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대중음악에 주의 깊은 귓바퀴를 모으고 있는 사람이라면 델리 스파이스는 별로 낯선 이름이 아니다. 95년 김민규(기타, 보컬)와 윤준호(베이스, 보컬)를 중심으로 결성된 이 밴드는 홍대 앞 클럽들에서 연주 실력을 인정받아, 97년 여름 첫 앨범을 냈다. TV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기보다는 라이브 공연과 라디오 방송으로 인지도를 넓혀갔고, 98년 7월에는 일본 매니아들의 초청으로 두 곳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담백한 공연을 선보였다. 오인록(드럼), 이승기(키보드)를 거쳐서 지금의 밴드 구성원에는 양용준(키보드)과 최재혁(드럼)도 포함된다. 99년 3월 두 번째 앨범 "Welcome to the Delihouse"를 내놓고, 현재 클럽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PC통신을 통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밴드. 취미 삼아 합주를 하다가 아마추어에서 프로페셔널로 이동한 뮤지션들. 우리 나라 방송가 주변에서 제조되는 식상한 노래들과 서구의 세련된 모던 록 사이의 음악적 갈증을 촉촉히 적셔주는 샘물. 델리 스파이스와 그들의 음악은 이렇게 설명된다.

델리라는 이름만으로 쟝 쥬네의 영화 델리카트슨을 떠올려도 나쁘지는 않다. 그 예쁘고 기발한 컬트무비 만큼 그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음악으로 풍부하게 표현할 줄 안다. 맛있는 향신료를 연상해도 좋다. 어느 음식과도 어울려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맛을 더하듯이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개성있게 소화해 낸다.

1집명은 밴드 이름과 동명 타이틀인 "Deli Spice". 평론가들로부터 "한국적인 어법의 모던 록 스타일" 이라고 평가받았다. 귀에 달라붙는 멜로디와 경쾌한 사운드 위로 일상적인 감정을 묘사한 가사는 20대 또래들의 정서와 부합한다. 때로는 발랄한 감각으로, 때로는 쟁쟁거리는 기타 톤으로 신나는 연주와 차분한 읊조림을 교차시키며 전체적으로 밝으면서도 쓸쓸한 여운을 준다. <챠우챠우>는 이 앨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가사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연가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가면>,<귀향>,<사수자리>,<콘 후레이크> 등에서 리듬감 있는 기타와 깔끔한 편곡을 통해 밴드의 예민한 감성이 드러난다.

2집 "Welcome to the Delihouse". 다소 단조로운 감각이라고 지적받았던 1집에 비해 음악적 밀도가 훨씬 농축된 인상. 세련된 샘플링을 알맞게 배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밴드 멤버 이외에 다양한 세션이 참여한 것도 눈에 띈다. 노이즈 가든의 박건(보컬)과 윤병주(기타)가 가세한 <하이에나>는 묵중하고 강력한 사운드로 냉소적인 노래를 뽑아냈다. <두 눈을 감은 타조처럼>에서는 에코의 김정애가 전하는 건조하고 몽환적인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랩을 가미해 리메이크한 산울림의 <회상>, 윤준호의 담담한 보컬이 담긴 <피난처>, 어릴 적 마음을 생각나게 하는 김민규의 <종이비행기>등이 실려 있다.

자신의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노래하는 델리 스파이스는 TV속의 흔한 스타들의 모양새가 아니다. 음악을 충분히 즐길 줄 알며, 자신들이 만든 노래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태도는 진정한 밴드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이런 델리 스파이스를 평범한 밤 시간대에도 만날 수 있다. 지난 3월 22일부터 CBS 라디오에서 10시부터 2시간동안 심야 라디오 진행을 맡은 덕분이다. 하지만 맛있는 델리의 달콤쌉싸름한 매력이 궁금한 이들에게는 공연장으로 달려갈 것을 추천한다. 유쾌한 소음잔치에 기꺼이 초대받고 싶다면 말이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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