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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 앞에 '묵은 때'가 대수랴/ 12월 16일자/ 박창식 기자)
'개혁적 신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여권의 '민주신당(가칭)'은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각 분야 인재를 고루게 영입하겠다는 의지 표명과 함께 다양한 분야 인사들을 영입되고 있다. 기사는 '개혁 신당'이 영입한 인사들의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를 꼬집고 있다. 이득렬 전 문화방송 사장과 최동호 전 한국방송공사 부사장은 5, 6공 시절 정권에 시녀로 불공정 보도에 최일선에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 시절 북풍 공작에도 단단히 한몫 거들었던 이들이 이제는 현정권에 밀착하며 신당에 발을 들이밀었다. 언론인으로서, 또 공인으로서 지녀야 할 양심을 쉽게 버렸던 이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이 기사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잘못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과 성찰 없이 시대 상황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유지해온 인사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도록.

(한겨레21/ 고문의 주인공 바로 너!/ 12월 2일자/ 조성곤·황상철 기자)
'부도덕한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냉전과 반공이 이용되던 시절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대대적 '공작'이 벌어졌고, 그 성과로 상당히 많은 수의 양심수가 전향했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 역사다. 이 아픈 역사 뒤에는 인간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사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많은 고문 기술자가 있고, 또 이들에게 고문을 당한 상처를 아직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근안처럼 '거물급 인사'가 될 사람을 고문해서 역사의 심판을 받는 사람보다는 그 비인간적 행동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한겨레21은 이들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분명히 드러내어 놓았다.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들의 행동을 역사의 화두로 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고문 피해자들이 그 한맺힌 삶을 마감하기 전에 모든 일이 투명하게 밝혀지기를 열망한다. "당시 우리를 고문했던 사실과 그 당사자들을 밝히려는 것은 우리 역사에 다시는 그러한 고문 기술자들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개인의 한풀이라기보다는 역사에 대한 기록의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또 고문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문 피해자 신인영씨의 말)"

(조선일보/ 한겨울에도 '수마와의 전쟁'은 계속 된다/ 12월 26일/ )
[새천년이 시작된다고 들뜬 지금도 파주 연천 수재민들의 '수마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파주 문산 초등학교 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수재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수리한 집에선 썩은 냄새가 나고 비가 내리면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한다.]우리는 이제 수재민을 잊었다. 수재가 일어난 직후 몰려들던 자원 봉사자도 구호 물품도, 작은 관심마저도 끊어진지 오래다. 쉽게 끓어 올랐다 쉽게 식는 냄비 근성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 있는 기사다. 

(중앙일보/ 가난한 병자 위해 평생 바쳐/ 12월 15일/ 홍혜걸 기자)
한국의 20세기 인물 시리즈 중 의료인물로는 두번째로 실린 장기려 박사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기사다. "95년 85세의 일기로 타계할 때가지 한 평생 봉사하는 의사상을 실천한 의료인"이라고 소개된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는 과대 포장된 '위인' 이야기의 부담스러운 미사여구가 아닌 간결한 소개만으로도 장박사의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피난민을 대상으로 부산 영도에 간이병원을 열어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며느리가 혼수로 마련해 온 새 이불을 고학생에게 선뜻 내주는가 하면, 돈이 없는 환자는 뒷문을 열어주며 도망칠 것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다.

(문화일보/ '현역' 포함 20여명 '여의도 진군' 채비/ 12월 7일/ 천영식·김종태 기자)
지금까지 여성 정치인에 대한 신문 기사는 그들을 보는 남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문화일보가 한면 전체를 할애하여 다룬 여성 정치인 및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하 '여세연')'를 소개하는 기사는 객관적 시각 유지에 힘쓴 모습이 역력하다. 정계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의 약력과 근황을 소개하고 여성 정치인의 세력 확장에 변수로 떠오른 '여세연'의 설립 정신과 활동 취지, 주요 인물 소개 등 정도 제공 차원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뉴스위크/ 시애틀 점거 시위/ 12월 15일자/ 사진 Peter Dejong)
WTO 각료 회의가 열린 시애틀은 과격 시위대와 이들을 저지하는 경찰들의 대치 속에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현장 보도 기사는 이미 내용이 뻔한 것.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보도 사진이 힘을 발휘할 때다. 
 

