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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곳 ⑥ 이동노동자 쉼터
송정은 기자 | 승인 2018.02.23 01:33

 

천장에서 늘어진 여덟 개의 조명은 제각각 주황색 온기를 내뿜었다. 벽에 붙은 LED 시계는 아라비아 숫자로 새벽 ‘01:48’을 나타냈다. 빨갛고 파란 1인용 소파가 창가를 향해 나란히 놓여있었다. 앉아서 차를 마시며 하늘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마음을 안정하는 뉴에이지 음악’이 컴퓨터의 스피커를 통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두 대의 전신 안마 의자에서 안마를 받기도 했다. 의자 앞에는 머리에 착용하는 일회용 커버가 놓여 있었다. 여러 사람이 더욱 깨끗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작은 배려였다.

기자가 2월 3일 새벽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찾아간 곳은 어느 호텔의 라운지도, 밤새 운영하는 카페도 아니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처럼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였다.

3호점인 합정쉼터는 지난해 11월 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대리운전 기사 김성헌 씨(41)는 이날 처음으로 쉼터를 찾았다. 그는 “인터넷으로 본 사진보다 훨씬 깔끔해 놀랐다. 우리 집보다 좋아 보인다”고 했다.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안마 의자도 있다는 기자의 말에 어디 있느냐고 반색했다. 김 씨는 “앞으로도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꼭 들릴 것 같다” 말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3호점의 내부 모습이다. 합정쉼터는 평일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문을 연다.

김 씨와 대화를 나누고 나자 창밖에는 갑자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쉼터는 쉼터를 찾아온 대리기사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새벽이면 서울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자주 대기한다. 김민섭 작가가 직접 대리운전을 하며 겪은 소회를 기록한 책 <대리사회>에는 ‘새벽 2시의 합정은 붉은 포도송이가 된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콜을 기다리는 대리기사의 위치인 빨간 점이 모여 휴대폰 속에서 붉은 포도송이로 피어난다는 말.

그동안 대리기사들이 눈비를 피하며 기다릴 장소는 마땅히 없었다. 취재 중 만난 대다수 이동노동자는 쉼터가 생기기 전에는 자동입출금기기(ATM)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답했다. 퀵서비스 기사 임종철 씨(46)는 “ATM에 있다가 경찰이 오면 쫓겨나다시피 갈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를 만난 곳은 2호점인 장교쉼터였다. 장교쉼터는 퀵서비스 기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 중구 장교동 장교빌딩 근처에 문을 열었다. 장교빌딩 내부가 넓어 기사들이 자주 모인 곳이라고 한다.

1월 31일 찾아간 장교쉼터는 퀵서비스 기사를 위한 맞춤 공간이었다. 퀵서비스 기사로 15년간 일했던 양용민 장교쉼터 사무장의 손길을 거쳐 조성됐다. 커다란 공구장에 오토바이를 고칠 수 있는 드라이버·스패너 등 공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공구장 옆 책장에는 <오토바이 세계일주>와 같은 책들이 갖춰져 있었다.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가 가장 먼저 생긴 곳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이다. 서초쉼터 근처 신논현 사거리는 대리기사 사이에서 ‘교통의 요지’로 통한다. 하루 평균 70여 명의 대리기사가 서초쉼터를 찾는다. 개소한 지 2년 만에 대리기사들의 작은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개개인으로 일해 만나기 힘들었던 그들에게 대화의 공간이 생긴 셈이다.

2월 1일 새벽 2시, 서초쉼터의 기다란 테이블에는 15명의 대리기사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수다를 떨기도,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에 가입하는 것을 서로 도와주기도 했다. 조용한 분위기의 합정쉼터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대리기사 장영주 씨(44)는 “여기 오면 사실 좀 재미있다. 기사끼리 친해져 쉼터에 매일 오게 된다”고 말했다.

장 씨의 시선은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휴대폰 화면 속 선명한 ‘콜대기중’이라는 네 글자를 향했다. 그는 언제든 쉼터를 떠나기 위해 준비했다. 인터뷰하느라 콜을 놓쳤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쉼터는 역설적 공간이었다. 이동노동자들은 쉼터에서 편하게 쉬는 동시에 금세 콜을 잡아 쉼터를 나서야 했다. 많은 대리기사가 외투를 채 벗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콜을 잡았다면서 문밖을 나선 한 기사는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전에 손님이 콜을 취소했다며 돌아오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의 고충에 대해 토로하고 공감했다. “손님이 내가 끼던 블루투스 기기를 빼라고 성을 내더라니까, 나는 내비게이션이 거슬린다며 끄라는 손님도 봤어.” 사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이동노동자의 휴식 공간을 마련한 데에서 나아가 쉼터를 통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각각의 쉼터는 법률·금융·주거·건강과 관련한 상담을 운영한다. 양용민 장교쉼터 사무장은 “이동노동자는 사업장이 도로라 교통사고가 자주 난다. 쉼터에서 상담하고 잘 해결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고명우 기획협력팀장에 따르면 쉼터 사업에는 세 곳을 합쳐 연간 7억5천만 원의 예산이 배정된다. 대리운전 기사는 전국적으로 약 10만 명. 퀵서비스 기사의 수는 정확히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이 점점 발전하면서 앞으로도 이동노동자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방승범 서초쉼터 사무장은 “이동하며 노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쉼터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장교동의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2호점에 걸린 현수막. 쉼터에서 운영 중인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의 일정과 내용을 안내한다. 퀵서비스 기사를 위한 장교쉼터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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