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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만을 생각한 의사 윤한덕
박예린 기자 | 승인 2020.06.14 17:29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사람은 못 봤어요. 철저하게 일밖에 몰랐던 사람이에요. 오로지 환자를 위하겠다는 이런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

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 대표(53)가 평전 <의사 윤한덕>을 쓰기 위해 윤한덕 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 90여 명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다.

윤 전 센터장은 2019년 2월 사무실에서 급성 심정지로 사망했다. 설 연휴에 몰려드는 응급환자를 돌보기 위해 일을 하던 중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 체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민간인의 국가유공자 지정은 1983년 북한의 아웅산 묘소 폭발테러로 숨진 대통령 주치의와 사진기자 이후 처음이다.

▲ 윤한덕 전 중앙응급의료센터장(출처=중앙응급의료센터 홈페이지)

윤 전 센터장은 1993년 지방 응급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응급의료에 관심을 가졌다. 평전 <의사 윤한덕>에 따르면 차량에 깔리는 사고를 당한 어린아이를 살리지 못한 경험이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료기획팀장이 되면서 시스템 개선을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음압격리텐트와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이 그의 손을 거쳐 생겼다.

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장과 윤 전 센터장은 뜻이 잘 통했다. 안 전 원장은 “내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들었으니까.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실무자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전 국민을 응급의료 요원화하겠다는 안 전 원장의 생각에 윤 전 센터장이 동조하면서 ‘국립중앙의료원 위기대응단(CERT)’이 생겼다. 여기서 전 직원에게 심폐소생술을 가르쳤고 ‘하트히어로’ 앱을 만들었다.

하트히어로 앱은 심정지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빨리 받도록 돕는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가장 가까운 위치의 심폐소생술 교육 수료자에게 연락이 간다. 교육 영상을 볼 수 있고 주변의 자동심장충격기(AED)와 병원 위치도 확인된다.

질병관리본부와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급성심장정지 환자발생 건수는 3만 539건이다. 골든타임 4분 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생존율은 최대 3.3배 증가한다.
하지만 생존율은 전국 평균 8.6% 수준이다. 2012년 4.4%, 2014년 4.8%에 비해서는 늘었지만 생존율을 높이려면 많은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알아야 한다. 하트히어로앱은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의 팀워크는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빛을 발했다. 안 전 원장은 “우리는 한 팀으로 같이 일했다. 윤 전 센터장은 음압격리텐트 아이디어를 냈고 시설팀 신동훈 직원이 음압 병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평소 이동형 병원에 대해 연구하던 윤 전 센터장은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음압격리텐트를 제안했다. 음압 상태로 유지되는 이동형 병실을 의미한다.

안 전 원장은 “책임질 테니 무조건 들여오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의료원 주차장에 음압격리병실 2실을 포함한 음압격리텐트 5개가 설치됐다. 나중에는 선별진료소로 사용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이 보인 감염병 대처 능력에 대한 외신의 칭찬은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때 겪은 경험이 소중한 자양분으로 작용한 결과다.

▲ 국립중앙의료원 주차장의 음압격리텐트(출처=YTN)

두 사람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3년간 함께 일했다. 안 전 원장은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윤 전 센터장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도 너무 잘했고, 뜻도 너무 잘 맞았어요.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동지였지, 동지.”
 
베테랑 의사도 당황하는 순간이 있다. 응급실 환자의 상태가 병원에서 치료할 수준을 넘어설 때다. 결국 수술할 수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는, 전원(轉院)이 필요하다.

문제는 큰 병원 응급실 역시 포화상태라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형곤 젬벡스앤카엘 대표이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전화를 붙잡고 환자를 받아달라고 싸우기도 하고, 애걸복걸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윤 전 센터장은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국립중앙의료원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이하 상황실)을 만들었다. 국내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40곳의 전원 조정업무를 수행한다.
 
처음에는 서울과 경기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한 달에 1~2회, 1일 2교대로 일을 했다. 윤 전 센터장이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결과다. 당시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이던 송 대표도 참여했다.
 
송 대표는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윤 전 센터장을 회상했다. 상황실 업무를 하면 다른 병원의 반발이 심했다. 병상이 비었지만 전원 요청을 받지 않으면 응급의료 평가 때 점수를 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센터장은 개의치 않았다.

윤 전 센터장은 상황실에 애정을 가졌다. 자신도 한 달에 2, 3회는 일했다. 한 달 단위로 근무 일정이 나오는데 갑작스럽게 못 오는 의사가 생기면 자청해서 근무했다.

윤 전 센터장은 환자를 위해 응급의료시스템을 고치려고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잘 맞았던 이유다. 안 대표는 마지막 공식 활동을 함께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에서 주최한 ‘중증환자 사망을 줄이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리폼 토론회’였다.

윤 전 센터장은 ‘지속 가능한 개선을 위한 협업’이라는 주제로 토론에 참여, 응급의료에 대해 기대하는 질과 제공할 수 있는 질 사이의 괴리가 크다며 환자 중심적 응급의료서비스를 위한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 전 센터장의 평전을 쓴 김연욱 대표는 “94년도에 처음 만난 윤한덕 선생은 귀공자 같았어요. 15년이 지난 2009년에 만났을 때는 옛날 모습 매치를 못 시켰어요. 남들이 (윤한덕 선생이라고) 말하니까 알게 됐죠”라고 회상했다.

가냘팠던 얼굴형은 없었다. 피곤에 절어 꾀죄죄했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밤낮없이 응급의료 체계를 개선하는데 몰두했는지를 보여줬다. 밥을 먹을 때도 응급의료 생각뿐이었다. 안 대표는 “윤 전 센터장은 밥 먹을 때도 응급의료 얘기 밖에 안해요”라고 말했다.

윤 전 센터장이 숨지면서 개된 사무실은 센터장의 직함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한쪽 벽면에 간이침대가 보였다. 밤늦게까지 업무를 하고 쪽잠을 자던 곳이다.

▲ 윤한덕 전 센터장의 사무실에 있는 간이침대(출처=동아일보)

윤 전 센터장의 부인 민영주 씨는 조선일보에 보낸 글을 통해 “내세우기를 싫어하던 남편이 사후에 유명해졌다”며 “모든 관심과 사랑으로 남편의 죽음이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정부는 1년 만에 응급의료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전국을 70개의 권역으로 나눠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의 지역응급의료센터를 갖춘다는 내용. 보건복지부는 환자중심의 응급진료를 강조하던 윤 전 센터장의 정신을 받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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