(주간동아/ 국도는 사도(死道)? 국도엔 인도가 없다/ 12월 9일자/ 허만섭 기자)
차도 주변에 인도를 비롯해, 횡단 보도, 가드레일 등의 기본적인 보행자 안전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국도 실태를 고발한 기사다.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국도의 안전 시설 미비를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주민, 담당 공무원, 전문가 등을 충실히 인터뷰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 한 차례 거론되고 나면 그뿐, 안전 시설 미비로 잃어버린 아까운 생명을 우리는 신경이나 쓰는지 의문이다. 기사에서 지적한대로 '교통사고 위험 지역' 표지판을 설치하기 이전에 도로 설계시부터 보행자 보호를 위한 안전 시설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 고발 정신이 날카롭게 살아 있는 기사로써 가치가 있다.

(경향신문/ 시골 예배당의 '즐거운 밤 거룩한 밤'/ 12월 24일/ 김윤덕 기자)
성탄절 전야 시골 교회의 풍경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쓴 기사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과, 그에 걸맞는 감각적 문장이 눈길을 끈다. 짧은 수필을 읽는 듯 독자의 마음 속에 잔잔한 즐거움과 평온한 마음을 선물한다.
        *내용 일부를 개제하오니 잠시 글 속 예배당 풍경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마당 깊은 예배당'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노란 황톳빛 그 마당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10여그루 심어져 있고, 간혹 바람이 불면 솔향기를 품은 흙먼지가 살짝 일었다 가라앉곤 합니다. 예배당은 그 마당의 끄트머리에 그림처럼 서 있습니다.

(중략

가난하지만 예수님이 태어난 성탄절만큼은 시골교회도 풍성한 잔치를 벌입니다. 떡을 찌고 고깃국을 끓이고 귤과 사과도 여러 바구니 마련합니다. 이 소담한 잔치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예배당 식구만이 아닙니다. 4∼5리 떨어진 먼 마을 아이들도 한달음에 달려오고, 종교가 달라 발길을 망설이던 동네어른들도 이 날만큼은 스스럼없이 예배당으로 마실을 나섭니다. 또 있습니다. 정신지체아들과 무의탁노인들이 모여 사는 '포도마을' 식구들은 예배당의 가장 귀한 손님들입니다.

이들과 더불어 마련하는 성탄예배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버려진 나무둥치로 만든 설교대가 달랑 서 있는 온돌마루는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도회의 어느 화려한 교회보다 성스럽습니다. 비좁은 마룻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찬양'으로 예배를 시작합니다. 큰 교회의 성가대가 웅장하게 노래하는 '칸타타'와는 거리가 멀지요. 그저 80명 교인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합창을 합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남녀노소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찬송. 따로 연습을 하지 않아도 '화음'은 저절로 맞춰집니다. 목청 높은 어린이들은 '소프라노'가되고, 어떤 노래든 무턱대고 한 음정으로 일관하는 노인들의 음성은 그런대로 훌륭한 '베이스'가 되지요.

성탄절의 하이라이트인 '축하발표회' 역시 4살배기부터 70살 할아버지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합니다. 처음에 어른들은 '남부끄럽다'며 한사코 손을 내저었지만 "모두가 어린 아이의 마음이 되어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합시다"하는 목사님의 부탁에 용기를 냈답니다. 무대를 여는 인사말은 물론 청년들의 악기 연주에 맞춰 캐롤송을 부르고 춤을 출 때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호흡을 맞춥니다. 성극도 준비했습니다. 이번엔 11살 나단이가 사도 요한을, 쉰살 김대웅 권사님이 베드로를 맡았는데 총연습 때 나이 많은 어른을 향해 "이봐, 베드로!"하고 차마 부르지를 못해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릅니다.

