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서 열 세 번째 등수의 아이가 그렇듯, 2남 3녀 중 두 번째 딸이 그렇듯, 보호색을 가진 여린 곤충들이 그렇듯 눈에 띄지 않는, 눈을 뜨지 않은 삶을 살아온 한 여인이 유명인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콩밭을 매거나 논에서 풀을 뽑아 내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장날 버스 정류장에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농협에 돈을 빌리러 가서도, 학교의 어머니 회의에서도, 낯선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줄 때도, 언덕 위에 저 집 말이에요? 몇 년 전에 윗집 남자와 아랫집 여자가 통정을 하여 두 가정이 다 끝장을 봤지……하며 또 그녀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전경린의 신작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바람난 유부녀의 이야기를 다룬 통속소설이다.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도 안한 처녀가 눈물을 흘리며 읽게 만든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무언가 가슴에서 복받쳐 올라오는 동정심에 울음이 난다. 유부녀 혹은 유부남이 애인이 생겼다는 것, 그것은 분명 일탈이다. 물론 그것이 하나의 반복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예외겠지만. 전경린이 그리는 일탈은 우리 시대 2남 3녀 중 둘째 딸들의 욕망을 대신 채워준다.

주인공 미흔은 위로 몸이 안 좋은 언니와 여동생, 남동생이 있는 둘째 딸이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열 두 살 난 그녀를 할머니 곁에 남겨두고 7년 동안 단 한번도 들르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냉소로 살아온 스물 한 살의 그녀에게 냄새가 좋은 남자, 효경이 나타난다. 그 때부터 그녀의 꿈은 스물 한 살에 만난 그 남자가 평생 동안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 또한 단 하나의 남자만을 사랑하며 같은 삶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른 세 살의 그녀에게 그 소박하고 은밀하고 가난한 꿈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편협한 결벽증이 빚어낸 망상병이었다는 사실로 다가온다.

옆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스물 여덟살의 여직원과 '바람이 났던' 효경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자세히 그려지지 않는다. 1년 전 동아일보에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이란 이름으로 연재되었을 당시 소설 초반이 효경의 시선으로 그려졌던 점과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1년간 작가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효경의 역할을 조역으로 깎아 내린 것은 "남편이 바람을 폈으니 나의 행동도 정당하다"는 식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의 생을 지배하고 있던 커다란 믿음이 산산이 부서진 후 미흔은 변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에 무기력하고 나른해지며 철저히 세상에 무관심 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은 교훈적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다가온다. 옷을 입은 채로 바닷물에 빠지는 것처럼. 서른 아홉의 잘 생긴 유부남 규는 미흔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는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제안한다.

불륜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 범죄가 된다. 다행히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은 두 남녀가 헤어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난다는 데 까지는 뻔한 결말이지만 그 후는 철저히 '전경린식'이다. 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쳤으면 얼마나 다쳤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교통사고 이후의 이야기는 다시 미흔과 효경의 이야기다.

전경린 소설의 주제는 '일탈'이다. 그녀는 누구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한 번쯤 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뛰어 들고 싶은 욕망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은 일탈을 그린 수많은 소설과 확연히 구별된다. 일탈의 이유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첫 창작집 「염소를 모는 여자」에서도 먼저 배신하는 건 남편이다. 일탈의 과정도 낯설지 않다. 혀를 내두를 만한 뛰어난 비유는 독자를 과정 하나하나에 동참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작년 5월 1일부터 동아일보가 세 명의 30대 여류작가-공지영, 전경린, 은희경의 소설을 릴레이식으로 연재할 때 두 번째 바통을 이어받았던 작품이다. 연재 시에도 이 소설은 세 자매 중 둘째 딸이 그렇듯, 어설프고 요란하기만 한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연재를 무사히 마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박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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