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는(informed)것이 곧 이해(under stand)인가?" 대답은 항상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너무나 자주 들어 '알고' 있는 힙합(hiphop). 우리는 이해하고 있는가? 과연 이해를 바탕으로 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가? 질문이 유치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렇게 유치한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지금까지 우리가 각자의 지적 허영 뒤에 스스로를 숨김으로써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게 되리라.

힙합의 기반은 반항할 수밖에 없는 권위적 사회시스템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힙합을 정의했다. "힙합이란 미국 사회 하류층 흑인들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 현상이다." 너무 피상적이라 갈증이 날 정도로 메마른 사전적 해석이다. 정의부터 새롭게 해보고자 신촌에 위치한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찾았다.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가리온, DA CREW, SIDE B, JOOSUC 등 힙합 그룹 위주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공연하는 곳이다. 운영을 맡고 있는 이종현(26)씨는 "힙합은 하나의 문화다. 다만 그 문화라는 개념이 힙합에 오면서 모양과 의미를 약간씩 달리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힙합은 '사는 방식' 그 자체라는 얘기다.

힙합은 음악만을 지칭하는 장르적 개념도 아니고 패션을 말하지도 않는다. 정통 힙합을 추구한다는 가수 조PD의 말을 빌리자면, 힙합이란 강남역 나이트 갈 때 입고 가는 옷이 아니다. 쫄쫄이 바지에 쫄티를 입건, 양복에 나비 넥타이를 매건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다. 흑인들이 만들어낸 힙합은 세상에 대한 환멸과 무력감에 기초한 반항적인 문화이다. 세상을 미화시키지 않고 세상에 대해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현학으로 포장하지 않고, 이즘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살리고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솔직함과 자유, 이것이 바로 힙합의 정신이고 힙합 문화의 본질이다. 그런 정신을 갖고 있어야 힙합을 '아는', 그리고 힙합을 '하는' 사람이다.

힙합은 한 시대의 정신과도 같다. 힙합 문화가 자생적으로 자라나 독자적으로 발판을 넓혔다고 할 수 있는 우리 나라는 힙합의 정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기반이 닦인 곳이다. 반항할 수밖에 없고, 반항해야만 하는 권위주의적 사회시스템이 바로 힙합의 기반이다.

지금의 힙합 붐을 거품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힙합에 대한 관심이 한껏 올라간 데에는 서태지를 위시한 지극히 상업적인 성격의 대중음악이 힙합의 이름을 도용하여, 소위 '한국적'으로 힙합을 개조한 것이 한 몫 했다. 힙합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밖에 인식되지 못한 것도 이러한 거품이 크게 작용한 바가 크다. 힙합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힙합의 외연적인 면만이 크게 부각되어 버렸다. 거품이라는 단어는 언젠가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을 예고한다. 그래서 다행인지 모른다. 결국 힙합의 본질만이 남게 될 것이기에.

'진짜'와 '가짜'만이 존재하는 힙합


'언더'에서 힙합을 하는 사람들은 '오버'에 잘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오버'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언더' 활동 경력이 짧거나 아예 '언더'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가요계의 시스템이 '언더'의 정신 그리고 힙합의 정신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더의 맛'을 안 사람들이 오버로 나서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뮤지션도 골방에 앉아서 혼자 듣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달 남짓 MC. JOOSUC과 팀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는 DJ 박민준(20)씨의 말이다. 자신의 음악을 남이 들어주고 같이 느껴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뮤지션 자신이 자유를 느끼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히 표현할 수 없다면 인기든 명성이든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힙합 문화의 기원이 하류층 흑인들에게 있다고 하여 지금의 힙합 문화 자체를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랩이 너무 천박한 말들로 쓰여지는 것에 불만인 사람도 있다.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 양상들을 상류와 하류로 나눠 버리려는 이분법적 사고를 고집한다. 물론 힙합은 접근하기 쉬운 문화이고, 힙합 음악은 결코 난해하지 않다. 그러나 지식의 상아탑에서 시작하지 않은 문화라고 해서 모멸에 찬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묻자. 항상 은유적 화법이 직설 화법보다 우수하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400년 전부터 사용하던 멜로디 위주의 악기들이 40년이 채 되지 않은 샘플러보다 반드시 우수한가?

힙합 뮤지션들은 "어떻게 표현하느냐" 보다 "무엇을 표현하느냐"에 더 관심을 가진다. 얼마전 '오버'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래퍼 김진표 가사에 대해 가수 양희은이 "노래 가사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침이슬'만큼 서정적으로 노래해야 시대의 아픔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은유와 상징이 아닌 독설과 욕설로는 시대의 아픔을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종현씨는 힙합에는 언더도 없고 오버도 없다고 말한다. 힙합에는 '진짜'와 '가짜'만이 존재한다. 한 사회 안에서 그 시대의 정신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일, 뮤지션이 자신의 생각과 삶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동들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전달하는 것이 '진짜'이고, 그렇지 못하면 음반을 아무리 많이 팔더라도 '가짜'이다.

이 날 마스터플랜의 4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TV에서 보여주는 '가짜'에 질린 사람들. '진짜' 힙합 음악의 본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프리스타일(free-style)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다이나믹(dynamic)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들의 열정과 자유와 진실에 대한 갈구가 힙합 문화를, 그 정신을 사회 위로 뛰어오르게 만드는 힘이다.

     

 김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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