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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곳 ② 경찰청 인권센터
유지혜 기자 | 승인 2018.02.23 01:25

 

서울지하철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경찰청 인권센터가 있다. 남영역 플랫폼에서도 7층짜리 검은색 이 건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이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가 고문 기관으로 악명을 떨쳤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8년부터 남영역 인근에 사는 배명환 씨(29)는 “근처에 있다는 건 알았는데, 거기(경찰청 인권센터)가 거기(남영동 대공분실)인지는 몰랐다”고 했다.

경찰은 2005년 인권 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의지를 담아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센터로 조성했다. 1976년 생긴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누적 관객 수 720만(2월 9일 기준)을 넘어선 영화 <1987>의 배경이기도 하다. 인권센터 팸플릿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희망찬 미래를 향한 경찰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라는 말로 이곳을 설명한다. 하지만 인권센터에서 경찰의 반성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 경찰청 인권센터 1층 홍보관

인권센터 1층 홍보관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인권센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벽에 적힌 글씨를 보는 관람객 뒤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경찰인권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시상하는 영상이 반복 재생됐다. 영화 <1987>을 보고 친구 목지연 양(18)과 이곳을 찾은 장예진 양(18)은 “경찰이 고문해놓고 여기를 경찰이 운영하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1층 홍보관 전시물은 이곳에서 23일 동안 고문을 당한 고 김근태 전 장관을 이렇게 소개한다. “1985년 민청련 김근태 의장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23일 동안 조사받은 것이 세계 언론에 알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1. 12. 30일 타계 소식이 있자 추모하기 위해 그가 고문을 당했던 5층 515호실 앞에 인권센터 소속 경찰관들이 올려놓은 조화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조화로 묻힐 고문은 아니었다. 김 전 장관은 자서전 <남영동>에 “이런 잔인한 고문이 아니라면 정말 죽음에 처넣어지는 것, 고문 없이 살해되는 것조차 받아들이겠다”고 썼다.

▲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박종철 씨의 편지를 읽고 있다.

4층에는 박종철 기념전시실과 인권교육·전시관이 있다. 기념전시실에는 8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신문 기사, 박종철 씨의 유품과 편지가 보인다. 관람객 은지영 씨(27)는 “편지를 보니 정말 나처럼 평범한 대학생 같아서 슬펐다. 겹쳐져 있기도 하고, 자세가 불편해서 제대로 못 본 것이 아쉽다”고 했다.
 
사단법인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의 김학규 사무국장은 “운영 주체가 경찰이기 때문에 내부를 쉽게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인권센터의 주된 목적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경찰 홍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과 인권교육·전시‘관’의 명칭 차이를 예로 들었다. 일반적으로 실(室)은 관(官)의 하위 개념이다.

▲ 4층 인권교육·전시관

맞은편 박종철 기념전시실보다 2배 넓은 인권교육·전시관 안에는 인권에 관한 내용과 ‘자랑스런 인권 경찰’의 치적을 홍보하는 사진과 상장을 전시해놓았다.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10분 이상 둘러본 관람객들은 인권교육·전시관에서 2~3분 만에 나왔다. “지켜주기는….” 20대 여성 관람객이 ‘인권을 지키는 든든한 기둥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 앞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 왼쪽부터 5층 (구)조사실 복도, 조사실 내부, 박종철 씨가 숨진 509호실

경찰의 반성만큼 공간에 대한 설명을 찾기는 어려웠다. 관람객 유한일 씨(26)는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당황했다. 활짝 열려있는 초록색 철문 때문이다. 그는 ‘이게 뭐지’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했다.

인권센터 5층 (구)조사실에는 똑같이 생긴 방이 14개 있다. 안에는 화장실 비슷한 공간과 에어컨디셔너뿐이다. 따로 설명이 적힌 패널이나 팸플릿도 없다. 인권센터 팸플릿에는 5층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지만 실제로는 2000년대 초반 리모델링을 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박종철 씨가 고문을 받았던 509호실만 일부 옛 모습이 남아있을 뿐이다.

관람객은 이런 방으로 끌려왔던 사람들이 ‘칠성판’이라고 부르는 고문대 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욕조가 성인이 다리 뻗고 앉기에도 턱없이 작은 까닭은 물고문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기가 무슨 공간인지 제대로 설명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 씨는 “뭘 보고 뭘 느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1층에서 본 계단, 5층 계단 입구, 72개의 좁은 나선 계단

정작 관람이 필요한 곳은 방치돼 있다. 1층부터 5층까지 연결된 나선형 철제 계단은 5층 조사실로 도착한 사람이 자신이 몇 층에 있는지 알 수 없어 공포를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이 계단은 1층 홍보실 한구석의 문을 열면 발견할 수 있는데,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팻말은 있지만 제대로 막혀있지 않아 계단을 이용하는 관람객이 있었다. 송홍석 씨(59)는 ‘계단으로 5층까지 올라가면서 두려웠을 박종철 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경찰청 인권센터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인권보호계 나찬문 경위는 “시민 요구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작년 7월부터 토요일에도 개방하고, 올해 2월부터는 일요일에도 개방한다고 했다. 부족한 부분은 박종철기념사업회, 서울KYC(한국청년연합) 등 시민단체와 협의를 통해 보완한다고 했다. 경찰대학 학생들을 자원봉사자로 받아 전시 해설을 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건축가 김명식의 책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악의적인 공간을 품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인권센터 팸플릿은 이곳을 ‘경찰 인권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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