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은 올해 창간 10주년과 동시에 특별한 첫 생일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사주 개인의 소유에서 800여 명의 시민들이 공유하는 경기도 고양시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고양신문의 편집장 이영아(33)씨는 고양시에서 4살 때부터 자라난 본토박이 기자다. 대학을  졸업한 91년부터 고양신문사 사무실 한 자리를 지켜온 그는 작년 재정난으로 사주가 제3자에게 신문사를 매각하려 하자 적극적으로 시민주를 공모했다. 지역언론에 대한 이해나 특별한 소신이 없는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더 이상 재력만으로 사주 행세를 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곧 정기독자와 지역시민단체 회원 등으로 구성된 800여 명의 주주가 모였다. 50만원의 박봉 중10만원을 선뜻 내놓았던 고마운 시민도 있었다. 결국 정기발행이 중단되고 시민주 호외가 나간지 한 달만에 고양신문은 시민주 신문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만 8년 동안 고양신문과 동고동락해 온 이영아 편집장. 그런데 힘겨운 지역신문사의 일을 해내는 억척여성으로 보기에는 그의 외모가 너무 곱다. 갸름한 얼굴의 오똑한 콧대에서 왠지 모를 고집스러움이 감돌 뿐, 가녀린 체구와 하얀 피부, 노란 고무줄로 수수하게 묶은 생머리는 청순함 마저 풍긴다.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이영아씨는 조금 묽게 탄  커피 두 잔을 내왔다. 그런데 심심한 커피 맛이 오히려 질리지 않는다는 듯 그는 어느새 한 잔을 다 비웠다. "별로 싫증을 안 내는 스타일이에요."  한 동네 친구와 10년간이나 연애를 하고 결혼한 것은 가장 그다운 일이었다.

이영아씨는 스스로 게으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금방 그만 두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고 겸손하게 웃는다. 하지만  고양신문의 편집장으로서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에 대해 말하는 그의 모습은 당당했다. 올해 안으로 고양신문 가판대가 고양시 전역의 대형할인점과 금융 공공기관, 역 주변 등에 설치된다. 한달 구독료 2000원, 한부에 500원 꼴인 신문 대금과 상관없이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낸 수익금 전액은 결식 아동과 노인을 돕는데 쓰일 예정이다. 이 사업은 지역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한 공적 기여와 함께 고양신문 홍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21세기를 맞으며 여기저기서 삶의 질을 이야기해요.하지만 생계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부에서만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잖아요. 소외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캠페인을 계속해서 벌여 나갈 거예요." 시민 운동, 지역 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어릴 적부터 자라 온 고양시에서 지역 신문사 일을 시작한지 벌써 8년 째. 그 동안 지역언론과 시민운동은  다른 경로를 거쳐서 발전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둘을 결코 따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역 신문이 지역의 공공과제를 제기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사례들을 만들고 싶어요." 1991년, 지하철 계획에는 빠져있던 원당역 유치에 성공한 것과 1994년 신도시 개발로 사라졌던 일산 전통 정발산 도당굿을 복원해 낸 일은 고양신문이 시민과 연대한 활동의 결실이다. 매년 중고생을 대상으로  문화제를 개최해 온 것도 지역 문화 형성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성과로 꼽는다.

고양신문은 12월 시민들의 목소리를 보다 많이 반영하기 위해 주 1회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된다. 수준 높은 기획기사와 지역의 전문인 칼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 기사들도 늘어날 예정이다. 시골과 도시가 공존하는 신도시의 특성상 타겟 독자를 정해서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는 젊은 주부 독자 확보에 주력하고 현재 6명인 주부 기자의 수도 늘리려고 한다. " 지역언론은 많은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뉴스가 걸러지는 중앙지와는 달리 지역 주민들이 직접 뉴스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시민들이 자기 피부에 와닿는 소식을 전하고 지역 환경의 개선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지역신문에 애정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영아씨는 지역 신문의 또다른 중요한 역할로 지역 행정의  견제와 감시를 말한다.
"항상 정도를 걸으려고 해요. 외압에 영향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그래야 강도 높은 비판을 할 수 있죠."
실제로 고양시청 기자실에는 고양 신문 기자의 자리가 없다. 하지만 시청 기자실로 출근하는 어떤 기자보다 시청 각 부서를 성실하게 취재한다. 지난 11월 1일자 신문에서 고양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가 시 예산 3천여 만원을 들여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실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에 시예산의 지출 내역을  눈여겨 봤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0일자 1면 머리기사로는 농협과 시금고(市金庫)가 30년 간 수의계약을 맺어온 것을 폭로하고 공개경쟁을 촉구하기도 했다. 10월 25일자에서는 롯데백화점 일산점 개점 첫날인  15일, 엘리베이터 안에 이용객 10명이 1시간이나 갇혀있었던 사실을 최초로 기사화했다. 대자본 광고주를 의식해서 어떤 중앙 일간지에도 나지 않았던 사고였다.


고양신문사와 시민이 함께 하는 고양시 문화제나 일산 도당굿 전통행사 등에는 중앙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도 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신문 보도에는 고양신문사 주최라는 사실이 언제나 빠져 있다. 같은 언론사끼리는 이름은 내보낼 수 없다는 이유다. 타사에 대한 텃세가 심한 중앙언론들은 지역 언론에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권위적인 기존 언론에 대해 말하는 이영아씨의 어조는 담담하다. "지역 신문이 크는 수밖에 없어요. 워낙 권위주의적인 중앙집권적 체제가 존속하는 한 중앙지 위주의 언론도  바뀌기 힘들죠. 하지만 지방분권화와 더불어 지역신문도 발맞추어 가리라고 봐요." 나직하지만 소신이 깃든 음성에서, 그가 부드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쉽지만은 않았던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김재은 기자<dewedit@hanmail.net>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