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종이 인형의 옷을 갈아 입히는 꼬마들을 보고 있자면 문득 삶이란 옷 갈아입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을 위한 의식주 가운데 맨 앞에 위치한 옷,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옷, 치장을 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옷,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는 옷, 정치적 로비의 수단으로 쓰여지는 옷... 일상 속에서 옷의 의미는 다양하다. 한번쯤 일상을 벗어나 옷에 대해  낯선 의미를 부여해 보는 건 어떨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옷 그 겉과 안'(7월28일까지)전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 '난해하게 보이는 현대 미술의 쟁점을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옷을 택했다'는 기획의도와 무관하게 전시된 옷들은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1부 미술로서의 옷, 2부 예술로서의 옷, 3부 패션으로서의 옷, 4부 오늘-우리의 옷'의 네 가지 주제로 펼쳐지고 있는 이번 옷 전시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옷은 감춤과 동시에 드러냄을 추구한다. 이런 양면적인 옷의 속성을 이용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노골적으로 전복시킨 작품, '신화- 실천적 패러다임을 위하여'(정영훈). 정영훈의 옷은 치부를 드러내기 위한 옷이다. 잠수복 모양의 흰색 면 소재의 옷들이 원형 옷걸이에 빙 둘러 걸려있다. 새하얀 옷들의 가슴과 사타구니에는 유방과 성기의 적나라한 실사가 프린트되어 있다. 그 곳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고 있는 관객들은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옷이라는 감옥 속에 숨겨져 터부시 돼 온 성의 신화에 대한 작가의 도전적 메세지일까.

안규철의 옷 한벌 한벌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샴 쌍둥이처럼 소매가 붙어있는 세 벌의 검은 외투에는 '단결,권력,자유'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구두 세 족의 앞코와 뒷굽을 붙여놓고 두 켤레의 구두로 표현한 '3분의2 사회'.  공간 한 켠 나란히 걸려있는 앞면 뿐인 와이셔츠와 뒷면 뿐인 와이셔츠. 한 벌로서 충분하지 못한 각각의 옷들은 개인만으로 충분하지 못한 인간을 상징한다. 그것의 조합과 단결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권력의 형태는 기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의 아이러니는 서로 등지고 있는 거대한 방패 모양의 웃옷 두 벌에 붙은 제목이 '마주보기'(신치현)인 것과 일맥 상통한다. 이렇듯 '미술로서의 옷'은 미술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으로 쓰였다. 너무나 일상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오히려 전복성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었다.

'예술로서의 옷'을 '미술로서의 옷'과 굳이 구분지을 필요는 없다. 발레나 오페라와 같은 종합 예술에서도 옷(의상)은 회화의 영역임과 동시에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1부에서 김혜민의 '영혼의 옷'이란 작품을 보고 품었던 의구심-육체가 아닐까라는-은 2부에서 김혜연의 '빛의 감옥'을 보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진흙을 이용해 인체와 옷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과 투명 인간이 옷을 입은 형상과 같은 '영혼I,II,III' 시리즈(이정희)는 '모든 실존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옷이라는 파생 실재로 나타난다'라는 이번 전시의 큰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패션으로서의 옷' 또한 상징성과 기능성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나타난다. 옷의 해체와 재결합이 유쾌하게 시도된다. 단점을 부각시켜서 개성을 살린 베네통 광고, 옷이 물에 젖으면 안된다는 옷 광고의 불문율을 깬 NIX 광고의 실험 정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슬라이드를 이용한 김숙진의 '건축의상'은 공간 속에서의 옷의 의미를 시사한다. 세계적인 도시의 장면들이 돌아가면서 벽에 비치고 옷의 그림자는 사진 속의 건축물 사이에 선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있냐고.

'오늘,우리의 옷' 중 '환생'(김숙진)이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한복 고유의 옷감들이 천연의 재료로 염색된 듯 빛 바랜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벽을 수놓는 가운데 몇 점의 개량 한복들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오늘, 우리의 옷으로 환생한 개량 한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문득, '함께하는 공간 속의 또 하나의 작은 갤러리'라는 작품의 제목이 떠오른다. 옷이 작품이 된다면 일상은 또 하나의 갤러리가 된다는 뜻일까.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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