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 씨(28)는 5월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방문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자 보건소를 찾았다. 직원은 이태원 방문 여부를 묻고 진단 검사를 했다. 박 씨는 다음날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검사 과정에서 보건소 직원은 이름 나이 직업을 적으라고 했다. 박 씨는 “직업 같은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는 사전에 없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다. 8월 25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2300만 명 이상이 감염됐다. 한국 확진자는 1만 7945명이다.

정부는 감염병 대응 경험과 절차를 체계화해 K-방역 모델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110개 국이 방역 노하우를 공유하자고 요청했다.

한국의 대응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N차 감염’까지 추적한다는 점이다. 확진자가 발견됐을 때 7차 감염자까지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여러 정보기술을 활용했다. 모바일 기기의 위치 데이터, 신용카드 결제 이력, 지리적 위치 확인 서비스 데이터, 약물 이용 검토, 대중교통 환승 이동 기록, 폐쇄회로 텔레비전 영상(CCTV) 등이다.

서울시는 익명 검사를 통해 ‘숨은 감염’을 찾아냈다.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확산하자 성소수자는 연락용 휴대전화 번호만을 적도록 했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대중매체를 통해 익명 검사를 홍보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개인신상과 이동 경로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확진자 및 감염병 의심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이태원 집단감염 때,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이동통신 3사에 협조 공문을 보내 이태원 인근 기지국에 접속한 1만 905명의 신원을 확보했다.

박 씨는 기지국 접속 자료의 활용에 대해 섬뜩함을 느꼈다. 그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정부가 개인 이동 동선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정수훈 씨(27)는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다가 코로나 유행을 피해 4월 20일, 예정보다 일찍 귀국했다. 이틀 뒤에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공개되는지는 잘 몰랐다. 미국에서 온 터라 한국 방역체계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확진자의 개인정보가 공개되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사이비 종교 예배를 본 중년 여성, 제주도 여행을 갔던 서울 강남 출신 유학생, 클럽을 찾은 성 소수자 등.

제주도는 코로나 증상을 보였음에도 제주에 여행갔던 미국인 유학생과 어머니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입국 유학생의 자가격리를 권고했을 때였다. 원희룡 제주 지사는 “이번 소송을 통해 강력한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며 모녀를 비난했다.

▲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입구의 검진 안내문(출처=연합뉴스)

5월 초에는 경기 용인의 66번 확진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거리두기 기간에 이태원의 클럽 5개를 찾아서였다. 정부가 동선을 공개하자 일부 언론은 성소수자 클럽임을 강조했다.

용인 66번 확진자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차예솔 씨(26)는 “그 사람의 동선은 친구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언론에서 성 소수자라고 자꾸 언급해서 더 주의 깊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워크숍에 참여하려고 이태원을 방문한 최다원 씨(24). 검사를 기다리며 사회적 비난을 가장 걱정했다. “지인을 만나러 종종 외출했는데, 혹여나 양성 판정을 받고 이동 동선이 공개되면 싸돌아다닌 무개념 확진자 소리를 들을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이태원의 카페와 술집을 방문한 강모 씨(26) 역시 비슷했다. 회사 내규상 검사 대상으로 결정됐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강 씨는 부정적인 시선을 염려했다.

“단순 이태원 방문이라도 논란이 됐던 확진자와 연관이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걱정했다. 나중에 회사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확진자와 접촉자, 일반인 1498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참여한 일반인은 감염보다 확진이란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비난이나 피해를 받는 일을 더 두려워했다.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완치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2015년에 한국에서 메르스가 유행할 때도 그랬다. 대구의 유일한 메르스 환자였던 공무원 김 씨는 당시 ‘무개념 공무원’으로 불리며 비난을 받았다.

완치 후 그는 해임됐다. 늑장 신고로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공직자로서 시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줘 지방공무원법상 복종·성실·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김 씨는 법원에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지자체와 1년간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결과는 김 씨의 승리였다. 그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죄인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욕설을 들으면서 가족도 많은 상처를 받았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메르스 확진자였던 김병훈 씨에게도 ‘바이러스 덩어리’라는 낙인이 찍혔다. 아내 배윤희 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이 메르스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해자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배 씨는 남편에게 메르스를 옮겼던 ‘14번 환자’가 ‘슈퍼 전파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걱정했다. 메르스 마지막 사망자인 김병훈 씨의 이야기는 김탁환 작가의 소설 <살아야겠다>에 담겼다.

개인정보 공개, 신상털이, 비난 여론, 사회적 낙인은 감염병 생존자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립중앙의료원 연구팀은 서울대병원 서울의료원 충남대병원 연구팀과 2015년 메르스 당시 생존자 148명 가운데 63명의 정신건강 문제를 연구했다.

연구결과 생존자 34명(54%)은 완치 1년 후에도 하나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를 가졌다. 42.9%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27.0%는 우울 증세를 보였다. 22.2%는 중증도 이상의 자살 경험을 했으며 28%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생존자가 사회적 낙인을 높게 인지할수록, 감염 당시에 불안 수준이 높을수록 PTSD 위험도가 높아졌다. 박혜윤 서울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환자의 후유증을 줄여야 한다. 감염자에 대한 낙인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환자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대표는 “메르스 때 수집한 개인정보를 아직 폐기하지 않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도 개인정보가 제대로 다뤄질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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