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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스놉스는 새로운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을까?
이도윤 기자 | 승인 2018.08.17 15:10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한 가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 그의 급여 40만 달러를 군인 장병을 위한 국립묘지를 짓는 데 기부했다!” 해골이 성조기를 물고 있는 그림과 그 위에 써진 글은 한눈에 보아도 허술하다. 그러나 이 ‘밈(meme, 인터넷으로 퍼지는 그림이나 사진)’은 7월 말 페이스북에서 15만 번 가까이 공유됐다.

▲ 8월 3일 자 스놉스 팩트체크.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팩트체킹 사이트 ‘스놉스(http://www.snopes.com)’가 내놓은 답이다. 스놉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1년 치 급여 중 10만 달러를 참전용사들에게 기부했기 때문에 전액을 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제대로 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이 주장이 ‘완전한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스놉스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소문과 뉴스를 팩트체크하는 미국의 웹사이트다. ‘껌을 소화하는 데는 7년이 걸린다’와 같은 사소한 괴담부터 유명인들에 대한 소문과 정치인의 발언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에서 퍼지는 말을 사실 확인한다.

창립자인 데이비드 미켈슨은 1994년 도시 괴담 전문 사이트인 스놉스를 만들었다. 도시 괴담은 히치하이킹을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히치하이커 유령’ 등 도시화된 전설을 말한다. 괴담 마니아였던 미켈슨은 도시 괴담을 올리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스놉스를 처음 열었다. 사이트 규모가 커지면서 사실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범위도 온라인의 모든 소문으로 확대했다.

사실확인의 대명사로 자리 잡다

미국의 정치 전문 사이트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http://www.realclearpolitics.com)’에 따르면 스놉스는 가장 오래된 팩트체크 사이트 중 하나다. 미국 온라인 가짜뉴스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스놉스가 큰 변곡점을 맞은 건 2001년이다. 9·11 테러 이후 온라인에서 가짜뉴스가 증폭하면서다.

미국 중심부를 타격한 테러의 충격은 온라인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짜뉴스로. 노스트라다무스가 9·11 테러를 예언했었다는 괴담부터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하던 이스라엘인 4천 명이 테러 사실을 미리 알고 당일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거짓 정보까지 수많은 가짜뉴스가 온라인을 휩쓸었다.

테러를 계기로 스놉스의 팩트체킹은 정치 분야로 기울었다. 스놉스는 9·11 테러에 관련된 뉴스만 170건을 팩트체킹했다. 미켈슨은 2016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점점 늘어나는 정파적 가짜뉴스를 씁쓸한 마음으로 팩트체크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스놉스의 인기가 치솟았고, ‘스놉스터(Snopesters)’라는 지지자들도 생겼다.

▲ 스놉스 창립자 데이비드 미켈슨 (출처=미켈슨의 트위터 @davidpmikkelson)

주류 언론을 ‘물 먹인(낙종시킨)’ 일도 있었다. 2003년 6월,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마이클 버딕은 ‘밤비 사냥(Bambi Hunt)’이라는 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 돈을 내면 나체의 여성을 페인트볼로 맞추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홍보영상이었다. 영상은 매우 선정적이었다. ABC뉴스와 로이터, MSNBC 등 거대한 뉴스 회사들이 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게임이 ‘진짜’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주류 언론이 간과한 팩트체크를 스놉스가 대신했다. 밤비 사냥이라는 게임은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의 영상은 버딕이 자신의 포르노 동영상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조작해 만든 것임을 확인해 알렸다. 저널리즘과 팩트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포인터연구소’는 이 일에 대해 “스놉스가 온라인 뉴스의 게이트키퍼가 됐다”고 평했다.

어느덧 스놉스는 25년째 운영되고 있는 장수 사이트가 됐다. 이제 미국에서 스놉스는 ‘사실 확인하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쓰인다. 은어, 인터넷 유행어를 아카이빙하는 ‘어번 딕셔너리’는 스놉스를 “미심쩍은 이야기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행위로, 팩트체크 사이트 스놉스닷컴에서 유래했다”고 정의한다.

▲ 8월 16일 기준 스놉스 메인화면.

