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주 편집장

창간 이래로 다섯 명의 편집장들이 DEW를 거쳐갔습니다. 6번째 편집장이 그의 첫 편집유골을 씁니다. 감투를 쓴 사람들은 열에 아홉 "제가 이 자리에 앉게 될 줄은 몰랐어요"라는 말을 합니다. 편집장이 감투를 쓴 사람이라고 보진 않지만 사실 저도 칼럼에 쓸 얘기는 그런 멘트가 되지 않을까 고민했었고요. 더구나 지난 4달간 DEW를 떠나있었던 터라 남의 감투를 얻어 쓴 듯한 어색함과 낯설음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제가 편집장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인도와 네팔의 국경마을 소나울리에서입니다. 인도로 떠나 온 지 한 달쯤 되었을까요? DEW 소식이 궁금해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너 편집장 됐어"였습니다. 여행에 푹 빠져 입국날짜를 미루려 했던 계획을 그 한마디에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팔의 안나푸르나를 오를 때도 그 한마디가 뇌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4300M를 오르내린 트레킹이 덜 힘들었던 건 몸이 피로를 느낄 겨를 없이 매 순간 심리적 부담에 매달려서가 아닐까요? 4계절을 동시에 가진 '풍요의 여신(안나푸르나의 뜻)'과 열흘을 보내면서 앞으로 1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수 차례 고민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여기가 안나푸르나임을 잊고 땅만 보고 걸을 때도 있었습니다. 만년설로 뒤덮여 숨막히게 아름다운 마차푸차르가 눈앞에 있어도 '편집장' 세 글자가 내 눈을 먼저 덮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담감을 안고 한 산행이 헛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사람은 산에서 배운다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일간 계속된 산행에 지친 등산객들이 꼽는 최고의 피로회복제는 설산입니다. 첫날 등반에서는 설산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이틀, 사흘 조금씩 올라갈수록 보일 듯 말 듯 하는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등산객들의 애를 태웁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보인다면 정상이 이처럼 기대되진 않겠지요. 정상에 오르지 않고는 완전히 볼 수 없는 설산을 보려고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게임은 결과에 대한 흥미도, 기대도 없습니다. 끝을 먼저 보려했던 태도가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부담감에 짓눌리게 했음을 트레킹을 끝내고서야 알았습니다. DEW가 99년 창간 당시의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과 사회의 변화를 뒤따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비판은 우리 스스로도 질책하는 부분입니다. 또 넘쳐나는 인터넷 신문은 'DEW가 설자리는 어딘가'하는 위협감마저 들게 합니다. '위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DEW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선명하게 잡혀있다면 그건 벌써 끝난 게임이겠지요. 

앞으로의 DEW는 어떤 모습으로 그 정체성을 드러낼 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험이 저의 목표입니다. 후에 나타나게 될 DEW의 모습이 안나푸르나의 설산처럼 청량함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2주가 지났습니다. 네팔에 있을 땐 마치 혼자서 DEW를 이끌어가야 하는 양 생각했나봅니다. 지금은 훨씬 마음이 놓입니다. 앞으로의 1년이 기대됩니다. 듀이들과 만들어갈 DEW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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