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소녀상은 한국의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아시아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에 (평화의 소녀상이) 베를린에 세워져 있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14일 독일 베를린시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반대하며 이같이 말했다.

베를린 소녀상은 지난해 9월 25일 독일에서 세 번째로, 야외 공공부지에는 처음으로 설치됐다. 일본이 항의하자 미테구청이 10월 7일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베를린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자 철거명령이 보류됐다. 마침내 12월 2일 베를린 소녀상 영구설치 결의안이 의결됐다.

연합뉴스 이광빈 기자는 이런 과정을 다각적으로 취재했다. 한국기자상 공적설명서를 보면 소녀상 설치 직후인 지난해 9월 25일에 처음 보도했다. 10월 초에는 베를린 당국의 철거명령 기사를 보도했다.

그는 소녀상 문제를 지난해 1월부터 추적했다. 설립 계획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에 설치를 주관하는 코리아협의회와 계속 소통하며 보도 시기를 조율했다. 설치 계획 및 베를린 당국의 허가 과정이 외부로 알려지면 일본의 방해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속보는 통신사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만 상황에 따라 공익적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며 “일본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도를 미리 하면 공익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일본이 방해하기 어려운 때를 보도 시점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 눈물을 머금은 베를린 소녀상(출처=연합뉴스)

일본의 반응은 예상보다 거셌다. 보도가 나가자 일본대사관이 베를린시에 철거를 요구했다. 이어서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독일 정부에 철거를 요청했다. 한일간의 외교 문제이니 독일이 어느 한쪽 편에 서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초대 소장인 김창록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저널리즘 비평프로그램인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에서 “위안부 문제는 반일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한국인이고 가해국이 일본이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들이 일본의 가해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문제 자체는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베를린 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보편주의적 문제로 끌고 갔고 실제 시위 과정에서 민족, 단일, 민족주의와 같은 반일 구호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독일 시민사회가 보여준 보편주의적 방식이 한국 사회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녀상 보도는 제11회 조계창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국제적 쟁점으로 비화한 소녀상 논란을 민족 감정 차원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인권 문제로 접근함으로써 현지 시민사회의 성숙한 해결 노력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베를린 소녀상 근처에서 지난해 10월 13일 열린 우쿨렐레 공연(출처=연합뉴스)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 존치방안을 구의회·구청과 논의하는 중이다. 한정화 대표는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스테판 폰 다셀 구청장이 전혀 움직이지 않지만 여러 의원이 소녀상의 인류 보편적인 취지에 공감하는 입장이라 힘이 되어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로 잠시 쉬었던 정기시위는 올해 2월 19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독일 시민단체인 오마스게겐레히츠(OMASGEGENRECHTS)가 매월 셋째 주 금요일 11시(현지 시각) 침묵시위을 주도한다.

한 대표는 “오마스게겐레히츠 집회는 소녀상 문제뿐만 아니라 지난해 독일 하나우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총기테러 참사 추모의 성격을 겸해서 깊은 의미가 있다”며 “소녀상이 한일 갈등을 넘어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독일 사회에서 자리 잡는 중요한 집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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