현재 스놉스는 에디터와 기자 8명, IT 관리자 8명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경력은 주류 뉴스 회사 기자 못지않다. 특히 과학 전문기자인 알렉스 카스프락은 존스홉킨스대 대학원에서 과학 글짓기(science writing)를 전공하고 버즈피드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다. 스놉스의 에디터와 기자는 모두 포인터연구소와 미국출판협회가 주관하는 팩트체크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했다.

8명의 팩트체커들은 매일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고 팩트체크한다. 온라인에서 화제 되는 거의 모든 뉴스를 다루는 만큼 양이 많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3달 동안 스놉스에는 총 413개의 팩트체크가 올라왔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38건, 일주일에 35건꼴이다.

주제도 다양하다. 팩트체크를 구분하는 카테고리만 45개일 정도다. 현재 스놉스에서 클릭 수가 높은 팩트체크들은 “1919년에 뉴질랜드 신문이 지구온난화를 예측했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나치 문신을 한 지지자와 사진을 찍은 게 사실일까?” “미식축구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며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은 진짜일까?” 등이다. 정치, 스포츠,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팩트체크 등급이 세심하게 짜여 있다. 진실성은 ‘완전한 진실(true)’부터 ‘완전한 거짓(false)’까지 5단계로 나눈다. 진실 혹은 거짓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뉴스에 붙이는 등급도 있다. 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알 수 없음(unproven)’, 과거의 사실을 짜깁기했을 때는 ‘철 지난 정보(outdated)’, 사진이나 영상을 설명하는 맥락이 거짓일 때는 ‘거짓 설명(miscaptioned)’ 등으로 표시한다.

새로운 갈림길에 서다

수년간 쌓은 탄탄한 체계로 스놉스는 2016년 대선 시기에 맹활약했다. 스탠퍼드대 산하 스탠퍼드경제정책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8월부터 선거 전날까지 페이스북에서 1,000회 넘게 공유된 가짜뉴스 게시물은 949개에 달한다. 가짜뉴스 가짓수만 157가지다. 스놉스는 이 중 139개를 사실 확인했다. 다른 팩트체킹 사이트 ‘폴리티팩트’가 8건을 사실 확인한 것에 비해 압도적이다. 2016년 스놉스 방문자 수는 전년보다 146% 늘었다.

그러나 2016년은 가짜뉴스의 정점이 아니었다. 사회는 더 불안해졌고, SNS는 더 빨라졌다. 그만큼 스놉스의 영향력도 커졌다. 스놉스는 2016년 12월부터 페이스북과 파트너십을 맺고 페이스북에 게시되는 가짜뉴스를 팩트체크하고 있기도 하다. 페이스북과 팩트체크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엔 ABC뉴스와 AP통신 등 주류 뉴스 회사도 포함돼 있다.

미국 주류 언론은 스놉스를 경쟁자보다는 디지털 시대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스놉스의 역할과 함께 위협도 커지다”라는 기사에서 스놉스를 “현대 인터넷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반(半) 진실과 반(反) 진실의 급류로부터의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표현했다. 가디언은 “스놉스가 탈진실 시대에도 활약할 수 있을까”라는 기사에서 스놉스의 작업을 “디지털 시대의 ‘아우게이아스 외양간’을 청소하는 일”에 비유했다. 방대하고 어렵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란 의미에서다.

활약은 그림자도 낳았다. 가장 큰 것은 가짜뉴스 생산자들의 반격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가짜뉴스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크리스토퍼 블레어는 팩트체킹 사이트와 스놉스를 비판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슬로건은 ‘팩트체커들은 가짜뉴스를 가짜로 팩트체킹한다’이다. 블레어의 동료 존 프레거는 ‘포인터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스놉스의 목표는 진실이 아니라 우리를 파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진실의 결정권자가 된 것은 끔찍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더 진지한 문제 제기도 있다. 팩트체킹의 객관성과 관련해서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스놉스와 사설화된 팩트체크”라는 기사에서 스놉스 기자들이 가끔 주관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점을 지적했다. 성매매 촌과 관련한 팩트체크에서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가 있다”고 쓴 것을 예로 들었다. 무엇을 팩트체크할 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크고 작은 논란이 있지만, 미켈슨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현재의 가짜뉴스는 너무 빠르고 그럴듯해 새로운 유형의 게이트키퍼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스놉스가 디지털 시대의 게이트키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온라인 공론장과 스놉스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 팩트체크는 ‘사실에 가깝다(mostly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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