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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명사가 되는 그 날까지, 북 저널리즘의 도약
김예슬 기자 | 승인 2019.02.03 22:02
 
“너무 조용한 것 보다는 소음이 있는 게 작업하기 더 낫지 않나요?”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의 선율이 카페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과 화분에 시선이 향한다.
 
반대쪽 벽에 빼곡히 붙은 포스트잇에 대해 물었다. “업무흐름에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아이템을 배치해 놓은 겁니다. 오른쪽 끝이 올해 발행한 콘텐츠입니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의 사무실을 찾았다. 미디어 스타트업 ‘스리체어스(Threechairs)’의 이연대 대표(38)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2018년 10월 25일 오후였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7년간 일하다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출범 1년이 되지 않아 ‘북 저널리즘(Book Journalism)’ 시리즈가 발행한 콘텐츠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에 올랐다. 2쇄 이상을 찍은 책도 10여 종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스타트업이지만 이 대표는 변하지 않는 가치에 집중할 뿐이라고 말한다. 마주 앉으니 날카로운 눈매와 콧수염이 눈에 띄었다.
 
▲ 스리체어스 사무실
책을 통해 세상에 없는 가치를 창출하기까지
 
그는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업으로 삼은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설립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쓴 <해커와 화가(Hackers & Painters)>를 읽고,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세계적인 스타트업 신이 해커의 프로그래밍을 화가의 그림 그리기와 비교하며, 창조의 과정을 다룬 에세이라고 한다. 여러 대목 중 ‘세상에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문구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북 저널리즘도 마찬가지였다. 미디어 변화를 눈여겨보다가 독자로서 느끼던 갈증을 브랜드의 핵심 콘셉트로 정했다. 그가 바라본 뉴스는 시의성이 있지만 깊이가 부족했다. 책은 깊이가 있지만, 시의성이 부족했다. 책의 깊이와 뉴스의 시의성을 두루 갖춘 콘텐츠를 펴낸 이유다.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인쇄업체의 운영방식부터 종이재질의 선정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을 영입해 팀을 꾸리다 보니 이 대표를 포함한 11명이 북 저널리즘을 이끌게 됐다.
 
▲ 북 저널리즘 팀의 근무모습
그에 따르면 북 저널리즘은 20~40대의 스타트업·지식산업 종사자가 주로 이용한다. “론칭하기 전에, 이용자들이 지적 콘텐츠를 어떤 목적으로 소비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들이 급변하는 세상을 깊이 이해하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화제가 됐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예로 들었다. 무역 분쟁 일지와 같은 단순보도만으로는 사안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의 시각을 빌리기로 했다. “자유무역주의의 탄생부터 보호무역주의와의 장단점 비교까지, 하나씩 살펴 가며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분석하는 겁니다.”
 
밀레니얼스(Millennials)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현상을, 밸런스(Balance)는 여가와 라이프 스타일, 퓨처(Future)는 기술과 미래, 폴리틱스(Politics)는 정치와 힘의 문제, 그리고 비즈니스(Business)는 경제와 산업을 다룬다.
 
이용자와 소통하기 위해 ‘체어 메이트(Chair Mate)’ 서평단을 만들었다. 15명 내외의 메이트는 온·오프라인에서 편집자와 작가를 만난다.
 
대학생 엄지영 씨(23)는 체어메이트 3기 활동을 2018년 10월 5일 수료했다. 휴학하고 독립서점을 탐방하다 북 저널리즘을 접했다. “대학생인 제가 혼자서 찾기 힘든 정보를 설명해주는 전문가를, 그것도 책을 통해 만난다는 게 신선했죠!” 메이트 데이에 에디터와 대화하면서 책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 북 저널리즘의 메인 화면
기자 아닌 전문가가 알려주는 ‘Must Read’ 콘텐츠
 
북 저널리즘은 ‘읽을 만한 내용(Worth to Read)’보다 ‘필독해야 하는 내용(Must Read)’의 시의성에 초점을 둔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도 지금 읽지 않아도 되는 콘텐츠는 제외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도주제를 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저자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전문성이다. 학술적 깊이와 현장 경험을 갖춘 전문가를 통해 양질의 지식 콘텐츠를 저술하는 ‘전문가의 기자화’가 매거진의 목표다.
 
