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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특집 (61) 장애인 가족, 투명 마스크 만들다
최미정 기자 | 승인 2020.06.24 15:48

 

“오늘 학교에 갔는데 수업을 듣기가 너무 힘들어요. 마스크 때문에 입 모양을 알아볼 수가 없고, 말소리도 둔탁하게 들려서 공부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한국난청인교육협회의 투명 마스크 제작은 고등학생의 카카오톡 메시지로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협회의 오은주 이사장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어린이 1000명 중 1~2명이 난청으로 태어난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국내 청각장애인은 학생 6200여 명을 포함해 약 34만 명이다. 소통을 위해 청각장애인은 상대방의 입 모양을 읽어야 하지만 이들을 위한 마스크가 없어서 협회가 나섰다.

기자는 서울 중구 약수동의 일식집에서 협회의 오은주 이사장과 이지은 대외협력부 이사를 만났다. 6월 12일이었다.

협회는 청각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뜻을 모아 2006년 설립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다가 언어치료사와 사회복지사가 되면서 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회원 700여 명은 모두 청각장애인과 그들의 부모. 서울과 제주를 포함해 전국에 11개 지부가 있다. 이들은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시행, 여름 가족 캠프, 도서출판 활동을 통해 난청인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오 이사장과 이 이사는 약속보다 10여 분 늦게 도착했다고 사과했다. 기자가 바쁜 일정에서 인터뷰에 응해 감사하다고 하자 “부디 많이 알려주세요. 반가운 연락인걸요”라며 웃었다.

▲ 오은주 이사장(왼쪽)과 공장 대표가 마스크 제작으로 회의하는 모습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4월 초부터 오 이사장에게 연락하는 회원이 늘었다. 청각장애인은 주로 수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93%는 말과 구어로 소통한다.

3살 이전에 인공달팽이관 수술(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언어재활 치료를 받으면 90% 이상이 일반 학교에 다닐 만큼 듣고 말할 수 있다. 귓속의 달팽이관에 가느다란 전극선을 삽입하여 전기신호로 소리를 듣도록 한다. 다만 입 모양이 보이고 소리가 정확히 들려야 한다.

청각장애 학생은 인공와우기계로 수업을 듣는 만큼 화질과 음질이 모두 떨어지는 온라인 수업에서 불편함을 겪었다.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온라인 수업만이 아니었다. 등교 개학 후에도 입 모양을 가리는 마스크 때문에 수업 집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오 이사장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부에 민원을 넣었다.

시도교육청 17곳에 투명 마스크 판매처를 묻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는 답변만 들었다. 오 이사장은 적극적인 도움을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임원들과 함께 투명 마스크 제작에 나선 이유다.

마스크에 대한 지식도, 공장도, 지원금도 없어서 오 이사장은 발로 뛰었다. 공장 20여 곳에 연락했지만 1곳에서만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조리용 페이스쉴드(face shield) 마스크를 제작하는 공장과 함께 만들기로 했다.

오 이사장과 회원들이 직접 착용하며 디자인을 보완했다. 완전 투명창은 입 모양이 가장 잘 드러나서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가 플라스틱이라서 피부가 예민한 사람에게 염증이 생겼다.

공기가 순환되도록 하는 수동 정화장치도 필요했다. 수업하면서 수시로 만지기는 너무 번거로워서 투명창 위아래에 천을 대기로 했다. 또 얼굴에 자연스럽게 밀착되도록 코와 턱을 덮고, 입김이 서리지 않도록 코팅을 하고, 귀 끈으로 크기를 조절하도록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교육용으로 사용해도 괜찮다고 했다. 유해물질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는 보건용 허가는 불가능하지만 교육용은 가능하다는 설명.

▲ 협회가 만든 투명 마스크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재를 못 구해 일정이 계속 미뤄진 일이다. 보건용 마스크 수요가 급증한 상황이라 개학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다. 공장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포장과 배송을 도왔다. 이렇게 해서 마스크 4000장을 만들어 예약판매했다. 5월 5일이었다. 빠르게 매진됐다.

어려움 속에서 목표를 이루는 힘. 원동력을 묻자 오 이사장은 잠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청각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언어치료사가 됐다.

“내가 하는 일이 지금은 미약해도 어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후에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죠.”

이 이사 역시 청각장애 자녀를 생각하며 마스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가장 큰 힘은 회원의 참여다. 마스크를 배포하자 회원들은 후기를 공유했다. 교사들에 따르면 보건용 마스크보다 답답하지만 목소리가 또박또박 들렸다는 학생의 말에 피로가 사라졌다고 한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특성으로 소리가 작게 들릴 수 있다. 교사는 혹시나 잘 들리지 않을까 몇 번이고 물었다. 또 평소보다 2배 큰 목소리로 수업해 목이 칼칼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런 노력에 감동한 학부모들이 감사와 응원의 글을 남겼다.

학부모 유자경 씨(40)는 정확한 소통이 어려워 친구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들 김도윤 군(5)을 걱정했다. 하지만 교사가 투명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해서 김 군은 잘 적응했다.

서울 용산고 박건희 군(17)은 6월 개학 전까지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교사의 목소리가 작거나 등을 돌리고 설명하면 알아듣기 힘들었다. 개학하면서 교사가 투명 마스크를 쓰고 수업해서 큰 도움이 됐다고 기뻐했다.

▲ 협회와 사랑의달팽이의 업무 협약식

기쁜 소식이 6월 19일 협회에 전해졌다. 올해 건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박민규 씨(20)가 장학금 50만 원을 기부했다. 마스크 제작에 써달라고 했다. 박 씨의 어머니 정강설 씨(46)는 청각장애인이 마스크를 쓰고 소통하기가 훨씬 힘들어서 투명 마스크 제작이 반가웠다고 말했다.

기자가 오 이사장을 만난 6월 12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중구의 ‘사랑의달팽이’ 사옥에서 ‘한난협과 사랑의달팽이의 업무 협약식’이 열렸다. 사랑의달팽이 역시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단체다.

인공와우 수술과 사회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2007년 설립됐다. 해마다 인공와우 수술 및 보청기 지원으로 소리를 찾아주고 사회적응을 돕는다. 2019년에는 난청인 178명의 인공와우 수술비를 지원했다.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의 사진과 다채로운 색의 달팽이 모형이 사옥 입구에 보였다. 오 이사장은 두 단체가 단합하면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기념사에서 말했다.

사랑의달팽이의 오준 수석부회장은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여전히 사회에는 변해야할 시선과 편견이 많아요. 사회에서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봅시다”라고 대답했다.

오 수석부회장은 2015년에 아시아 최초로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직을 맡았다. 그는 “국가가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위한 권리를 보장해 줄 때, 복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죠”라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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