(중략)

깊어가는 겨울밤.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잔치가 끝날 무렵 목사님은 성탄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베들레헴의 초라한 말구유에 아기예수가 오신 것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합시다. 우리가 먼저 겸손해지고 사랑으로 충만해지지 않는 한 이 세상의 어떠한 평화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제 고대했던 성탄예배가 끝나면 목사님과 교회 청년들은 백운정에서 내동막으로, 다시 도매촌까지 걸어 걸어 '새벽송'을 돌 겁니다. 손에손에 작은 나무십자가를 들고서요. 그것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밤잠 자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선물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고 살라는 뜻에서 마련했지요. 오늘밤 칼바람 추위도 무릅쓰고'천사의 노래'를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 문학기행-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12월 14일)
11월 말부터 연재를 시작한 문학기행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그들의 삶과 대입시켜 보고,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는 소설과 삶에 관한 이야기로 엮인다. 스트레이트 뉴스의 딱딱한 긴장감 속에서 이런 글을 대하는 것은 작은 카타르시스다. 지금까지, 전경린, 김기택, 최명희, 김소진, 도종환, 김영하 등의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 중심이 되어 작품과 작가 소개, 인터뷰, 작품의 시대적 의미등을 짚어보고 있다. 김소진의  단편소설 [자전거 도둑]을 테마로 한 글은 김소진의 작품에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과 그런 아버지를 만들어 냈던 시대의 아픔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WORST

(세계일보/ 쇠파이프 시위대에 無최루탄 경찰/ 12월13일/ 최태현 기자)
10일 일어난 서울역 광장 과격 시위로 경찰과 시민 여러 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세계 일보는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아 양측에 피해를 가중시켰다고 대서특필했다. 앞으로도 경찰이 최루탄 불사용 방침을 고수하는 것은 잘못이며 [불법 시위에 강력하게 대처해 공권력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눈에는 눈'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함무라비 시대로의 회기를 꿈꾸는 언론의 보수적 태도가 대다수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평화적 시위 문화를 정착하는 데 앞장 서겠다는 경찰의 의지를 약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주간조선/ '동대문 밸리', 21세기를 향해/ 12월 9일자/ 황성혜 기자)
 뉴스피플을 보면 석 달 후 주간조선 기획취재 기사의 향방을 알 수 있다. 지난 9월 17일자 뉴스피플 커버스토리는 [3평 안팎 '동살롱'에서 한국의 알마니는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동대문에 밀집한 소규모 의류업체의 약진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주간조선 12월 9일자 기사는 '동대문 밸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뉴스피플보다 진일보한 듯 하지만 속내용을 들여다 보면 석 달 전 뉴스피플에 실린 기사와 전혀 다르지 않다. 뉴스피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취재하고 구성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기사의 내용 대부분이 흡사하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기사에서 소개한 '동대문에서 뜨는 상점'의 사장은 대부분 국내 유명 대학 의류 관련 학과 출신이거나 프랑스, 미국등의 패션 스쿨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다. (2)패션의 흐름에 재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초를 다투며 진행되는 새로운 제품 출시 준비 과정을 시간대별로 소개한다. (3)제품의 디자인, 마케팅, 디스플레이 판매 등을 한 사람이 맡고 있어 의사결정 과정의 신속성이 동대문을 뜨게 한 커다란 이유이다. (4)재래 시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닌 상태에서 새로운 대형 소매점들의 약진은 동대문 시장권의 분화를 가져왔다. (5) 동대문 상권을 3가지 특징으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아직 살아 있는 재래 시장의 새벽 풍경을 묘사한다. (6)일본 보따리 장수들이 자주 드나들 정도로 일본의 패션 흐름에 뒤지지 않는다. (7)동대문 밸리의 성장은 IMF의 특수한 시장 상황을 기회로 삼았다.  이 밖에도 구조와 내용면에서의 유사점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외워서 쓴 주관식 문제의 답안지를 연상케 한다.

