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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컷에 사회를 담다
김예슬·오주비 기자 | 승인 2019.02.03 22:01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프랑스 생 쥐스트 르 마르텔 시(市) 시사만화센터에서는 국제시사만화살롱이 열린다. 2018년의 특별전시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였다.
 
한국 시사만화가의 출품작 20여 점 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얼굴이 반반 섞인 ‘타임(TIME)’지 표지를 그린 작품이었다. 권범철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장의 그림이었다.
 
▲ 한반도의 평화 포스터 (출처=전국시사만화협회)
“반갑습니다. 시사만화 그리는 권범철입니다.” 2019년 1월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겨레신문사 본사에서 권범철 화백(44)을 만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화백실로 이동했다.
 
권 화백은 한겨레 2면에 실리는 <한겨레 그림판>에서 만평을 그린다. 책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종이와 연필. 펜과 잉크가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도, 스케치의 기본도구로 사용한다. 책상 가운데 있는 모니터로는 뉴스를 검색하고, 만평 이미지를 전송한다.
 
그림은 옆 책상의 액정 태블릿을 통해 그린다. 그림 그리는 걸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이렇게 스케치를 하고, 여기 색을 입히고…. 이렇게 글자, 그리고 그림자를 넣죠.”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그리는 과정을 설명해 줬다.
 
▲ 한겨레 본사의 화백실 모습
청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이상을 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림과의 인연은 동아리 ‘그림터’에서 시작됐다. “옛날 말로, 학생 운동할 때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게 노래패였다면, 거기 필요한 그림을 그리는 건 ‘그림패’였어요.”
 
만평은 학보사 일을 시작하며 그렸다. 할 만하다고 느꼈고, 하다 보니 잘할 수 있게 됐다. 2000년 가을, 부산의 국제신문에서 시사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투리 억양이 귀에 꽂혔다. “고향이 마산이에요.”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는지는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 다닐 때 품었던,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이상이 있었어요. 그걸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펼치고 싶었고,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시사만화를 그린 지 18년이 지났다. 그는 경남도민일보, 노컷뉴스, 미디어오늘에서 만평을 그렸다. 책도 출간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담은 <이어달리기>, 이명박 정권을 풍자한 시사만화 <기억하라> 등이다.
 
눈 뜨면 시작되는 소재와의 전쟁
 
<한겨레 그림판>의 만평은 다른 기사와 마찬가지로 매일 인쇄된다. 토요일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금요일에 미리 마감을 한다고 했다. “시사 만화가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어요.” 뉴스는 항상 예의주시한다. 다른 일간지도 살펴보며 뭘 그릴지를 항상 생각한다.
 
점심 전까지는 만평 소재를 결정해야 한다. 계속 고민하다가 오후 3시까지는 마감을 해야 한다. 요즘은 컬러로 만평을 그린다. 손이 빠른 만평가라도 흑백에 비해 배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길게는 2시간이 지나서야 만평이 완성된다.
 
오후 5시 정도에 신문 초판이 나온다. 어떤 날은 재판, 삼판을 넘어 5판까지 찍는다. 저녁 시간을 넘겨 퇴근을 하는 셈이다. 하루 중 가장 긴장되는 때가 언젠지 물었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뭘 그릴지 모를 때가 있어요. 큰일 난 거죠.”
 
어떤 이슈를 만평에 담으려고 노력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만평소재를 생각해 내는 건, 제 책상 위에 있는 물건과 같아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날에는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사용하고, 또 다른 날에는 과학 어를 끌어온다. 다방면으로, 그것도 깊게 알아야, 그림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했다.
 
만평가,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다
 
만평에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되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한겨레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아요. 편집국에서 나에게 어떤 것을 그려라, 그리지 마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집권이 각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죠.”
 
편집권이 자신에게 있는 만큼 만평기준은 분명하다. 사람을 비판하지 말자는 것. “정치인, 관료 또는 기자도 직업이잖아요. 그에 맞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역할에 대해서 비판이나 풍자를 해야지 그 인간에 대해서까지는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맹목적인 비판이 담긴 만평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고 한다.
 
소재를 정하는 기준도 분명하다. 큰 뉴스와 중요한 뉴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자극적으로 큰 뉴스보다는 중요한 뉴스를 다뤄야 하지만, 큰 뉴스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중요한 뉴스를 다루되 큰 뉴스의 이야기를 함께 엮어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했던 1월 23일, 한겨레 만평은 삼성의 바이오로직스를 다뤘다. 독자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만평의 의도를 파악한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수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비꼬는 말투였다. 손혜원 의원문제를 다루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독자의 반응이 자신의 의도와 다를 때는 판단에 잘못이 있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지금은 댓글을 보지 않지만 옛날에는 댓글을 많이 봤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댓글이라는 게 가랑비 같아서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 계속 읽다 보면 우울해져요.”
 
독자메일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고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만평가가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 된다. 의심은 하되 격한 댓글이나 항의 메일에 깊게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평가라고 세상일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늘 의심하고 있어요. 하지만 네이버 댓글은 좀 과할 때가 많더라고요.”
 
한국 사회, 한 컷의 그림에 담기다
 
만평가는 매일 그림을 그린다. 새로운 소재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 우리 사회를 그림으로 전달한다. 권 화백은 서울 광장에 200만 명이 모였던 날의 만평(2016년 11월 12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연도별로 모은 파일을 뒤적여 그날 그렸던 그림을 보여준다.
 
▲2016년 11월 12일 만평 (출처=한겨레 그림판)
퇴근 후에 갔던 시위현장. 청와대 문을 잡은 시민을 보면서 권 화백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때 느꼈던 절실함에 그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굳게 닫힌 청와대 철문을 잡고 있는 소녀, 그리고 소녀 뒤로 보이는 수많은 촛불을 통해 그날의 모습이 기록됐다.
  
권 화백은 “언론인일까, 예술가일까? 고민하는 그 상태가 바로 시사만화의 자리”라고 했다. 만평을 그릴 때면 자기 회의를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독자가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만화다, 이건 만화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봤으면 좋겠어요. 흥분하지 말고 편하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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