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법원에 갈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지만 실제로 법원을 찾는 일은 드물다.

베일에 싸인 듯이 보이지만 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집에서 가까운 법원에 가서 재판을 볼 수 있다. 헌법 제27조는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법원에 가면 다양한 이유로 재판을 보는 방청객이 있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1월 18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을 취재하면서 방청객을 관찰했다.

내가 정말 법원에 가도 될까? 왜 왔냐고 꼬치꼬치 물으면 어쩌지?’ 취재를 앞두고 머릿속에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서울중앙지법 홈페이지를 봤더니 ‘새소식’ 코너에 ‘주요사건 방청안내’라는 공지사항이 있었다.

주요사건은 정인이나 N번방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말한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런 재판이 계속 열리는데 방청권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자리도 정해졌다. 혼란을 막기 위해 재판 전에 방청권을 배부한다. 관심이 많은 재판은 아침 일찍 줄을 서야 방청권을 받는다.

▲ 옵티머스 사건의 10차 공판 방청권

서울중앙지법은 재판 30분 전에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한다. 반면 서울남부지법은 정인이 사건 공판(1월 13일) 방청권을 추첨으로 배부했다. 이날 813명이 응모해 51명이 당첨됐다.

방청하려면 재판을 시작하는 시간보다 일찍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취재팀이 1월 21일 봤던 재판은 ‘부따’로 알려진 N번방 사건의 피의자 강훈의 선고기일이다. 재판은 오전 10시에 서관 5층 506호에서 열렸다.

오전 9시 30분에 나눠주는 방청권을 받기 위해 오전 9시에 배부 장소(서관부출구 4-2번 출입구)에 갔더니 이미 4명이 줄을 섰다. 중년 남성 1명과 젊은 여성 3명이었다. 기자 다음으로도 몇 명이 더 왔다.

더 들여보내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기다렸지만 허탕이었다. 기자 바로 앞에 있던 여성 2명은 일행이었는데 1명만 받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 언론사 취재진을 볼 수 있다.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의 독직폭행 사건을 다루는 첫 공판이 1월 20일 열렸다.

취재팀은 오전 11시부터 열리는 재판을 보려고 1시간 전에 도착했다. 이날 배정된 방청권은 7매였다. 팻말 앞에는 이미 가방 3개가 보였다.
출입구 앞에 기자들이 몰렸다. 처음에 6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방송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렸다. 입구가 붐비자 법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머 왜 이래?” “오늘 누구 와요?”라고 말했다.

법원 직원이 오전 10시 15분에 나와서 “여기는 촬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많아서 동선이 혼란스럽다는 이유다. 그러자 기자들이 “동선이 짧을 것 같은데”라며 조금 바깥쪽으로 나와 팻말 옆에 자리 잡았다. 

가방 주인이 보였다. 처음 두 명은 중년 부부로 보였다. 세 번째인 남성은 카메라 기자와 대화하며 자리를 맡았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언론사 관계자 같았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4, 5번째로 줄을 섰다. 뒤로 여성 2명이 섰다.

약 20분 만에 7명이 다 찼다. 앞의 3명은 현장 방청이 가능했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을 포함한 네번째부터는 중계 방청석을 배정받았다.
 
서관 2층 로비에 가면 게시판이 있다. 매일 오전 10시경 직원이 공판 시간과 장소, 내용이 적힌 종이를 게시한다. 사건명과 사건번호, 피고인명이 있다. 오전 재판은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재판은 2시부터 4시까지 이어진다. 한 곳에서 1시간 20분 동안 재판 10개 이상이 열리기도 한다.

게시판을 보는데 어느 여성이 말을 걸었다. “재판 방청 처음이세요? 저도 처음인데, 인터넷으로 알아보니까 공판 첫 기일인 ‘신건’이 재미있대요. ‘선고’는 형을 선고하기만 하고 끝나서 볼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제야 진행 경과를 나타내는 신건, 속행, 선고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 서관 509호 법정의 공판안내문

신건은 새로 배당된 사건이다. 처음으로 사건을 검토하는 자리인 만큼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사건 하나의 재판은 여러 차례 열리는데 신건 이후의 재판을 속행이라고 한다. 선고는 피고인에게 어떤 형벌을 부과하는지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절차다.

신건 글자가 가장 많이 적힌 종이를 찾았다. 오덕식 판사가 담당하는 509호에서 오전 10시 10분부터 10시 50분까지 신건 5개와 속행 1개의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옵티머스 사건의 재판 방청권을 받고 서관 311호로 향했다. 2월 4일 오전 9시 40분경이었다. 코트를 입은 대학생 2명이 보였다. 법원에 처음 온 듯했다. 다행히 그날 방청권을 위해 줄을 선 사람은 취재팀 2명을 포함해 3명이었다.

