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JMS!"
방송국 복도를 지나가던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본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인사하는『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남상문PD(33).
JMS는 지난 3월「젊은 영혼의 무덤 - JMS」편이 방영된 이후 그에게 붙은 별명이다. 깔끔한 와이셔츠 차림의 평범한 샐러리맨 같은 인상의 남PD는 시사 다큐멘터리 PD라면 야전 잠바에 거친 외모를 가졌을 거라는 상상을 깨버린다.

종교라는 방송의 터부를 깨고 JMS를 방영한 것은 지난 3월.
"저는 JMS문제를 종교 문제로 보지 않았어요. 하나의 사회문제로 봤죠. 그리고 그 피해자들 대부분이 대학생들이 많았기에 세상에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송 직후 신도들의 하루 6만여 통이라는 전화폭력으로 한동안 방송국 업무는 마비됐었다. 

그리고 지난 7월 24일. 겁 없는 남PD는 다시 일을 저질렀다. 3월에 이어 JMS 2탄「계속 드러나는 JMS 실체. 그로부터 4개월」을 준비한 것이다. 방영 당일 SBS 주변에는 전경들이 배치됐다. 3월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게다가 5월 11일 MBC의 유사 프로그램 방영을 막기 위해 신도들이 난입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7월 24일 여의도의 모습은 방송의 전장, 뉴스 제작팀의 일화를 그린 만화「라스트 뉴스」속에도 들어있다. 라스트 뉴스를 방영하는 수도 TV는 분노하는 신도들에게 둘러 쌓여 있다. 전날의 라스트 뉴스가 자신들의 종교인 '행복교'의 교주를 사이비로 말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방송국의 굳게 닫힌 문 사이로 라스트 뉴스의 책임 PD인 히노가 나와 항의하는 신도들과 담판을 짓는다.

방송 당일 남PD는 주변의 긴장과는 달리 정작 본인은 퇴근하여 집에서 TV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 날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이미 집회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도들의 집회는 이미 신고를 한 합법적인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시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물론 그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닐까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고민이 하나씩 있다. 사실을 밝히자니 개인의 사생활 등 법에 저촉되는 경우가 있고 이를 피하자니 사실이 가려지기 때문이다.「라스트 뉴스」에서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도청한 테이프를 방영했다. 그러나 JMS의 경우 상당수의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앞에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대다수의 신도들이 이를 부인,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에 몰래 카메라가 사용되었다.
"물론 몰래 카메라를 찍으면 당하는 당사자가 기분이 나쁘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피해를 줄인다고 생각해 보면 먼저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사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이 만나면 항상 잡음은 있기 마련이죠."

잡음의 현장은「그것이 알고 싶다」의 PD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일선 PD 6명 중 4명은 명예훼손으로 재판이 걸려있고, 남PD의 경우도 5건의 소송 중 2건은 결심까지 가 있고 1건은 취하한 상태다. 취재 시 현장에서의 마찰과 취재원의 압력은 이제 일상이 돼 버렸다. 
"이런 것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극복할 자신이 있고 어차피 깨트려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죠. 가끔 핸드폰으로 욕설 섞인 전화가 걸려오는데 대개는 그냥 바로 끊거나 아예 핸드폰을 꺼 두죠. 한번은 '그래 너 핸드폰 요금 좀 나와봐라'라는 생각에 3분간 가만히 있었어요. 나에게 오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집으로 전화가 오면 가족들이 걱정돼 신경이 많이 쓰이죠."

1. 밥은 3분내로 먹을 것
2. 무슨 일을 하든 뛰어라
3. 선배보다 한 시간 빨리 나올 것
4. 수면은 세 시간이면 충분
5. 스튜디오의 쓰레기 줍기, 대걸레 청소는 솔선 수범할 것
6. 잘못은 자신이 덮어써라. 잘못은 항상 너에게 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는 큰소리로
                                                                    -라스트 뉴스팀의 기본방침(3권 p. 21)-

남PD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항상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 만날 시간도 없고, 사회에 관한 소식들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된다.
"무척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면 사회에 대해 좀 더 잘 알아야 하는데 일이 바쁘다보니 도리어 사회와는 멀어지죠. 프로그램에 계속 신경을 써야 되니…. 프로그램은 애 기르는 것과 같아요. 조금이라도 관심을 안 주면 탈선을 하고 애정 결핍에 걸린 것 같이 돼 버리니까요."

남PD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자아도취.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놈이야라는 생각을 갖고 나 잘난 맛에 만들어야 합니다. 한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떨리는 일인데, 방송은 수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자신이 없으면 프로그램도 자신 없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PD는 평소 후배들에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마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을 자신 있게 만들게 해줄 마약. 이 마약은 바로 프로그램을 지지해주는 시청자의 눈이다. 하지만 그 마약이 때때로 남PD를 어렵게 만든다. 특히 작년 1월에 한밤의 TV연예와 타 방송사의 정말 괜찮은 다큐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20%대 8%로 나왔을 때처럼 남PD를 당혹스럽게 만든 적은 없었다.  
"미디어 비평하는 단체들을 보면 '시청자를 우습게 보지 마라. 교양 프로그램을 신설해라'라고 말들을 하는데 막상 보면 시청자들은 교양 프로그램을 안 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교양프로그램도 자꾸 쇼킹 다큐로 가는 거죠."

TV에 방영될 수 있는 것과 현실과의 차이가 남PD의 또 다른 고민이다. 한번은 호객꾼, 일명 삐끼들의 행태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대천 해수욕장에 갔다가 삐끼 40명에게 둘러 싸인 적이 있었다. "왜 힘없는 우리들만 가지고 그러냐. 힘있는 사람은 다루지도 못하면서"라고 따지는 사람들 속에서 남PD는 할말을 잃었다고. 오히려 그 때가 JMS 때 보다 더 무서웠다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수해 때 문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PD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금방송의 전형적인 틀 -"힘내서 다시 한번 일어나세요"라고 말하면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로 답하는-을 생각하면서 갔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서린 원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억울하다. 왜 우리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자니 모금방송 화면으로는 적합하지 않아 도리어 모금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지는 것과 현실은 차이가 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근사치를 조율하여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만화인「라스트 뉴스」에서조차 극복되지 않은 현실과의 괴리. 하지만 남PD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있기에 이로 인한 실망은 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또 하나의 '퍼스트 뉴스'를 준비하러 가는 남PD의 모습에서 그의 다음 뉴스를 그려본다.   

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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