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아파트가 흔치 않던 시절,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집을 지켜주고 식구의 잔반처리까지 맡아줬으니 사람 입장에서야 개를 마다할 이유가 있었을까.

개를 점잖게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흔해졌을 무렵 개들의 신상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마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곁에 있는 동물에게도 마음을 주기 시작했던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요즘. 개를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눈총을 받는다. 개가 갖고 노는 완구(玩具)도 아닌데 무슨 완(玩) 자를 쓰냐는 거다. 애완견의 자리는 이제 반려견(伴侶犬)이 메우고 있다. ‘개 주인’을 부르는 말도 한동안 견주(犬主)라는 말로 포장이 되더니 이젠 ‘반려인’으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라고 한다. 두세 집 걸러 한 집에 개나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산다는 얘기다. 개가 가족의 엄연한 구성원인 가정이 많다. 그들의 ‘견생행로(犬生行路)’는 점점 더 사람과 닮아간다. 개를 키우는 집엔 개 장난감이 쌓이고, 때가 되면 한 번 병원에 가서 백신을 맞추며, 살이 쪘다고 다이어트 사료를 먹는 개가 많아졌다.

유치원에 가고 의료보험도 들며 사람보다 비싼 미용실에서 털도 깎고…. 그리고 수의(壽衣)를 입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개도 있다. 물론 태어나 땅 한 번 디뎌보지 못한 채 ‘뜬장’에서 살다 죽을 때야 흙냄새 한 번 맡아보는 비참한 삶을 사는 개도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개를 반려견이라 부르는 이들이 느는 한, 개를 둘러싼 세상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개를 싫어할 수 있지만 그 변화의 흐름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개들과 그들을 키우고 있는 사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고 또 유익하다. 무엇보다 한 시대를 살면서 개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는가.

무술년 ‘황금 개’의 해에 이런 저런 개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시리즈 기사를 보면서 우스갯소리로 완전 ‘개판’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몇 십 년 뒤 ‘개판’이란 말의 어원을 아사리판이나 난장판 설명하듯 풀어줘야 하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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