방청권을 받은 이들을 311호 앞에서 다시 만났다. “어떤 계기로 오셨나요?”라고 묻자 “그냥 오고 싶어서 왔죠”라는 대답했다. 이어서 “판사가 꿈이었는데 포기했어요. 재판 보면서 대리만족하려고 왔죠”라고 덧붙였다.

법조인을 꿈꾸는 젊은이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들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은 청소년 법원견학 및 모의재판, 재판방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잠시 중단된 상태.

서울중앙지법 홈페이지의 게시판(생생 법원체험기)에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나의 첫걸음’ ‘꿈을 향한 첫 걸음, 법원 방청을 다녀와서’ ‘내 꿈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산소같은 법원방청 후기’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 서울중앙지법 홈페이지의 체험기

법원은 누군가에게 일터다. 판사, 검사, 변호사만이 아니다. 법률사무소 직원이 업무를 위해 방청하기도 한다.

옵티머스 사건의 재판일. 취재팀은 오전 9시 10분 서관 4-2번 출구에 도착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라 방청객이 많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9시 30분이 되도록 취재팀 외에 아무도 없었다.

“방청권 줄 서신 거예요?” 중년 남성이 취재팀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그는 취재팀 뒤에 줄을 섰다.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들었다.

그에게 물었다. “어떤 일로 방청을 보러 오신 건지 여쭤봐도 되나요?” 그는 약간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는 법무법인에서 왔어요. 사건 관련인이라서요” 사건 관련인은 방청권 없이도 방청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사건 당사자만 받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취재팀은 그가 법무법인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법무법인에서 오셨으면 변호사이신가요?”라고 묻자, 그는 “변호사는 아니고 법무법인 직원이에요. 사건과 관련 있는 클라이언트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해서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는 그가 질문했다. “학생 기자단이면 어떤 것을 취재하러 온 거예요? 이미 이 재판은 많이 진행됐는데, 이 사건을 취재하는 거예요?” 처음이라고 했더니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끝까지 재판을 봐요. 그래서 방청하신 분들을 제가 웬만하면 아는데, 저번에 두 분을 못 본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그러면서 “이 재판이 무슨 사건인지는 알고 있죠? 이 재판은 하루종일 해요. 10시부터 12시까지 하고, 점심시간 지나고, 6시까지 이어서 해요”라고 말했다. 1시간 이상 계속하는 재판을 방청한 적이 없어서 기자는 약간 놀랐다.

그는 방청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5차? 6차? 공판쯤부터 방청을 시작했는데 하루종일 수기로 적는 게 힘들더라고요. 기자들은 노트북을 쓸 수 있지만 우리는 못쓰니까….” 금융 사건인 만큼 계속 따라가지 않았으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10분 정도 대화하고 그는 취재팀에게 부탁했다. “사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취재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혹시 제가 첫 번째로 방청권을 받아도 될까요?” 그는 매번 자신이 앉는 자리가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취재팀은 흔쾌히 동의했다. 9시 40분, 법원 직원이 방청권을 배부했다.

서관 311호 중법정은 1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법무법인 직원은 기자석을 제외한 방청석에서 맨 앞의 맨 왼쪽에 앉았다. 검사 쪽과 가까웠다. 그는 두꺼운 업무수첩과 펜을 꺼냈다.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수첩을 펼쳤다.

재판은 10시 10분 시작했다. 피고인은 김재현 윤석호 유현권 이동열 등 4명. 각자의 변호사 4명도 출석했다. 제복을 입은 경찰 3명이 방청석에 앉았다. 30~40분 간격으로 새로운 경찰이 들어오며 교체됐다.

증인신문이 있었다. 피고인 윤석호 회사의 직원이 검찰에서 신청한 증인으로 출석했다. 신문의 핵심은 회사 자금을 관리할 때, 김재현의 실제적인 지시가 있었고 그가 실질적인 대표역할을 수행했는지였다.

사건관계인이 많고 금융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검사나 변호인이 준비된 자료를 보고 읽을 때는 말이 빨라서 메모를 하기 힘들었다. 법무법인 직원을 봤다. 수첩에는 반듯한 글씨가 빼곡했다. 낮 12시에 휴정했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이 2월 16일 서관 523호에서 방청을 마치고 나왔다.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 경향신문 기잔데요. 방청 오셨다고 했죠? 혹시 법률사무소에서 오셨나요?” 법률사무소 직원은 사건의 진행상황을 알려고 방청을 오고, 같은 사건을 방청한 기자가 법률사무소 직원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얻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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