런 경향의 그림이 더 많았었는데 편집과정에서 제외 됐어요 "

메어리 포핀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녀가 인디고에서 패러디한 동화들이다. 권신아씨의 스타일로 다시 본 동화들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나갈 수 없는 공간에 갇힌 앨리스는 과자가 아닌 약물을 마시고 몸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지가 분리된다. 답답한 현실에서 빠져나가려 해도 출구가 없는 막막함이 보여진다. "제가 동화책까지 읽고 더 이상 책을 안 읽었지요.(웃음) 대중적이면서 줄거리를 비틀고 변형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 동화책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동화를 그림에 차용하는 것을 즐기지요."

권신아의 색깔찾기

권신아씨의 그림을 한 번 본 사람들은 다음에 다시 그녀의 그림을 접하게 되면 "권신아 그림이지!"라는 말이 바로 나온다. 그녀의 그림 스타일이 워낙 독특하기에 다른 그림들과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색보다는 파스텔 색깔을 많이 쓰고 수채화처럼 번지는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몽환적인 꿈을 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의 스타일은 대학 시절 만들어졌다. "대학교 1학년 때 만화동아리 결에 들어갔어요. 그림체와 스토리 쓰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어요. 그때부터 그런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같네요."

그녀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으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저 좋아서 일러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녀가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한 곳은 페이퍼라는 잡지이다. "만화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던 중 페이퍼에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들르게되었어요. 페이퍼 편집진들이 제 그림을 좋게 보셔서 페이퍼 목차 부분의 그림을 맡게되었고 이후 고정지면을 얻게 되었어요."

페이퍼에 오래 연재하면서 그는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을까. "페이퍼는 아기자기한 것이 여성 취향이죠. 저의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대다수 여성이고요. 페이퍼와 저의 그림이 문화적인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페이퍼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지는 않아요." 하지만 페이퍼의 영향을 무시하진 못한다. "그로테스크한 것이 좋아서 초기 그림의 볼터치를 자주빛으로 그렸어요. 그것이 피멍이 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런데 페이퍼에  연재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좋아져 점차 볼터치가 귀엽게 되었어요." 지금 권신아씨 그림 속 인물들 볼은 다홍빛, 붉은 빛이 든 것이 10대 소녀의 볼에 사과 물이 든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 "만화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근데 제가 이야기 구성 능력이 약해서요. 스토리 작가가 필요한데, 마음이 맞는 스토리 작가를 아직 찾지 못했답니다." 또한  빨강머리 앤을 준비중이라는 그녀. 에이번리의 초랙색 지붕과 앤이 어떤 색채로 그려질지 기대된다.
 

신민영 기자 <cspeed@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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