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번 호는 20세기 마지막 호인데 너무 심심하지 않아요?"
12월 기획회의가 끝날 때쯤 한 후배가 한 말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호도 아닌 한 세기의 마지막 호.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저희도 뭔가를 하고 싶다 아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기말적이며 연말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 뚜렷한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면서도 그냥 들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시기에 적합한 연말기사로서 크리스마스에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찾고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노숙자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신문에 나올 법도 하건만 말이 없는 여의도의 천막시위가들의 겨울나기 등에 대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20세기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가지는 세기말 몽환적 분위기와 그 이면의 어두운 현실, 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저희의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이었을까요?

천막촌을 취재하러 갔던 동기가 울상을 짓고 나타났습니다.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갖고 끝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단순한 기사거리, 으레 연말이면 나오는 소외된 사람들로 쓴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숙자들를 만나보러 갔던 후배는 '노숙자'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IMF라는 상황에 의해 거리로 내몰린 그들에게 사회가 지어준 '노숙자'라는 틀, 편견이 도리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스스로 일어서려고 해도 이미 '노숙자'라고 이름 지어진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차가운 시선뿐이었으니까요.

가볍게 시작했던 것이 어느 새 큰 무게로 다가섰습니다. 그 동안 한해가 가고 새로운 천년이 온다고 생각만으로 모든 것이 새로와 질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것은 단지 1999년 12월 31일의 ' 그 다음 날'이 되는 것일 뿐인데.

마음만 앞서있었습니다.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주위를 보았다면 힘겹게, 혹은 부지런히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담았을텐데…. 이제는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는, 한 발짝씩 준비해 나가는 DEW가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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