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보수층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둘로 쪼개졌고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다. 보수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목소리가 실종된 이들이 있다. 일명 ‘샤이 박근혜’ 혹은 ‘샤이 보수’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2016년 4월에 20대 남녀 800명을 조사한 결과, 보수성향이라고 답한 비율은 15.3%에 그쳤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들은 대체로 진보성향을 띠는데, 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 탄핵이 겹치자 청년 보수의 목소리를 듣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취재과정에서 실감했다. 보수의 가치, 보수정당의 현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생각을 들으려고 지난해 12월부터 20대 보수를 찾았지만 모래 속에서 바늘을 찾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스토리오브서울 대선취재팀의 단체카톡방에서 인터뷰가 가능한 20대 보수가 주변에 있는지를 물었다. 기자 1명이 자신의 친구에게 물었더니 공무원이라서 정치성향을 밝히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평소 보수라고 생각했던 다른 친구는 이제 보수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다른 기자가 대구에 사는 대학생에게 연락했을 때도 “주변에서 (보수친구를) 못 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취재팀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의 청년포럼리더인 박새롬 씨와 접촉했다. 지난해 12월 5일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이 없었다. 나흘 뒤에 다시 메시지를 보내고, 12월 24일에는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다. 역시 무응답이었다. 여러 차례의 설득 끝에 박 씨가 사는 경기 남양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2월 3일 오후 3시, 마석역의 출구에서 보기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카카오톡 내용을 읽고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다. 취재팀은 영하의 추위에 1시간을 기다리다 돌아왔다.

청년보수연합(YCU)은 페이스북을 통해 ‘간부진과 회원분들께 의견 여쭤보고 메시지 드리겠습니다. 고생하세요^^’라고 했지만 1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다시 요청했을 때는 메시지를 읽기만 하고, 역시 답을 주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청년으로 살아가기란
취재팀이 만나려고 시도한 40여 명 중에서 대면 인터뷰에 응한 20대는 6명이었다.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대부분 얼굴노출을 꺼렸다. 취재에 도움을 준 자유경제원 관계자는 서면 인터뷰에 응한 20대의 신상을 보호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정치성향이 주변에 알려지면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서울지하철 6호선 미디어시티역 부근 카페에서 만난 이성은 씨.

이성은 씨(27)는 보수청년이 “대한민국에선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기 일쑤”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보수성향의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한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도 일한다. 이 씨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많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알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발전사와 한국 내부에서 평가하는 역사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친일파와 독재자의 프레임을 씌우고 그의 정치철학을 ‘극복해야할 산물’로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씨의 활동은 그의 정치색을 오롯이 드러낸다. 이러한 점으로 인한 불이익이 적지 않았다.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면서 조언을 구했던 교수들 사이에서 자신이 ‘일베(일간베스트)’라는 소문이 돌았다. 스타트업계에는 진보성향의 청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는 점을 매번 느낀다.

▲서울지하철 4호선 이수역 부근 카페에서 만난 손주찬 씨. 휴대폰 뒷면에는 태극기 스티커를, 가방에는 태극기 집회 스티커를 붙였다.

사석에서 정치 얘기를 하다가 멱살 잡힌 적이 있다는 청년도 있다. 2월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에서 연설했던 손주찬 씨(27‧ 다니엘 손) 사례다. 그는 호주의 주립대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다가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고 귀국했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SNS에서 보수적인 발언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페이스북에서 제가 쓴 글을 신고하는 네티즌이 정말 많아요" 사적 공간에서 정치적 논의를 하다 욕을 얻어먹는 일은 다반사다. 그러나 손 씨는 "보수적 신념을 이야기 하는 것을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말했다. 

▲성균관대 양현관에서 인터뷰하는 정낙영 씨

단체소속이 아닌 일반인 역시 정치성향이 알려져 난감함을 느낄 때가 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수료한 정낙영 씨(27)는 “네가 박근혜를 찍었으니 죄책감을 느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는 “당선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투표한 시민이 다 책임져야 하나”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청년이 생각하는 보수
인터뷰에 응한 20대는 보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고,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추상명사. 범위를 정치로 좁혀도 분명한 정의를 내리기가 곤란한 듯 했다.

연세대 곽승민 씨(23‧의과대학)는 보수를 “이념이라기보다는 총체적인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한 뒤에 “반좌파적 생각을 토대로 연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낙영 씨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기에 자신을 보수가 아닌 우파로 분류한다.

서강대 김홍식 씨(25‧경제학)는 보수를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기존 체제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나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수정하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성은 씨는 보수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애국심을 들었다. 그 중 국가를 사랑하고 지키고자하는 마음인 애국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손주찬 씨에게 애국은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내는 일이다. 손씨는 “헌법과 건국사관을 올바르게 교육받고 지키는 일”이라고 보수의 역할을 규정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1000여일에 걸쳐 '북한 정권 집단 학살 중단시켜라' 캠페인의 공동대표로 일했다. 그 기간 동안 탈북자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됐다. 또 레소토, 팔레스타인, 캄보디아 등 8개국 아동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국가 지도자의 비전과 역량이 국가 발전 수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 송파구 잠실의 카페에서 만난 김홍식 씨

취재과정에서 만난 20대는 보수를 대표할만한 정당이 국내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홍식 씨는 보수성향이지만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보수정당이 두 개로 나눠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바른정당에 대해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하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평가는 내릴 수 없다고 했다.

성균관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이종욱 씨(27) 또한 과거 새누리당을 보수의 대표정당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보수층이 새누리당으로 결집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선택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도층과 부동층의 지지를 합리적 설득 없이 얻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이성은 씨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새누리당의 이념 부재 정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우파가 추구하는 가치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말기유통법과 도서정가제는 시장경제를 왜곡한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보수정당의 안보 정책은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개성공단 폐쇄나 통진당 해산은 좋은 업적이었다고 봐요.” 그는 자유시장경제를 제대로 수호할 정당이 출현하길 기다린다.

공정과 자유와 안보
당신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냐는 질문에 김홍식 씨는 기회균등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이루는 ‘코리안 드림’이 실현되는 사회를 말한다.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불렸듯이 대한민국에서도 모두에게 공평한 문이 열리길 소망한다. 곽승민 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본다. 인간사회에서 경쟁이 불가피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 많다고 생각한다.

정낙영 씨는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를 꼽았다. 누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든 개인의 자유로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 씨는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 “세대 간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곽승민 씨가 생각하는 자유는 조금 다른 맥락이다. 그는 국가가 개입하는 정책이 많아질수록 개인의 자유는 줄어든다고 본다. 저소득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는 찬성하지만 보편적 복지에 부정적인 이유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사회불평등의 문제는 “가진 자의 자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손주찬 씨는 중산층의 부활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국가에 의지하는 국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국민이 많은 나라를 꿈꾼다. 중소기업 육성 정책, 청년 창업 적극 지원, 저가 주택 공급 정책 등을 통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이성은 씨는 ‘안보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를 대한민국의 미래로 제시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분단국가임에도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부족하다. 자유민주주의체제 아래 통일국가가 되기를 바란다면 그는 확고한 안보원칙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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