(주간조선/ 테헤란 밸리 새천년 '정보통신 메카'선언/ 12월 23일자/ 황성혜 기자)
서울 테헤란로가 정보통신과 인터넷 관련 업체들의 밀집으로 '디지털 밸리'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다. 다양한 업체 이전의 예를 소개하고 주요 기업의 사업 확장 방식도 다루어 주고 있어, 언뜻 보아 문제점이 없어 보인다. 11월 5일자 뉴스피플에 실린 [테헤란 밸리를 해부한다]의 내용을 알기 전까지 그렇다는 얘기다. 뉴스피플 기사에서 거론된 주요 기업과 테헤란로가 정보통신의 메카로 각광받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까지 취재의 범위가 한 달 전과 다를 게 없다.


(세계일보/ 1평 독거실 한숨소리만…/ 12월 6일/ 박영순 기자)
김태정 전 법무장관의 서울 구치소 생활 이틀째 표정을 스케치한 기사다. 신문 기사 치고는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김씨의 생활을 그리고 있어, 마음 약한 독자는 김씨의 처지에 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공직자로서의 신분을 남용한 범법자인 김씨를 객관적 시각에서 상당히 벗어나 동정하는 기사는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에 대한 불신감만을 가중시킬 뿐이다.[지난 6월 "짧은 기간 긴 역사를 남기고 간다"며 임명 10여일 만에 법무장관직을 사퇴했던 그의 '몰락'이 마침내 영어(囹圄)의 신세로 이어질 줄이야…. 김 전총장은 왼쪽 가슴에 달린 수용자 번호 '3223'를 내려다보면서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교도관 2명에게 "미안하다"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이내 고개를 숙인 채 방으로 들어갔다], [삭막한 콘크리트 벽에서 나오는 냉기는 근 30년간 죄인을 응징하던 입장에서 죄인으로 전락한 김 전 총장의 마음을 더욱 차갑게 파고들었을 듯하다]등 일제 시대 신파가 따로 없다. 공직자의 책임 의식과 윤리 도덕적 판단 기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 때, 법과 여론의 엄정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에 대한 동정론이 언론에 의해 조장되지 않을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문화일보/ 강남구 청담동 '음식남녀'/ 12월 4일/ 김선미 기자)
우리나라에는 고급지가 없다는 언론 전문가들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저명 일간지들의 슬로건은 '민족지' 아니면 '고급지'다. 그리고 이들의 차별화 전략은 4일자 문화일보 <세상엿보기>코너의 기사처럼 서울 강남 일대의 풍속을 소개하는 기사를 줄기차게 내보내는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기사는 '청담동 매니아'들의 생활 스케치를 엮어 놓는데 그치고 있어, 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취재를 했는지, 정말 취재가 있었던 것인지 알기 힘들다. 또 일부 젊은이들의 잘못된 소비행태를 전체에게 적용하여 오도(誤導)의 우려가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이야기로 서두를 '고급'스럽게 시작한 이 기사는 음식 이름보다 외국 고가 브랜드가 더 많이 열거된다.

기자가 나름대로는 고심 끝에 설정한 '청담동 남자1'과 '청담동 여자1,2'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1'은 독백 스타일로 자신의 청담동 생활을 이야기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청담동에서 물 좋기로소문난 카페 '하루에'. 그곳에 가면… 정, 재계 유명인사들의 자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명품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30만원짜리 페라가모 스카프를 사고… 1백만원짜리 프라다 점퍼를 샀다.] [나는 압구정동 토박이다. 최근 의사인 아버지가 이탈리아 '에스카다' 스커트 정장을 사줬지만 나는 몸 전체를 브랜드로 치장하는 데 이미 싫증이 났다.] 기사는 거의 이런 식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쓴소리'를 하는 40대로 추정되는 행인의 말을 옮겨 쓰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유명인의 이름, 고급 식당과 카페, 고가 의류 브랜드를 기사에 많이 거론하는 것이 고급지로 나아가는 지름길인줄 착각하는 기사는 주간동아 12월 9일자 [신세대 패션 우리에게 물어봐](연제호 기자)도 마찬가지다. 기사에 거론된 브랜드는 '고급'일지 몰라도 기사의 수준은 '저급'이다. 

