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patience)과 공격적 취재 (aggressiveness). 밥 우드워드 기자가 10여분 인사말에서 강조한 두 개의 키워드다.

9월 26일 오후 3시 서울 신라호텔 3층 오키드룸에서 워터게이트 보도의 주역이었던 우드워드 기자가 한국기자들을 만났다. 매일경제신문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모임이었다. 30여명의 기자와 TV 취재진이 참가했다.

언론진흥재단 인사들도 함께 했다. 패널토론이었지만 70대 후반의 우드워드 기자는 노교수가 강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서울에 처음 왔다고 했다.

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토론 겸 사회를 부탁받고 모임에 참석했다. 토론자로 매일경제신문의 장경덕 논설실장,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 그리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개리 류(Gary Liu) 사장이 함께 했다.

▲ 우드워드 기자가 한국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왼쪽부터 이재경 교수, 개리 류 사장, 우드워드 기자, 이하경 주필 (사진제공=한국언론진흥재단)
▲ 우드워드 기자가 한국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왼쪽부터 이재경 교수, 개리 류 사장, 우드워드 기자, 이하경 주필 (사진제공=한국언론진흥재단)

인내심과 공격적 취재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네 사람의 질문과 토론을 평화롭게 소화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통역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장애물은 우드워드 기자였다. 그는 입을 열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천천히 차분하게 말하면서 청중을 끌어들이는 이야기를 자르고 끼어들기는 어려웠다.

인사말에서 그가 강조했던 인내심과 공격적 취재는 저널리즘 기초 강의의 첫 시간 수업 같은 느낌을 주었다.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 오늘날의 저널리즘 환경에 대한 경계로도 들렸다.

그는 “기자는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 정치보도의 정도를 얘기하며, 권력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시민이 위탁한 것임을 백악관의 권력자들이 잊지 않도록, 기자는 지속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상기시켜줄 정도의 공격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SNS나 인터넷에 떠다니는 단순 정보를 경쟁적으로 퍼 나르는데 온 힘을 쏟아서는 좋은 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된 주장이었다.

 인내심은 취재의 초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집중력이 기자의 또 다른 기본 품성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디지털 세상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흐름에 대한 경계로 들렸다. 그는 “좋은 보도는 세상을 변화시킨다(Good reporting makes difference)”고 강조했다.

베조스의 긍정적 효과

저널리즘 생태계의 어려움, 쇠락하는 신문의 처지에 대한 질문이 주어졌다. 우드워드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의 새로운 사주가 된 제프 베조스(Jeff Bezos) 일화를 소개했다.

경영이 어려운 매체는 베조스에게 구입해 주기를 부탁하라는 농담도 던졌다. 아마존의 주인 베조스는 2013년 개인 돈을 들여 워싱턴포스트를 샀다.

베조스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트럼프의 당선을 워싱턴포스트가 왜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느냐고 편집진에게 물었다. 우드워드 기자에 따르면 편집인은 취재인력과 역량의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얘기했다.

그러자 베조스는 다음 선거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취재팀을 강화하라고 즉시 말했다. 실제로 재정지원이 대폭 강화됐다. 지난 6년 사이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600명 수준에서 800명대로 크게 늘었다. 독자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개발인력도 크게 보강됐다.

우드워드 기자는 베조스라는 사주의 일화를 통해 이러한 워싱턴포스트의 변화를 전달했다. 재력과 판단력을 모두 갖춘 뛰어난 언론사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우리 현실과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워싱턴포스트의 부러운 현실이다.

▲ 우드워드 기자(왼쪽)가 포럼 직후 이재경 교수(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 민주주의는 쇠퇴하는가?

현직 기자들의 질문은 정치, 안보 현안을 파고들었다. 한일 갈등과 북한 핵을 보는 미국정부와 한국민의 시각차를 묻는 질문이 날카로웠지만 우드워드 기자는 정면 답변을 피하며, 저널리즘의 존재이유를 다시 강조했다.

거짓으로 가득찬 트럼프의 트위터 정치를 언급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쇠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우드워드 기자는 저널리즘이 정권의 잘못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권력의 남용 등을 계속 감시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답했다. “지속적 보도를 통한 권력감시의 압력이 중요합니다. 언론의 역할은 그러한 노력을 계속하는 겁니다.” 

“Keep Them Guessing,” 우드워드 기자가 쓰는 트럼프 시대 두 번째 책의 제목일 수도 있는 말이다. 우드워드 기자는 트럼프의 정치전략이 이 말로 요약된다고 강조했다.  확실하게 설명하지 말고, 상대방이 계속 짐작, 추측하도록 내버려 두라

북한 핵 문제나 중국과의 경제협상, 민주당과의 정치협상에서도 트럼프는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를 고집해 우드워드 기자는 이 구절을 다음 책의 제목 가운데 하나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짜뉴스 라는 말 쓰지 말아야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말은 기자들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우드워드 기자의 충고였다. 그는 이 말이 트럼프 대통령의 천재적 정치력을 보여준다고 했다. 우드워드 기자가 직접 사용한 표현은 ‘정치적 스턴트(political stunt)’였다.

우드워드 기자의 설명을 들으면, 트럼프는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일상화시키며 그를 비판하는 매체를 모두 가짜뉴스로 몰아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불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사실과 진실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저널리즘이 존재하기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일상화 시킨 셈이다.

이에 따라 모든 정보가 상대화되고 정파적 해석이 주류가 됐다. 그러니 누구라도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트럼프적 환경의 정당성을 확산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게 우드워드 기자의 주장이다.

전설의 서울 강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브래들리 편집인에 대한 회고,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란 영화의 에피소드, 그리고 워터게이트 시절 발행인이던 그레이엄 여사가 강조했던 권력에 대한 탐사보도에 대한 열정은 다른 경로로 익히 알던 내용이었으나 직접 듣는 즐거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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