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는 1994년 10월 21일 내려앉았다. 차량 6대, 승객 49명이 함께였다. 그 중 32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승영 씨는 당시 21세였다. 서울교대 3학년으로 교생실습을 가던 길이었다.

유품인 일기장에서 이 씨의 버킷리스트가 나왔다. 한 명 이상의 아이 입양하기, 복지 마을 만들기, 이동도서관 짓기…. 가족은 소원을 대신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승영 씨의 꿈은 어떻게 됐을까. 가족은 어떻게 지낼까. 남동생 이상엽 씨(44)를 만났다.

“열네 가지 중에서 여덟 가지 정도 이뤘어요.” 가족은 보상금 2억 5000만 원을 교회에 기증해 ‘승영장학회’를 설립했다. 신학생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약 10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승영 씨의 버킷리스트

1997년 외환위기 전에는 이자율이 높아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았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재원 보전이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이 후원의사를 밝혔으나 어머니가 반대했다. 독립성을 지키고 싶어서다. 요즘은 1년에 3명 정도에게 지급한다.

가족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생을 기억했다. 장학금으로 대학원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은 장학회 운영에 관여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 좋은 길로 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평소에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던 딸의 말을 잊지 않았다. 장기기증은 사망 후 6시간 내에 해야 하지만 시신수습에 시간이 걸렸다. 딸의 소원을 반이라도 들어주고 싶어 고려대 의과대학에 연구용으로 시신을 기증했다.
 
고려대 의대는 시신을 기증한 고인을 기리고 보은의 뜻을 전하기 위해 1996년 감은탑(感恩塔)을 세웠다. 탑에 새긴 47명에는 이승영 씨도 포함된다. 유가족은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낸다.
 
상엽 씨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다. 첫째와 둘째는 직접 낳았고, 셋째와 넷째는 입양했다. 누나의 버킷리스트를 대신 실천했다. 여기에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이 섞여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입양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누나는 적극 찬성했지만 제가 반대했기에 포기했어요. 누나가 정말 아쉬워했습니다. 버킷리스트에 적은 이유가 혹시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원은 무조건 이루어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 이상엽 씨의 가족사진

그는 25년 전을 회상했다. 고등학생 시절은 장례의 연속이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기 바로 전 해에 군인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자마자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상엽 씨의 나이 19살이었다.

성수대교 사고 이틀 뒤, 그는 카이스트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결과는 낙방. 입시에 성공하고 가족을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아버지와 누나의 비극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신은 있을까? 이유를 묻고 싶었다고 한다. 남은 가족이 슬픔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하늘에 대한 원망이 오히려 자신을 도왔다고 말한다. 원망과 슬픔.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달래고 사실을 받아들였다. 가족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승영 씨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이루는 과정과 신앙심 덕분이었다.

“이런 소원이 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잖아요. 누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움을 덜 수 있었고 가족 전체에게 도움이 됐죠.”

그는 어머니와 봉사활동을 다니고 신학을 공부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자폐아를 돕기 위해 교회를 옮기는 결정도 내렸다. 
이제는 성수대교도 잘 건넌다. 가족을 잃은 비통함을 딛고 일어서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중이다. 직장에서 잘 지내며, 네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고도 했다.

더 이루고 싶은 누나의 소원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아직 남은 소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언가를 하기 △간사와 선교사에게 재정지원 △복지마을 만들기 △교회 짓기 △종교인 전용 휴양지 만들기 △기독교 방송(TV)만들기.

상엽 씨는 세월이 흘러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기독교방송이 생겨났으므로 누나가 흐뭇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에게도 긍정적으로 살라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뒤에 회사로 들어갔다.

“세상에 힘든 일,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25년 전, 저도 그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비통함에서 벗어나 열심히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