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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영어강의, ‘오 마이 갓’
이은정 기자 | 승인 2018.06.18 00:03

“Um…. So what I’m saying is…. It’s like…. 아 그러니까 수요곡선이 우하향 한다고. 알겠죠?” 서울의 A대 경제원론 강의. 교수는 답답한 지 한국어를 사용했다. 이날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Um, It’s like. 수업을 들었던 정 모 씨는 “교수님이 영어를 못하니 수업의 질이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두 번 듣다가 철회를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5월 3일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 국제학부 수업. 교수는 A4 용지 여러 장을 들고 있었다. 수업시작 10분이 지나도록 교수의 눈은 교탁 위의 A4 용지를 향했다. 영어대본을 읊는 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늘었다.

“Do you understand?”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즈음 교수가 질문을 했지만 강의실은 조용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게 이해가 되나?” 한국어로 질문하고 나서야 곳곳에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는 대답이 나왔다.
 

▲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영어 강의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영어강의를 채택한 대학교를 대상으로 2004년부터 재정지원을 했다. 전국대학이 영어강의 비율을 계속 확대한 이유다. 일부 학교는 영어강의 학점을 졸업요건으로 정했다. 하지만 수업내용과 방식, 평가체계는 어떻게 관리하는 중일까.

서울의 C 교수(언론학)는 질 낮은 영어강의 원인으로 수업개설 방식을 지적했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신임 교원은 영어강의를 학기마다 일정 학점 이상 열어야 한다는 계약조건을 지켜야 한다. 기간은 10년 또는 임용이 끝날 때까지 등 다양하다.” 전공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영어강의를 개설한다는 뜻이다.

서울 B대 학생 김 모 씨는 “현대사회를 주제로 하는 여성학 강의에서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거나, 번역하면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남이나 김치녀 같은 신조어가 대표적이었다.

일부 학생은 국내와 해외대학의 영어강의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임지영 씨(25)는 싱가포르 난양기술공대에 교환학생으로 갔는데 수업을 따라 가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학생의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인해 의사소통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4월 26일 가톨릭대. 공과대학 컴퓨터 실습과정은 학생 사이에서 ‘오 마이 갓(oh my god)’ 수업으로 통한다. 모르는 내용을 영어로 질문해야 하는데, 회화가 서툰 학생이 너도 나도 ‘오 마이 갓’을 외친다.

이 수업은 원어민 교수가 스크린으로 시범을 보이면, 학생이 따라하는 방식이다. 시범이 끝나고 실습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오 마이 갓’이 터져 나왔다. 교수는 학생 자리를 찾아가서 영어로 다시 설명했다.

“저도 처음엔 민망했는데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게 ‘오 마이 갓’을 외치게 되더라고요.” 이원진 씨(25)는 교수와 학생 간에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영어수업을 왜 고집해야 하는 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한양대 박철진 교수(산업공학과)는 “한국어로 하면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는 설명이 열 문장까지 길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학생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한국어로 질문을 받아서 보완하려고 한다.

▲ 강의가 끝난 뒤 강의실

불만은 국내대학의 외국인 학생도 마찬가지. 독일교포 고희지 씨(26)는 경희대에서 교환학생으로 ‘International cultural communication’ 과목을 들었다. 강의는 PPT 수업자료를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 고 씨는 “전공수업이라는데 전공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학생 사이에서 영어강의는 실력을 높이는 시간이 아니라 학점을 잘 받는 수단으로 더 잘 통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영어강의 평가기준을 한국어강의보다 느슨하게 설정하기 때문이다. A, B 학점비율을 한국어 강의보다 상대적으로 높이는 식이다.

성균관대 조소영 씨(25)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점관리를 위해 학기마다 두 과목 이상을 영어강의로 들었다. 전에는 학점이 4.5점 만점 기준으로 3.7~3.8점이었지만 영어강의를 많이 들으면서 학기마다 4.0을 넘겼고, 어느 학기는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다.

이화여대 하수민 씨(27)도 똑같은 과목이라면 영어강의를 선호했다고 말했다. “C언어를 배우는 건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한국어나 영어나 비슷하게 어렵다. 차라리 학점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영어 수업을 택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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