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소스의 톡 쏘는 맛. 얼얼한 혀끝을 위로하듯 뒤늦게 찾아온 고추장의 감칠맛. 동서양의 조화가 혀를 감싼다. 피자 위에 뿌려 먹거나 밥과 야채에 비벼 먹고 싶어진다.

동서양의 맛을 함께 느끼게 하는 ‘죙 핫소스’는 스타트업 해처리(Hatchery)가 만들었다. 이다은 대표(31)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고추장을 ‘고추죙’으로 발음하는 외국인을 감안하여 ‘죙’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고추장 특유의 감칠맛·단맛·매운맛을 극대화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아마존에 수출을 앞두고 있다. 죙 핫소스를 제조하는 OEM 업체 동원홈푸드의 박유은 대리(32)는 국제적 대중화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죙 핫소스는) 대표님이 혼자서 개발을 했다는 정성스러운 스토리가 있다는 점, 보존료 등 몸에 해로운 원료를 쓰지 않았다는 점 덕분에 특히 국제적으로 인기몰이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 고추장과 핫소스의 조합, 죙 핫소스(출처=와디즈 홈페이지)

이 대표는 테스팅과 새로운 레시피 개발을 집에서 한다. 쏴아아, 쓱싹쓱싹, 쪼르륵, 보글보글…. 이런 소리가 아파트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들린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청양고추와 하바네로 고추를 씻고, 썰고, 여과하고, 끓이고 나면 독특한 냄새가 난다.

고추장 핫소스라는 사업 아이템을 잡고 이 대표는 한국식 핫소스를 개발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모든 고추를 먹어보다가 맵고 맛있는 청양고추와 하바네로 고추를 발견했다.

“고추 끓인 물을 부을 때 바닥에 튀길까 봐 온 집안을 신문지로 도배해 놓았죠. (웃음)” 1~2개월에 걸쳐 고추를 발효시키고 친구들이 시식하도록 했다. 그리고 반응을 들었다.

이런 과정을 10개월 반복하다가 고추장과 발효 하바네로의 황금비율을 발견했다. 죙 핫소스가 처음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그 후 영어단어 ‘부화하다(hatch)’에서 영감을 얻어, 좋은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곳이라는 뜻의 회사 해처리(Hatchery)를 창업했다.

그는 강원 민사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증권사에 들어갔다. 탄탄대로를 걷다가 슬럼프를 겪었다. 외식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했지만 구체적 청사진은 없었다.

이 대표는 미국과 스위스에서 보낸 유년 시절, 한국에 세계적인 외식업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점을 떠올리고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하인즈·스리라차 같은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퇴사 이후 들었던 고추장 관련 수업은 아이템 발견에 보탬이 됐다. 이 대표는 수업 덕분에 장류에 깊이 빠졌고, 해외에서 장류의 입지를 넓힐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 “매우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한국식 소스를 개발해보면 어떨까 하다가, 죙 핫소스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 이다은 대표(출처=컨비니 홈페이지)

죙 핫소스를 대량으로 제조하려면 핵심 재료인 ‘발효 하바네로’를 위탁 생산할 업체가 필요했다. 중소기업에는 이런 시설이 없었다. 대기업은 개인 사업자와 일을 할 수 없으니 규모를 키워서 오라고 답변했다.

이 대표는 기업과 계속해서 연락하다가 동원홈푸드로부터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박 대리는 이 대표와 처음 대면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레시피를 짜서 왔더라구요. 핫소스 개발을 위해 (하바네로) 발효액 직접 제조 작업을 포함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는게 느껴졌습니다.”

동원홈푸드와 손을 잡고 발효 하바네로의 제조 레시피를 넘겨 대량 생산에 들어가자 죙 핫소스는 ‘와디즈’에서 펀딩률 4100%를 기록했다. 또 마켓컬리, 카카오 메이커스, 갤러리아 등 다수 유통망에 입점했다.

죙 핫소스의 최대 장점은 부담스럽지 않은 매운맛과 감칠맛이다. 미국 핫소스는 산미가 강하고 염도가 높다. 고추장을 간장과 식초로 희석하고 설탕을 많이 넣은 볶음용 양념과 비교해도 담백함이 두드러진다.

이 대표는 죙 핫소스의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육수를 낼 때 사용하는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엑기스로 만들어 첨가했다. 이 때문에 인공 캡사이신·보존료를 넣을 필요가 없어 장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해처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류다혜 씨(23)는 장이 안 좋은 편이라 매운 음식을 먹으면 다음날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일쑤였다. 죙 핫소스를 섭취하면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적인 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장에 부담이 덜 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웰빙에 관심이 많은 20대도 보존료 대신 건강한 재료를 사용한 죙 핫소스에 관심이 많다. 최근 운동을 시작한 노채원 씨(25)는 죙 핫소스 덕에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자극적인 맛을 포기하지 않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영광도 없다! 이 대표가 사내에서 이건영 매니저(26)와 함께 사용하는 좌우명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것도, 실패 가능성을 뒤로 하고 열 달 동안 고추장과 발효 하바네로의 황금비율을 발견하려고 애쓴 것은 오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했다.

“앞으로도 사업을 하면서 종종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겠죠.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든, 제 나름의 방식대로 헤쳐나갈 겁니다.” 지금껏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한국 고추장과 미국 핫소스의 가교, 죙 핫소스를 만든 이 대표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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