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드라마를 봄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각 방송사에서 동 시간대에 방영되는 여러 개의 드라마. 그 중에서 어떤 드라마를 선택할 것인가.

내 선택의 화살은 MBC 수목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극본 노희경, 연출 박종, 이주한)>의 과녁을 향했다. 그리고 34회가 방영된 지금까지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본(때론 녹화까지 해 가면서 본) 열성 시청자가 되었다.

드라마 선택이라는 것이 재미가 없으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 버리는 변하기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이하 우정사)>를 고집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우정사>에는 작가 노희경의 감칠맛 나는 대사들이 있다. 드라마 속의 대사가 드라마를 넘어 시청자에게 던져진다는 것, 그것은 충격이다.

사는 게 재미없어?


이신형(김혜수 분): 사는 게 재미없어?
강재호(배용준 분): 네 

가끔씩 느끼는 삶의 재미없음. 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사는 게 재미없어?"
드라마 속의 대사가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일상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것, <우정사>의 대사는 여운이 길게 남는다.

드라마가 끝나면 곧바로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인터넷 동호회(http://my.netian.com/@wjs)에 접속한다. 한 편의 드라마로 동호회가 결성되기란 매우 드문 경우다. 특히 SBS 드라마 <청춘의 덫>에, 지금은 김희선, 김석훈 주연의 <토마토>에 밀려 10-20% 대의 높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호회가 결성되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소수의 시청자지만 '우정사 매니아'로 불리는 이들은 드라마 속 대사, '세상에는 ...종류의 ...이 있어. 첫째, ..., 둘째, ..., 셋째, ...'를 변용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드라마가 있다. 첫째, 보면서 누가 '나한테 전화 좀 하지'하고 화면과 전화기를 번갈아 보게 하는 드라마. 둘째, 보는 중 전화 걸려오면 이 때다 바로 내방으로 들어가 통화하면서도 전혀 미련 없는 드라마. 셋째,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국제전화도 방송 끝나고 내가 다시 걸겠다며 단칼에 끊게 만드는 드라마, 우.정.사."

이 홈페이지에 들르면 시청 소감뿐 아니라 회원들의 마지막회 시나리오 창작,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드라마 내용 재구성, 드라마 속 명대사 명장면 등을 볼 수 있고, 작가와 출연진을 초대할 수도 있다. 자신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을 드라마 한 편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 생각만해도 기쁘지 않은가.

그러나 이 모든 이유를 뛰어넘어 내가 <우정사>를 끝까지 고집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작가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정말 사랑했을까?"
 
내가 나의 인생을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힘들고 고달픈 삶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그녀(김혜수 분)를 떠난다는 재호(배용준 분)의 선택. 가난이 싫어, 어머니의 버림이 싫어 거짓으로 무장한 재호의 삶.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물질적인 도움을 줘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이루고 싶다는 현수(윤손하 분)의 선택.

모두 사랑을 위하여 내린 선택이라 믿고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기에 내린 선택이 아니었을까. <우정사>는 사랑이 물질적인 것을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여타 드라마의 논리를 깬다. 대신 때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고, 때론 자기 자신을 속여야만 하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의 예리한 질문들이 <우정사>를 다수의 시청자들로부터 떼어놓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우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아도, 중간중간에 시청하더라도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TV 드라마가 갖춰야 할 속성에서는 실패했다. 그리고 모두들 어렵다는 요즘 상황에서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꿈꾸며 행복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 또한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정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신에게 "내가 나의 인생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그 선택에는 크건 작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였건, 오늘 한번쯤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내가 나의 인생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을까 "

                                                                               진윤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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