현재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출간된 58종의 콘텐츠 중 특히 반응이 좋았던 내용은 2017년 11월 15일 발행한 <미래의 교육, 올린>이다. 저자 조봉수 씨가 미국의 학부중심 4년제 대학 ‘올린 공대’의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혁신비법을 탐구했다.
 
“교육철학이라는 거대 담론이라기보다는, 체험 리포트라고 할 수 있죠.” 여러 대학의 교육 관련 학과 교수, 교육청 관계자들이 단체로 구매했다고 한다.
 
광고가 없고 기업후원 역시 받지 않지만 북 저널리즘의 거의 모든 콘텐츠는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회원 수는 9월 마지막 주에 비해 100%, 판매량은 30% 이상 늘었다. 유료독자가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정기구독 서비스’를 답으로 내놨다. 북 저널리즘은 이용자의 개별 구매로 판매 부수를 책정한다. 따라서 유료 독자는 해당 콘텐츠의 구매자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가 나온 시점이나 다루는 주제에 따라서 1,500명 정도 차이가 있어요.” 2017년 2월 24일 처음으로 발행한 <시민의 확장>은 민주주의와 세대평등을 위한 18세 선거권을 주제로 삼았다.
 
얼마 전 2쇄를 찍었다고 했다. 상업적 가치가 크지 않다고 판단되는 영역에서 올린 성과라 자부심을 갖는다. “앞으로 멤버십 서비스를 론칭해서, 이용자가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골고루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차별화된 포지셔닝 통한 북저널리즘의 확장
 
북저널리즘은 서비스 규모와 함께, 콘텐츠 생산의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지난해 영국 언론사인 가디언(Guardian) 및 인디펜던트(Independent)와 제휴관계를 체결했다. 어떻게 성사됐는지 물었다.
 
“롱 폼 저널리즘(Long Form Journalism) 콘텐츠를 생산하는 해외언론에 먼저 연락을 취했어요. 두 곳이 우리 미션에 관심을 보였고, 두 달 정도 회의를 진행하다 도장을 찍었죠.”
 
가디언은 ‘롱 리드(The Long Read)’ 섹션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인디펜던트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서로의 콘텐츠를 교환해 싣기로 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는 단권계약을 체결했다. 2020그룹 보고서의 한국 판권을 구매해 2017년 8월 8일 <독보적인 저널리즘>을 발행했다.
 
“인터뷰어(Interviewer)뿐 아니라 인터뷰이(Interviewee)로도 배울 게 많은 업계선배입니다.” 국내외 저널리즘 트렌드를 수년간 취재하며, 국내 언론 최초로 쿼츠(Quartz), 악시오스(Axios)와 인터뷰했던 조선비즈 신성헌 기자(34)는 2014년부터 이 대표와 알고 지냈다.
 
신 기자가 꼽는 북 저널리즘의 장점은 영리한 포지셔닝이다. 20분이면 완독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점을 의미 있는 성과로 봤다. “영국의 유력 신문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건 스리체어스가 국내 기업 최초에요.”
 
책의 깊이, 뉴스의 빠르기로 추구하는 혁신
 
다양한 저널리즘 영역에서 북 저널리즘은 ‘깊이’에 집중한다. 이 대표는 영상물로 예시를 들었다. “10초 안팎의 유튜브 영상 클립에서부터 60분짜리 시사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까지, 보면 짧거나 긴 것들만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그는 텍스트도 다르지 않다고 봤다. 2000자 내외이거나, 두꺼운 책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북 저널리즘은 영상으로 치자면 20분짜리 미드 분량의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그는 책과 뉴스의 정의 역시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 마지막에 스리체어스의 북 저널리즘 매거진을 한 마디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책처럼 깊이 있게, 그리고 뉴스처럼 빠르게’라고 했다.
 
그는 자기회사를 출판사가 아닌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정의한다. 이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곳. 그래서 발행방식이나 주기, 분량이 아닌 이용자의 니즈와 이용 형태에 따른 콘텐츠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20분 내외의 텍스트 콘텐츠가 드물지만, 미드처럼 대중화되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요?” 이용자가 어떻게 규정하든, 이 대표와 팀원들은 자기 영역을 ‘북 저널리즘’이라고 본다. 지금은 고유명사이지만 일반명사가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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