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의 인헌고 학생들이 만든 ‘학생수호연합’은 지난해 10월 SNS에 글을 올렸다. 일부 교사가 교내 마라톤 행사에서 반일구호를 외치도록 강요했다는 내용. 서울시교육청은 부적절한 발언을 확인했지만 징계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 18세 선거권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인헌고 사태’가 선거권 연령 하향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임헌조 사무총장은 “잘못하면 교실을 정치투쟁이나 진영논리에 격화된 장소로 변질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신현욱 정책본부장은 “고등학교 3학년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여러 정치적 문제에 휘말리어 학업에 제대로 임하지 못하거나, 다른 청소년의 학업까지 방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공정사회)의 이종배 대표는 참정권 확대라는 헌법적 가치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청소년도 유권자로서 충분히 합리적인 투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걸림돌은 한국의 입시제도와 교육환경이다.

“입시가 아닌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교육환경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은 입시 경쟁이 치열한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현안과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 후보의 공약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진정한 주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기자회견(출처=교총)

교총은 교내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공직선거법·정당법·교육기관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종배 대표도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실의 정치화는 만 18세 선거권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임헌조 사무총장은 “정치가 양극단에서만 움직이는데 교실 안에서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이나 제대로 된 선거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시민단체는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임헌조 사무처장은 한국식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란 1976년 독일에서 만든 정치교육원칙이다. 강압적인 교화를 금지하며 현실에서처럼 수업시간에도 논쟁적 상황을 유지하고 학생 스스로의 정치적 행위 능력을 강화시키자는 내용.

한국식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위해서는 교총과 전교조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 일반 유권자가 동의할 수준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임헌조 사무총장은 말했다.

교총은 논쟁교육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교육과정 속에서 청소년 스스로 논쟁 사안에 대해 평가하도록 만들자는 주장. 예를 들어 탈원전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번갈아 경험하는 식이 가능하다. 모의선거도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는 찬성한다.
 
공정사회의 이종배 대표는 학제개편을 언급했다. 초등학교에 1년 일찍 입학하거나 초중고 12년에서 1년을 줄이자는 주장. 학제를 바꾸면 만 18세에는 대학에 입학하거나 구직활동을 하므로 입시경쟁 속의 고등학교 3학년이 선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공주 한일고에 다니는 이융희 군(18)은 만 18세. 교복 입은 유권자다. 이 군은 정치가 가장 밀접하면서도 가장 먼 존재라고 말했다. 개인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참여할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만 18세 선거권에 반대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체계적인 선거교육은 받지 못했다. 대신 선거권이 있는 학생에게 학교가 보낸 선거교육 참여문자를 받았다.

임헌조 사무총장은 청소년을 위한 공약으로 만 18세의 표심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곧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가거나 구직활동을 시작하므로 청소년 공약은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첫 선거를 치르는 만 18세 유권자에게 “정답을 고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민주시민으로 자리 잡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