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2016년 OECD 조사 결과 한국의 사회 신뢰도는 26%였다. 우리 사회가 ‘저신뢰사회’가 된 원인은 무엇이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서술하라.

한국을 저신뢰사회로 규정하고 원인과 대책을 쓰도록 했다.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은 정확한 현실진단을 전제로 한다. 저신뢰사회의 문제 또는 심각성이 글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단락 1>
① 카페에서 자리를 맡기 위해 휴대폰, 지갑 따위 귀중품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② 오락실에서 게임 순서를 기다릴 때면 각자 미리 준비한 동전을 게임기 앞에 ‘걸어’놓는다. ③ 공공장소에서 분실 위험이 높은 소지품을 자유롭게 놔둘 수 있는 것은 분명 우리만의 문화다. ④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신 덕이다. 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이와 함께 쓰는 공공장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는 불신이 형성돼 있다. ⑥ 같은 공공장소지만 외부와 차단돼 있는 칸막이 화장실은 감시체계가 작동하지 못해 청결관리가 어렵다. ⑦ 이처럼 불신과 익명성이 주는 상호 간 감시라는 순기능은 해당 공간이 개방돼 있을 때에만 작동한다. ⑧ 개개인 간 불신에 개방성이 더해지면 역으로 전체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이다.

<평가>
⇨ ①~③은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면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④와 ⑤처럼 불신에서 이유를 찾았다. 불신이라는 부정적 단어로 긍정적인 현상을 설명해서 어색하다.
⇨ 불신과 익명성이 상호 감시라는 순기능을 한다고 ⑦에서 주장했다. 불신과 관련한 내용은 (허술하긴 하지만) ①~⑤에 나온다. 익명성과 관련한 내용은 어디에 나오는가?
⇨ 개개인 간 불신에 개방성이 더해지면 신뢰가 높아진다고 ⑧에 나온다. ④와 ⑤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신이라고 했다. 개인 간의 불신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신은 같은 뜻인가?

<단락 2>
① 공공장소와 다른 폐쇄적인 조직일 때에는 상황이 다르다. ② 폐쇄적인 조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 ③ 공공장소에서는 생판 모르는 남이 되지만, 조직 내 타인은 더 이상 ‘불특정 다수’가 아니다. ④ 즉, 조직 내에선 익명성이 부재한다. 우리나라처럼 특유의 정(情) 문화가 발달한 곳일수록 특정인끼리의 결집은 필연이다. ⑤ 우리 문화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만나자 마자 서로 간 공통점을 찾아내는데 주력한다. ⑥ 만나자마자 개인 인적사항을 묻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는 외국과 달리 우리 사회는 나이, 출신지, 대학에 관한 이야기로 만남이 시작된다. ⑦ 그리고 이러한 개인 간 공통점을 기반으로 한 조직 내 집단을 형성하며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평가>
⇨ 폐쇄적인 조직에서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②에서 말했다. 조직이 폐쇄적인데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일이 가능할까?
⇨ 조직 내 타인은 더 이상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고 ③에서 설명했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같은 조직에 몸을 담았는데 어떻게 타인이며, 어떻게 불특정 다수가 되는가?
⇨ ④~⑦은 한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논제는 저신뢰사회의 원인과 대책을 다루도록 요구하므로 다음 단락에서는 ④~⑦이 지나쳐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해야 글의 흐름이 좋아진다.

<단락 3>
① 문제는 소속감을 넘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게 된다는 점이다. ② 불특정 다수가 ‘특정’ 다수가 되면서 서로에 대한 감시 메커니즘이 무너진다. ③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장 간 재판거래가 성사된 배경에는 ‘학연’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④ 양 전 대법원장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고교·대학 선후배 사이인 것이 거래 성사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⑤ 게다가 이를 당시 여러 법조계 인사들이 목도했음에도 그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소속감 때문이었다. ⑥ 문제제기자는 없었고, 사법농단은 장기화됐다. ⑦ 그 결과 수많은 국민이 재판거래의 희생자가 됐고, 사법권에 대한 국민 신뢰는 추락했다. ⑧ 어렵게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을 폭로한 이탄희 판사의 경우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혀 이후 판사직을 내려놓았다. ⑨ 개개인 간 형성된 높은 신뢰가 역설적으로 전체를 향한 불신을 낳게 된 것이다.

<평가>
⇨ 불특정 다수가 특정 다수가 된다는 표현(②)은 무슨 뜻인가? ③ 이후에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법원장의 사례가 나온다. 특정 다수가 아니라 파워엘리트, 즉 소수의 문제가 아닌가?
⇨ 재판거래를 여러 법조계 인사가 목도했다고 ⑤에서 이야기했다. 관련 사실이 얼마나 많이 알려졌기에 여러 법조계 인사라고, 또 목도했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 개인 간의 신뢰가 전체를 향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⑨가 단락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전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권력? 사법부? 한국사회?

<단락 4>
① 사회 전체의 신뢰 회복은 역설적으로 조직구성원 간의 불신이 형성될 때 가능하다. ② 익명성 없이는 폭로도 없다. ③ 조직 내에서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한 친인척을 배제하는 규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 ④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는 애당초 쌍둥이 부녀를 한 학교에 배정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⑤ 물론 사후에 개개인 간 본능적으로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친밀감을 강제로 제거하기는 어렵다. ⑥ 그렇다면 폐쇄적인 조직의 입구를 열어놓아야 한다. ⑦ 주기적인 인사이동·순환체계를 작동시키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⑧ 조직이 열려있을 때 공익제보자의 익명성을 보호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내부고발도 가능하다. ⑨ 개인 간 익명성은 공동체의 유대를 해치지 않는다. ⑩ 오히려 지나친 유대로 인한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평가>
⇨ ①의 문제는 앞에서도 지적했다. 역설적이라는 단어를 넣긴 했지만 불신(부정적 현상)과 신뢰 회복(긍정직 결과)은 자연스러운 조합이 아니다.
⇨ 조직구성원 간의 불신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점도 논리적이지 않다. 재판거래 사례를 통해 조직구성원 간의 불신이 필요한 이유를 <단락 3>에서 설명했는데 청와대 비서실장(행정부)과 대법원장(사법부)은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다.
⇨ 공익제보, 익명성, 내부고발이 필요하다고 ⑥~⑧에 정리했다. 익명성을 보호하지 않아서, 내부고발을 막아서 생긴 폐해가 글에 나오지 않으니 원인과 대책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 조언
논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한국의 사회 신뢰도가 26%로 나왔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어느 수준이며, 신뢰도가 높은 국가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러 대상을 비교하면서 글을 풀어가면 이해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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