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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보도, BBC 사례 분석
송서영 기자 | 승인 2021.10.03 21:48

 

2015년, BBC는 제56대 영국 총선을 맞아 ‘10시 뉴스(News at Ten)’ 끝자락에 ‘나의 선거(my election)’ 코너를 마련했다. 기자의 리포트 없이 시민이 자신의 활동 공간을 배경으로 1분 30초 동안 발언하는 코너였다. 시민은 선거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선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신은 현재 어떠한 처지인지 등을 주로 언급했다. 이 코너는 ‘시민의 권리와 시민사회를 유지하자’는 목표에서 시작됐다.

▲ 나의 선거(my election) 뉴스 코너는 BBC 라디오 5 채널에서 ‘#MyFirstElection’으로 확장됐다. (출처=BBC #MyFirstElection: As a father of four)

미디어사회학자 허버트 갠즈는 저서 <무엇을 뉴스로 결정하나(Deciding What’s News)>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이려면 뉴스부터 시민의 참여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의 전략도 보도될 가치가 있는데, 시민들의 참여 전략은 왜 그럴 가치가 없냐는 문제였다. 시민들이 공직자에게 보내는 이메일, 전화, 인터넷 채팅방에서의 일상적인 정치적 농담까지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보도에는 시민이 없다. 그 이유와 BBC가 어떻게 시민이 주인이 된 공정보도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 있다. 2017년, 고려대에서 박성호 MBC 기자가 박사 논문으로 낸 <공영방송 뉴스의 불편부당성 연구: BBC와 KBS의 선거보도를 중심으로>이다. 박 기자는 MBC 보도국 부국장 겸 정치팀장까지 지낸 정치부 기자로서의 경력을 살려, BBC와 KBS의 선거보도를 비교했다. 2015년 영국 총선 투표일 이전 18일간 BBC ‘10시 뉴스(News at Ten)’의 선거보도와 2012년 한국 대선 투표일 이전 21일간 KBS ‘뉴스9’의 선거보도를 분석했다. 박 기자는 BBC와 KBS가 같은 공영방송이지만, 어떻게 영국 공영방송의 주인이 시민이 됐는지, 한국 공영방송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공정성을 기반으로 연구했다. 

박 기자는 “비교 대상 없이 BBC만 놓고 분석하는 것은 단편적 관찰 기술에 그칠 뿐 아니라 고유하고 차별적 특성을 간파하는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연구는 영국과 한국의 공영방송, 즉 BBC와 KBS 뉴스를 비교의 대상으로 택했다. 불편부당성이라는 잣대를 두 방송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됐다. KBS가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일 뿐 아니라, BBC 편집 가이드라인에 상응하는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준칙으로 제정해 작용하고 있고, 그 내용이 불편부당성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라고 비교 목적을 밝혔다.

박 기자는 이 논문에서 시민이 등장하지 않는 한국의 선거보도의 원인으로 기계적 균형을 꼽았다. BBC와의 비교대상이 된 KBS는 이러한 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30년째 KBS에서 탐사 취재하고 있는 KBS 홍사훈 기자에게 물었다.

[선거보도의 의미]

▲ 유세 현장에 기자가 직접 서 있고, 에드 밀리반드 노동당 대표가 유권자들과 악수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삼은 BBC 보도. 기자의 바로 뒤에 왔을 때를 포착해 기자는 ‘밀리반드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촬영하며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출처=BBC News at Ten, Labour promise to invest &#163;150m in cancer diagnostic equipment)

논문 분석 결과, BBC는 불편부당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해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이 ‘적극적이고 양식 있는 시민’이 되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BBC는 시민 비중을 대폭 늘린 다관점 뉴스를 지향했지만 KBS는 정치인이 독점하는 단일 관점 뉴스를 지향했다. 앵커 단신과 시민 리포트를 제외한 뉴스 아이템에서 관점의 수를 세어본 결과, BBC는 하나의 아이템에 4개 이상의 관점을 담은 뉴스가 29%로 제일 높았다. 하지만 KBS는 1개의 관점을 가진 뉴스가 40.7%로 제일 높았으며, 4개 이상의 관점을 담은 뉴스는 8%에 그쳤다.

시민을 재현할 때도 폭넓은 견해를 드러냈다. 장소가 달라지면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이 달라지고 발언 내용도 달라진다는 것.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이나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여성들은 모두 보육 정책에 높은 관심이 있었다. 당구장에서는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젊은 층이 있었다. 이 인터뷰엔 4명의 학생이 등장했는데, 2명은 여학생, 1명은 이슬람계 학생으로 젠더와 인종의 다양성이 고려됐다. 인터뷰 장소의 선택 과정에서 발화자의 성격, 내용, 맥락 등이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 도표1: 취재원 비율

BBC는 정치 지도자(41.6%), 시민(33.1%), 정당(10.2%) 순으로 목소리를 담았다. 반면 KBS는 정치 지도자 (65.7%), 정당(23.3%) 순으로 정치인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시민 비율은 단 1.1% 였다. 기사 당 BBC의 시민 취재원 수는 1.5명이었던 반면, KBS는 0.1명뿐이었다. BBC는 정책을 만드는 고위공직자 등의 엘리트 취재원이 아닌 정책의 영향을 받는 시민들의 반응에서 출발하는 뉴스를 지향했다.

