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영국엔 존 밀턴이 있었고, 조선엔 허균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문인이면서 자신의 책이 금서(禁書) 판결을 받는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밀턴의 '이혼의 교리와 질서', 허균의 '홍길동전'은 약간의 시간차는 있으나(이혼의 교리와 질서는 1643년, 홍길동전은 1618년) 모두 17세기 초 금서 판결을 받은 책들이다. 존 밀턴은 자신의 책이 출판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이에 대항하는 글을 썼다. 이에 비해 허균은 책이 금서 판결을 받는 동시에 반역죄로 처벌되었기 때문에 분개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물론 두 책의 내용이나 금서 판결을 받은 이유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에 유사하게 일어난 두 사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어져 온 언론, 출판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밀턴은 그의 나이 서른 세 살이던 1642년에 열 일곱 살의 어린 신부를 맞이했다. 그러나 생기 발랄한 나이 어린 신부는 학구적이고 조용한 남편과의 적적한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는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 나들이를 가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이에 대한 밀턴의 고민은 1643년 이혼을 옹호하는 글로 나타난다. 근대 초기였던 17세기 당시는, 아직도 종교가 사회 전반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서 이혼을 교회법이나 종교법에 의해 금지하고 있었다. 신이 정한 결혼의 일차적 목적은 정신과 감정의 일치이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이혼하는 것이 인간의 복리에 맞고 또 신의 섭리에 맞는다고 밀턴은 주장한다. 이런 밀턴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것이었고 급기야 금서(禁書)판결을 받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출판 허가제(검열)'에 대항하여 밀턴이 쓴 것이 바로 '아레오파지티카'이다. 밀턴은 "나에게 어떤 자유들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었고 이 책은 오늘날까지 언론 자유의 경전처럼 여겨지고 있다.

밀턴은 단순히 출판 허가제에 반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출판의 자유에서 지적 탐구의 자유, 신앙의 자유로까지 인식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인간의 이성을 높이 평가한 밀턴은 나쁜 내용인지 좋은 내용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모든 책이 차별 없이 출판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오늘날에도 음란물이라고 규정되어 출판 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작가가 구속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중세를 갓 넘은 근대 초 밀턴의 주장은 진보와 개혁을 넘어서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밀턴은 '출판허가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유와 관용을 이야기한다. 다른 분파, 다른 종파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진리에 근접해 가야 한다는 것이 '관용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밀턴의 자유와 관용은 오늘날의 보편적 자유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말하고 있는 자유는 카톨릭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제한적 자유이다. 미미한 차이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근원이 다르면 관용할 수 없다는 게 밀턴의 입장이고 카톨릭은 밀턴의 종교인 청교도와 근원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밀턴의 자유는 우리가 말하는 절대적, 보편적 개념의 자유가 아니라, 당시 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영국의 시대 상황과 맞물린 프로테스탄트의 진리 추구를 위한 자유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밀턴의 '자유'에 대한 주장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깎아 내릴 수는 없다. 350여년 전의 근대 초기, 아직은 중세의 종교적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대적 상황에서 '아레오파지티카'는 어느 서적보다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그것은 비록 보편적인 자유와 관용은 아니었지만, 훗날 '언론·출판 자유' 개념의 초석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 언론의 기능 중에서 '공론장' 의 개념 즉, 공개 토론의 의미을 세웠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아레오파지티카'가 나온지 350여 년이 지난 지금, '언론·출판의 자유'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보편화된 개념으로 자리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어려움들이 있었고, 우리 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 치하, 독재, 군부 정권을 지나는 동안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우리 언론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정권이 바뀌었다는 최근에서야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정도다.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신문사의 경영과 편집의 분리 문제, 족벌 경영 체제, 자본의 언론 지배 현실 등은 모두 오늘날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를 방해하고 있는 요소다. 명확한 기준 없는 음란 · 폭력물에 대한 규정과 영화 · 음반에 대한 심의 등도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재고해 보아야 한다.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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