(조선일보/ 알리-프레이저 '못말리는 라이벌'/ 12월 23일/  고석태 기자)
지난 12월 22일은 남북한 체육교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평가전 이후 8년만에 남북한 통일 농구 대회 참가 선수와 관계자가 서울에 도착한 이 날, 온 국민의 관심은 북한에서 온 선수들에게 쏠려 있었다. 언론도 스포츠 섹션 앞머리뿐 아니라 종합면을 할애해 통일 농구 대회 선수단 입국기사를 크게 다루고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민족지'를 당당하게 표방하는 조선일보의 스포츠 섹션 맨 앞장을 장식한 기사는 어처구니 없게도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TV 'ESPN'이 선정한 '20세기 미국 10대 라이벌'을 소재로 한 기사다. 민족 대화합의 장이 될 남북 통일 농구 관련 기사가 미국 권투 선수들의 이름으로 채워진 흥미성 기사보다 못하다는 '민족지' 조선일보의 편집 철학은 다분히 '반민족적'이다. 

(조선일보/ 설쳐댄 '사모님'… 희망 준 '아줌마'/ 12월 16일/ 박중현 기자)
1999년 만큼 여성들의 이름이 매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며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해가 또 있었을까? 이 기사에서 열거한 것처럼 무속인 양 모씨(48)의 충무공 가족묘 훼손사건, 임창렬 경기지사 부인 주혜란씨 구속 사건, 옷 로비 사건 등 일부 여성의 잘못된 행동이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받고 질책당했다. 이들은 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함께 각 언론의 연말 결산 특집 기사에까지 거론되는 수난을 겪으며 죄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조선일보 '아듀, 1999' 코너는 올해를 "여란(女亂)의 해"로 명명하고 '여성들이 1년 간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 숨가쁘게 설명하고 있다. 개별 사건의 특성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남성의 개입이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여성이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연말 특집에서 조선일보의 남성 우위, 남성 위주 의사결정 구조를 보는 듯 하여 씁쓸할 뿐이다. 산술적 비율을 따지는 유아적 발상을 동원해 보면 신문에 치욕스러운 모습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 중에 여성이 몇이나 되는지 묻고 싶다.

(동아일보/ 佛性을 가진 개를 아시나요?/ 12월 15일/ 이승재 기자)
말 많고 탈 많은 동아일보 [미즈&미스터] 섹션이 드디어 개를 등장시켜 그의 삶과 철학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주인공은 문경 운달산 김룡사에 사는 '목탁이'. 기사는 목탁이를 의인화하여 '목탁이의 일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아적인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뿌리 깊은 진돗개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작년 봄, 김룡사에 당도했다… 풍산개인 동갑내기 남편 '요령'과의 사이엔 올해 9남 9녀를 생산했다.] [채식을 즐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역시 절에 어울리는 개라"며 감탄한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하였을까 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다.] 생활 관련 섹션의 고질적 소재 빈곤과 유아적 아이디어의 환상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기사다. 

(신동아/ 추기경과 법정스님에게 묻고 싶어요/ 12월호/ 조정식 기자)
탤런트 서갑숙이 [나도 때론 포르노 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고, 음란 시비에 휘말리면서 스포츠 신문 가십란부터 시사 잡지에 이르기까기 그에 대한 기사나 칼럼을 경쟁적으로 싣고 있다. 서갑숙의 잠적과 다른 사회적 이슈들로 인해 다소 잠잠해지긴 했지만, 미처 서갑숙 개인 인터뷰를 따내지 못한 시사 잡지들은 아직도 서갑숙 섭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언론이 그녀의 항변을 들어준다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성 관련 담론을 자극적 음란물로 폄하하는 데에 있다.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자신의 성경험을 공개한 여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세인의 관심이 되겠지만,  언론이 성 담론을 잘 팔리는 기사거리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이 기사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김상미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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