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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16) 길에서 만난 여고생
김효숙 기자 | 승인 2019.03.31 20:09

 

단편영화 ‘기념촬영’은 1997년 개봉됐다. 성수대교 사고로 단짝 친구를 잃은 무학여고 학생, 수진(김세연)의 시점에서 흘러간다.

자신은 간발의 차로 살았지만 많은 친구를 잃었다. 3년이 지나 다리가 1급 교량으로 다시 태어난 날, 훌쩍 자란 주인공과 여전히 교복을 입은 친구가 함께 나온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15분 동안 오가며 사고를 환기시킨다.

영화를 만든 정윤철 감독을 2월 20일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기념촬영’이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해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모두가 다리 재개통식을 축하할 때, 생존자의 아픔을 전하고 싶었다. 이런 점을 강조하려고 재개통식 실제장면을 영화에 담았다.

“누구나 촬영을 하잖아요. 영화에서 보다시피 소풍 가서도 찍고. (무너졌던) 다리가 다시 완공되는 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이런 의미죠. 산 친구와 죽은 친구의 기념촬영이라는 판타지 장면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정 감독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에 한양대 3학년이었다. 학교 바로 옆에서 벌어진 사고. 무학여고 학생들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서 항상 마주치던, 동생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는 죽음을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하고 의미 있게 비추는 건 영화감독의 일이라고 했다.

‘기념촬영’에 나오는 배우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연기학원에서 캐스팅했다. 무학여고 학생과 나이를 비슷하게 맞추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는 모습까지 연출하려고 화장을 하도록 했다.

▲ 영화 ‘기념촬영’ 포스터

정 감독은 불합리한 구조가 낳은 사고에 관심이 많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영화로 만들려던 이유다. 찍긴 찍었지만 표현의 한계가 있어서 완성하지는 못했다. 피해규모가 너무 크고 중압감 역시 컸다고 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세월호를 영화로 다루고 싶다고 했다. 다만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아픔이 여전하기에 시간을 두고 접근할 생각이다.

정 감독은 이익을 인간보다 먼저 생각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이런 사고를 낳고, 여기에 관료의 무책임함이 더해져 (사고가) 반복된다고 했다. 국민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직 일제 식민지 잔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부나 관의 말을 안 들으려는 기질도 있어요. 지금은 그러면 안 되죠. 민주주의 성숙함이 부족한 거죠. 자기가 사회의 주체, 기본적인 힘을 갖고 있음을 잘 모르는 거죠. 나만 잘사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정치도 마찬가지고.”
그는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1998년)에서 “영화만 생각해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문제를 어떻게 담으려 하는지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재미있고 완성도 있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제가 아무리 진보적이고 좋더라도 재미없으면 관객이 안 보잖아요. 재미없는 설교를 전할 수는 없어요. 소재를 어떻게 찾느냐, 어떻게 좋은 영화를 만들 것이냐. 이걸 염두에 두고 만들려고 해요.”
그는 <말아톤> <좋지 아니한가> <아빠의 검>을 제작했다. 장애인, 불완전한 가족, 왕따 등 상처와 갈등을 드러내는 동시에 봉합하고 성장하는 내용을 다뤘다. 최근에는 남남북녀의 사랑에 대한 영화, 개화기를 소재로 하는 사극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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