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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특집 (71) 자가격리자의 하루
이사민 기자 | 승인 2020.09.06 19:51

 

오전 11시 57분. 격리기간에 사용한 여행 가방. 쓰레기를 담은 주황색 의료폐기물 전용봉투. 벽에 일렬로 세웠다.

오전 11시 58분. 마음이 들뜬다. 부모가 미리 데리러 왔을지. 나가면 무엇부터 할지 기대한다.

오전 11시 59분. 생애 가장 긴 60초가 시작된다. 핸드폰 시계를 바라보며 카운팅을 시작한다. 5, 4, 3, 2, 1. 정오. 이제 자유의 몸이다.

조수범 씨(28)는 최근 자가격리에서 해제됐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8월 12일에 입국했지만 2주 뒤인 8월 26일 집으로 돌아갔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한민국 대구까지 귀국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그 뒤에는 자가격리 생활이 기다렸다. 그는 대구의 에어비앤비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원래 집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가족의 불편이 문제였다.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빌려야 하고, 어머니는 밥을 두 번씩 차려야 한다. 만일 조 씨가 양성판정을 받으면 아버지는 일을 쉬어야 한다. 조 씨는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을 돌린 선택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임시 생활시설. 대구시가 지정한 격리시설은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이 유일하다.

임시 생활시설은 1박에 10만 원. 2주면 140만 원이다. 부담스러운 비용도 문제지만 시설이 좋지 않다. 취사도 불가능하다. 조 씨는 “담당자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가는 걸 추천했다”고 말한다.

조 씨는 동대구역 근처에서 1박에 4만 원 정도인 숙소를 따로 구했다. 방값과 식비 등을 합쳐서 70만 원이 들었다. 시설의 절반 가격이다.

▲ 조수범 씨가 자가격리를 하던 숙소(조수범 씨 제공)

자가격리자의 생활은 단조롭다. 조 씨는 아침에 일어나 창문부터 열었다. 2주간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할 일 없이 상념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오전 9시 30분이다. 핸드폰 앱으로 자가진단을 할 시간이다. 자가진단표를 보며 발열, 증상 유무, 체온 등의 5가지 항목을 입력한다. 30분 뒤인 10시까지 입력하지 않으면 보건소에서 연락이 온다.

정오 직전. 자가진단을 잘 끝냈는데 보건소에서 전화한다. “잘 지내시죠? 몸은 좀 어떠세요?” 이틀에 한 번꼴로 확인한다. 조 씨는 당시 세상과 단절되니 얼굴 모르는 보건소 직원의 전화조차 반가웠다고 한다.

점심은 배달앱으로 시킨다. 현관문을 열고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음식을 집어 든다. 다 먹고 남으면 비닐봉지에 모아 냉동실에 보관했다. 자가격리기간에는 쓰레기를 버릴 방법이 없다.

그가 남긴 음식쓰레기는 2주간 냉동실 안을 가득 채웠다. 방 한쪽에는 재활용 쓰레기가 겹겹이 쌓였다. 조 씨는 이를 애써 무시한 채 남은 시간 동안 드라마와 예능을 몰아서 봤다.

저녁을 먹으면 오후 7시 30분. 핸드폰이 다시 울린다. 자가진단표에 한 번 더 입력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 2주간 28번 반복한다. 조 씨는 저녁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이틀이 지나 있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자가격리자에게 발송되는 격리통지서(조현진 씨 제공)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8월 26일 오후 6시 기준으로 국내 자가격리 관리 대상자는 6만 3975명이다. 절반 정도(3만 423명)는 조 씨와 같은 해외입국 자가격리자다. 일일 확진자가 400명대까지 늘면서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자가격리 대상자 역시 크게 늘었다.

편입을 준비하는 대학생 조현진 씨(22)는 3월 말 코로나19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를 했다. 편입학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강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조 씨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 “원망스러웠다. 원래 공부하던 템포가 있는데 그게 무너지니까 무기력해졌다.”

그는 원래 머물던 셰어하우스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자기 방에서만 생활했다. 화장실도 당연히 따로 썼다. 식사는 다른 사람이 공동주방을 이용하는 시간을 피해서 했다.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까지 한 다음에야 겨우 주방으로 나갔다.”

그는 자가격리 기간이 감옥 같았다고 말한다. 나가지 못해 답답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점은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사는 4명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 중 1명이 인턴 중이었다. 밀접접촉자가 된 게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자가격리 초기에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셰어하우스에 있던 사람도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자가격리를 하던 2주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앞섰다. 연이은 음성 판정 후 뒤늦게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가 나와 불안감을 쉽게 지우지 못했다.

조현진 씨는 자가격리자를 위해 근무하는 공무원을 보며 방역대책에 조금씩 안심했다. “방이 반지하라 휴대폰 GPS가 안 잡힐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바로 전화가 울렸다.”

조수범 씨도 당국의 관리에 만족했다. 지정 장소에 가기까지의 과정부터 철저했다고 한다. 원래 동대구역에서 숙소까지 걸어갈 계획이었지만 대구시는 택시까지 지정했다. 기사는 방호복을 입었다. 자가격리 기간에 대구시는 초코파이, 물, 쌀 같은 구호물품을 보냈다.

▲ 대구시에서 보낸 구호물품(조수범 씨 제공)

현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가격리는 불편하다. 회사원 임철순 씨(62)는 3월부터 5월까지 출장차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 돌아오면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임 씨는 운이 좋게 지인의 빈 월세방에서 2주간 생활했다.

임 씨는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쉴 수 있었다”며 만족하면서도 외로움을 토로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가족과 식사하고 출퇴근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조수범 씨는 입국 직후 처리할 일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시험이 코앞인 조현진 씨는 남들처럼 편하게 공부할 기회를 잃었다.

자가격리를 경험한 이들은 입을 모아 인력 부족을 걱정했다. 조수범 씨는 격리가 끝나갈 무렵에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 “광복절 이후 수도권 확진자가 급격히 늘었을 때다. 인력이 부족해 연락이 어렵다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조현진 씨는 자가격리가 끝난 뒤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해제 당일 자가격리 위치를 벗어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담당자가 조 씨와 그의 동명이인을 헷갈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지침을 위반했다고 생각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도 6만 명 넘는 시민이 당국에 협조하며 자가격리 기간과 생활수칙을 준수한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따르는 이유는 한 가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조현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씩만 불편을 감수해서 빨리 다른 사람의 눈코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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