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가족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러나 때로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참기 힘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또한 가족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번듯하지만 가족의 보이지 않는 면은 왜곡되어 있을 수 있다. 또한 가족이 하나의 공동체라고 하지만 개별적인 객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공간은 하나지만 하나가 아닌 단절됨이 있다. 작가 김지현은 이것을 "구겨진 이어짐"이라고 명명한다. 나오고 싶고 끊고 싶어도, 나올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사람들, 우리가족. 김지현은 이러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MASK-family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구겨진 이어짐"-김지현이 말하고 싶은 것

김지현의 "구겨진 이어짐"은 이전의 작업에서 연결되는 내용들이다. 이전의 작품 중 의자 엉덩이 부분에 엉덩이 엑스레이 사진을 넣은 작품(들춰보기)이나 웨딩드레스 속의 하얀 해골 뼈를 감춰 둔 설치작업(세레나데) 등이 MASK-family와 같은 맥락의 대표적 작품이다.
"들춰보기"에서 의자에 앉은 상태의 엉덩이 부분은 겉으로 노출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 엉덩이뼈에는 상처가 아문 자국, 수술로 뼈에 심을 박아 넣은 것이 보인다. 숨겨져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가족의 갈등과 상처에 대한 표현이다. "세레나데"는 김지현의 결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과거 작품들은 김지현의 암울한 개인적 가족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제 김지현은 결혼 이후, 보다 보편적 가족사로 초점을 전환하고 있고, 그 결과물이 바로 MASK-family이다.

MASK-family 뒤져보기

전시장 입구는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커튼을 걷고 들어서면 푸른빛을 발산하는 커다란 스크린 두 개만이 양쪽에 서 있었다. 양쪽 스크린 사이로 의자들이 배열되어 있고, 관람객은 그 곳에 앉아 비디오 내용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럼 4분 42초의 비디오 속으로 들어가 보자.  "MASK-family"라는 자막이 지나가고, 여자아이의 흑백사진이 처녀의 사진으로 바뀌고, 면사포를 쓴 여자사진이 중년여자의 얼굴로 바뀐다. 엄마의 얼굴은 딸의 얼굴로 바뀌고, 그 얼굴이 반으로 나뉘어져 가면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는 아들의 얼굴이, 또 그 속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있다. 우리는 가족 속에서 딸, 아들 또는 엄마라는 역할이 있다. 이러한 역할은 성장과 결혼을 통해서 바뀌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가족에서 겉으로 드러난 역할을 마스크로 표현했다. 비록 하나 하나의 가면들은 모두 닮은꼴을 가지고 있고 하나의 공동체 속에 있지만, 분명히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곧이어 두 개의 화면에 각각 다른 마스크가 등장한다. 양 화면의 두 마스크는 말없는 입모양만 반복하다가 각 객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한두 마디만 터뜨린다. 조용한 공간에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폭언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1>     딸 :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싫어.싫어."
          아버지 : "시끄러워.", "지겨워."
<2>     어머니 : "(소름 끼치도록 자지러지는 비웃음 소리)미쳤어…."
          아버지 : "또 시작이다!"
<3>     아들 : "위스키,위스키. 내가 잘못했어요.내가 잘못했어요. 위스키, 위스키."
          엄마 :  "어째, 니 아비랑 한통속이냐?", "못살아, 못살아."
두 화면이 마주보고 있지만 소통은 단절되어 있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조장되어 있을 뿐이다. 특히 아들의 대사는 예외적인 뉘앙스가 있는데, 무표정한 얼굴이 억지웃음으로 표정이 바뀌며 계속 '위스키'를 반복한다. 가족들에게 웃어 보라 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 가족들은 향한 비웃음이라 할 수도 있다.
비디오의 끝부분에서는 각 대사들이 일시에 터져 나온다. 소통은 더욱더 단절될 뿐이다.

작품 입구의 검은 커튼은 젖히고 MASK-family를 대면했을 때, 처음 느껴져 온 것은 그로테스크한 푸른빛이었다. 마치 내밀한 가족사 안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듯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은 푸른빛. 그러나 전반적인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의도된 연출일 뿐이다. 공포감이 연출되는 푸른빛은, 동시에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푸른빛은 심리치료에서 특별히 안정을 주는 색으로, 심리치료에 효과적인 색이라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가족 내부의 공포감 뒤에, 역설적으로 숨겨져 있는 내면치료의 주문을 읽을 수 있다.

Video Installation (비디오 설치), 그리고 김지현의 시도

현대미술은 대중문화와의 접속을 끊임없이 시도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기만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Video art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것이 비디오설치(Video Installation)가 되었든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이 되었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특히 Video Installation는 video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이 나는지, 지금 제대로 화면이 돌아가는 건지도 알 수가 없고, 관람자들은 지루함에 지친다. 


김지현은 이러한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남을 시도했다. 관람자들이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가진, 그런 Video Installation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MASK-family는 비디오의 시작과 끝이 있고, 빠른 화면 전개와 거울을 이용한 특별한 화면이 제공된다. 특별한 화면이란 천장이다. 프로젝터를 거울에 비추면, 거울에 맺힌 상은 천장에 비치고, 천장에 비친 상은 다시 거울에 비치게 된다.

그러나 Installation video는 표현영역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주목되지만, 표현언어의 구체성이란 점에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지 않을까 싶다. 매체자체의 기능에 대한 탐닉을 벗어나지 못하는 비디오 아트가 많은데, 단순한 매체확장뿐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조형적 기법들의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비디오라는 매체 활용에서는 화면편집이나 촬영기술 등의 기술적인 기법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편집은 타인에게 맡긴다. 그에 반해, 김지현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내었고, 이런 그녀에게 위와 같은 과제들을 풀어 나아갈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지현 video installation MASK-family
            1999.8.18~9.5
            금호미술관 (tel : 720-5114 / fax : 720-6474)

박성은 기자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