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TURE (서곡)
우주에서도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 소행성 B501에서 의자를 계속해서 뒤로 옮겨 놓으며 하루에 44번까지 석양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행성의 둥근 그림자 위로 초생달 모양의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그린다.  단, 2001년 우주공간에서 태아가 된 데이브가 보고 있는 태양인지 400만년 전 행성의 지평선 위에 떠올라 인류의 새벽을 알렸던 태양인지 알 수는 없다.

DAWN of A MAN (인류의 새벽)
사막같이 황량한 행성에서 원숭이를 닮은 유인원들이 살고 있다. 어느날 유인원들은 이상한 기운을 발하는 검은 판 모양의 비석에 이끌리듯 모여든다. 조심스럽게 비석을 만져보는 유인원들의 경외가 전해진다. 원인 모를 두려움을 겪은 최초의 인류는 어느새 두 발로 서있다. 한 손에는 단단한 동물의 뼈를 꼭 쥐고서. 몽둥이로 때려 잡은 고기 맛을 본 유인원들의 다음 공격 상대는 아직 도구를 쓸 줄 모르는 다른 유인원 무리였다. 보다 강한 무기를 소유한 인류에 의한 정복의 역사는 이미 쓰여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영화 사상 가장 긴 400만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절묘한 장면 전환을 맛 보고 나면 어느새 서기 2000년의 광활한 우주공간으로 이동해 있다. 별빛의 조명을 받는 우주의 무도회 장에서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가 흐르고 각각의 행성들은 자전과 공전이라는 멋진 춤을 추고다. 빙글빙글 돌면서 항해하는 바퀴 모양의 우주선들은 행성들의 멋진 댄스 파트너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우주가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인 까닭은 아무도 그 근원과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ENTR'ATE(막간)
"I can feel it..."
인간은 기계를 만들면서 편리함과 동시에 존재에 대한 위기감을 얻었다. 산업혁명 초기 방직기계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을 벌인 이후, 기계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인간의 두려움도 커져왔다. 그리고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미래에 탄생할 완벽한 컴퓨터에 '9000 HAL'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 한 번의 에러도 없었던 성능을 자랑하는 9000시리즈 컴퓨터 '할'은 2001년, 목성을 탐사하러 떠나는 우주선에 여섯번째 승무원으로 탑승한다. '할'의 임무는 동면 중인 승무원 3명의 생명 유지와 우주선 신경계 전반을 관할하면서 데이브, 프랭크 박사를 돕는 것. 그런데,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말하게 프로그램된 '할'이 정말로 뭔가를 느낄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프랭크와 데이브가 '할'의 이상을 느끼고 작동을 멈추려 했다가 '그'에게 살기 어린 공격당하기 전 까지는.

JUPITER and byond of infinite (목성 그리고 미지의 너머)
우주선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데이브'는 끝내 극비에 붙여졌던 검은 비석에 대한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시간도 빗겨가는 우주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미지의 너머에서 '데이브'의 눈동자에 투영된 것은 미래에 대한 기억, 데자부였다. 하얗게 머리가 샌 자신을 보고 있다가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이미 늙어버린 자신이 느껴질 뿐. 기억의 엇갈림이 몇 번 반복되고 데이브는 이제 침상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죽음을 앞 둔 데이브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가르친 것은 유인원들의 태초의 살인 현장과 고주파의 소리에 우주인이 귀를 막고 쓰러졌던 달 표면, '할'에게 살해당한 프랭크가 사라져간 우주공간에 나타났던 그 검은 비석이었다.

EXIT MUSIC (퇴장음악)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왜소함을 느낀다. 광활한 우주에서 데이브도 태아의 모습으로 변해 갈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웅장한 서곡이 흐르기 시작하고 태아의 두 눈은 어둠 속에서 지구와 달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

김재은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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