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노숙생활을 하던 중국 동포가 길거리에서 동사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작년 12월 11일 경향신문에 실렸다. 이 중국 동포는 112와 119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제 때 치료를 못 받아 숨진 외국인노동자는 최근 5년 동안 1059명에 이른다.

5월 말 서울 가리봉동에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 전용병원(이하 외국인노동자 전용병원)'이 문을 열 예정이다. 원래는 지난 2월에 문을 열 계획이었다. 병원을 짓기로 한 건물의 주인이 돈을 더 요구하는 바람에 다시 건물을 구하느라 늦어졌다. 5월 말로 개원 날짜가 잡혔지만 4월 말 현재 아직 공사 시작도 못했다.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시설을 갖추는 데 필요한 비용과 의료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외국인노동자는 안 받아요

외국인노동자 전용병원 설립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편에서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병원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병원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수는 40 만 명에 이른다. 이 중 90%가 불법체류자 또는 밀입국자로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때문에 한국인보다 훨씬 비싼 치료비를 물어야 한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중국동포의 집에서 만난 중국인 원문서(51) 씨는 골수암에 걸렸다. 치료를 위해 한강성심병원을 찾아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50 만원에 치료를 받기로 했다. 약속과는 달리 검사단계마다 계속 돈이 들어갔다. 결국 돈이 없어 완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병원비가 너무 비싸요.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거나 예약하기기도 너무 힘듭니다. 중국처럼 못 사는 나라 사람은 무시 받기 일쑤예요." 원문서씨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불법체류자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를 아예 받아주지 않는 병원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신원보장도 안되고 치료비를 떼일 염려가 있잖아요. 한국인이 보증을 서거나 우선 진료비를 낸 외국인노동자에 한해서만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털어놓는다. 병원에 가기가 이렇게 힘들다보니 외국인노동자들은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외국인노동자가 어눌한 한국말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고 검사를 받고 약을 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노동자 전용병원 설립 계획서에는 이런 사례들이 적지 않다. 네팔인 에비 구릉(27)씨는 머리가 아파 두통약 '펜잘'을 사려고 약국에 갔다. 에비 구릉 씨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약사는 '벤졸(벤젠을 다르게 이르는 말)'을 줬다. 두통약인 줄 알고 벤졸을 마신 에비 구릉 씨는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작은 힘을 모아 만드는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 전용병원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의 대표 김해성 목사는 이런 사정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전용병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에도 병원 설립을 서둘렀다.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와 독일인 요르그 바루트 목사, 이완주 원장 등이 뜻을 같이했다. 4월 말 한라건설에서는 무료로 건물 리모델링을 맡기로 했다. "외국인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이 그동안 일반 병원을 이용하면서 겪은 부당한 일은 말로 다 못해요." 김해성 목사는 말한다. 외국인노동자 전용병원에서는 한국인은 받지 않는다. 한국인에 비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노동자들만을 위한 병원이다.

외국인노동자 전용병원은 지상 3층, 지하 1층의 규모로 지어질 계획이다. 대상은 외국인 의료 공제회 소속 단체나 전국외국인노동자 상담소 및 선교단체에 속한 외국인노동자들이다. 그밖에 병원 설립 소식을 듣고 오는 외국인노동자들도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의 가족들도 병원이용이 가능하다. 모금으로 병원을 짓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한 것처럼 병원 운영도 후원과 모금을 통해서 이뤄질 예정이다. 외국노동자들은 무료로 치료를 받거나 최소한의 비용만 내면 된다. 

치료를 맡게 될 의사와 간호사도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시간이 날 때 파트타임으로 외국인노동자를 치료하게 된다. 외국인노동자 전용병원의 원장을 맡기로 한 이완주(이완주 소아과 원장)씨는 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와서 보시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완주 원장은 외국인노동자들의 상황을 직접 본다면 의사로서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병원 설립 추진위원회측은 병원이 설립되면 약 4만 7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지금에 비하면 큰 성과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노동자 40만 명을 수용하기에는 턱 없이 작다. 김해성 목사는 "정부의 지원은 꿈도 꾸지 않았어요. 얼마 전에 보건복지부 차관이 한 번 만나러 오라고 하긴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정책수준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교해도 한참 뒤떨어졌다. 특히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은 더 형편없다. 재외동포재단의 민원실장 이인우 씨는 "미국에서는 외국인이 쓰러지면 바로 사람들이 병원으로 데려가서 우선 목숨부터 살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오면 돈부터 내라고 하죠"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병원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한다. "병원은 이윤을 내야하는 기업이니까요. 병원이 치료비 떼일 걱정을 안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1964년 서독에서 '기한부 한인노동력 수입'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간호사와 광부들이 독일로 떠났다. 독일 정부에서는 독일인과 동등한 수준의 의료와 임금을 보장했다. 독일로 간 간호사, 광부들이 독일의 인상을 우리에게 전했듯, 우리나라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자국에 돌아가 우리나라에 대해 전할 것이다. 최근 방송국과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17대 국회가 만드는 외국인노동자의 의료, 복지에 대한 정책에도 이런 움직임이 녹아들기를 기대한다.


 
강버들 기자 <whgdk061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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