▲ 한국 선거 보도의 도식을 보여준다. (출처=KBS 뉴스9)

반면 KBS의 선거 보도는 누가 뭐라고 말했다거나 누가 무엇을 했다와 같은 사실 전달을 선거 보도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이 때문에 풍부한 설명보다는 벌어진 일의 요약과 정리의 성격이 강했다. 사안의 발생적 기원은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났다. 박 기자는 “선거 보도는 곧 유세 보도라는 등식이 적용될 정도로 선거 운동에 큰 비중을 뒀기 때문에, 정보 전달과 간접 인용이 만연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설명해주는 BBC, 전달하는 KBS]

▲ 도표2: 보도 형식

기사의 보도 형식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났다. BBC의 기사는 분석(69.9%)으로 이루어졌지만, KBS의 기사는 전언(59.3%)으로 이루어졌다. BBC 기사의 문장 서술 방식은 해설 문장이 48.7%로 가장 높았던 반면, KBS는 정보 전달 문장이 26.7%, 간접 인용 문장이 26.2%였으며 해설 문장은 17%에 그쳤다.

▲ 분야별 주요 정책 공약을 분석한 보도이지만, 각 당의 공약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출처=KBS 뉴스9, [대선 공약 검증] 개헌·권력분산·검찰 개혁)
▲ 노동당의 선거 공약을 공개한 발표 기사이지만, 누구는 무엇이라고 말했다는 간접 인용문은 하나도 없고, 기자의 해석과 설명이 기사 전반에 걸쳐 채워져 있다. (출처=BBC News at Ten, Labour unveils general election manifesto)

BBC는 기사 2건 당 1건꼴로 현재의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거의 사례나 사실을 언급하며 해설했다. 과거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면서 오늘의 이슈를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역사적 맥락을 제공했다. 반면 KBS는 당일 벌어진 일에 집중했고 과거의 사례를 동원해 역사적 맥락을 제시하는 경우가 20.4%로 적었다. 과거는 여론조사 보도에서 판세의 추이를 나타내거나 투표율을 비교하는 경우에 한 해 호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선거 기간, 여론조사를 의뢰해 보도하는 것을 편집 가이드라인에서 금지하고 있는 BBC와 비교했을 때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시민 없는 기계적 균형, 그 원인과 대안]

박 기자는 두 언론사를 비교 분석한 결과, “BBC는 유연한 뉴스, KBS는 경직된 뉴스”라고 해석했다. 그는 논문 결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많은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인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반면, 주권자인 시민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음을 깨달았다. 정치인이 생산해 내는 무수한 말을 옮기고 활동을 쫓는 데 그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면서도 그들에게 다가가 ‘당신의 말을 믿을 근거는 무엇이냐?’라고 따져 묻지 않았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박재영 교수는 저술 논문 <공정성의 실천적 의미: 문화일보 2002년 대선 보도의 경우>에서 “대부분의 언론사는 윤리 규정에 공정성을 언급하고 있어서 공정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준칙을 제시하지 않아서 제도적 장치가 선언에 그칠 뿐이란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공정보도의 최우선 조건으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것을 꼽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언론사는 즉각 검증되기 어려운 주장과 반론을 있는 그대로 보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사는 두 당사자가 특정한 견해를 주장했다는 사실만 검증해줄 뿐이다.”라며 언론 현장에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편파 시비 제기 때문에 기계적 균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질적 균형성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항상 불리하다고 느끼는 쪽에서 편파성을 제기한다고 말한 그는 “균형 맞추기란 그런 잠재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기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 KBS 홍사훈 기자는 박 교수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취재 부족, 용기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취재가 확실하게 됐으면, A와 B가 말한 것 중에 누가 더 합리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타당성을) 모른다는 것은 취재하지 않은 것이라 덧붙였다. 홍 기자는 용기 부족의 이유로 소송 가능성과 집단적 비판을 꼽았다. 또한 “(취재하다) 전혀 새로운 사실이 나왔을 때,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사실을 자신의 논리에 끼워 맞춰 상대에게 일종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가장 큰 사고를 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계적 균형이란 관행의 대안으로 홍 기자는 언론사 내부에서 취재에 대해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책임하게 던져놓지 말고, 선배가 후배한테, 동료가 동료한테 취재에 대해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홍 기자는 “A와 B 중에 누가 맞고 대안은 무엇이냐를 취재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어 탐사 보도나 시사 다큐멘터리가 있는 것이다. 기자 자신의 대안을 말하라는 게 아니다. 문제 제기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고발로만 끝나는 거라면 매우 무책임한 언론으로 비춰진다.”며 “취재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각 취재원의 의견을 다른 취재원들에게 물어보며 교집합을 찾을 수도 있고,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런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언론의 역할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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