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가르치기보다 붙잡아 놓는 게 더 힘들거든"

한 손엔 교과서, 한 손엔 분필을 쥐고 칠판 가득 하얀 글씨를 채우고 있는 선생님의 등뒤로 아이들은 각기 제멋대로 떠든다. 서로 치고 받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교실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의 시골 초등학교 교실 풍경은 소란스럽고 산만하기 그지없다.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자연스럽게 연출한 이 장면은 영화 초반부터 관객을 중국 변방의 한 초등학교 교실 안으로 직접 끌어들인다.

13살의 소녀 '웨이민쯔'는 한달 간 쑤시엔 초등학교의 대리 교사로 취직한다. 그런데 임금 50위엔은 이 가난한 마을의 유일한 교사였던 가오 선생이 돌아와야 받을 수 있다. 단,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하고 무엇보다 한 명도 교실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잘하는 것 없던 이 풋내기 선생님은 처음엔 그저 가오 선생이 시킨 대로만 한다. 먼저 교과서 한 과 전체를 당나귀 똥 만한 일정한 크기로 칠판에빽빽히 적어 놓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똑같이 공책에 쓰라고 시킨 뒤 해가 질때까지만 교실 문을 지키면 된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고분고분할 리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학생 '장휘거'와의 한바탕 몸싸움과 뜀박질은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다. 그런데 바로 이 사고뭉치 장휘거가 사라지면서 웨이민쯔와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모두 합심하기 시작한다.   

"일을 했는데 돈을 안줄 리 없어"

본명이 웨이민쯔인 소녀 연기자는 자신이 실수 하나라도 하면 감독은 처음부터 거듭해서 다시 찍었다고 회고한다.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또 다시.. 그런데 무모할 정도의 이 반복이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10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집안 형편상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돈벌러 간 장휘거를 찾는 웨이민쯔의 여정 역시 그랬다. 도시로 가기 위한 버스 값을 버는 과정과 도착한 뒤 시작되는 3일간의 눈물겨운 미아 찾기는 때로는 웃음이 날 정도로 무모해 보인다. 버스 값을 벌려고 주인도 없는 벽돌공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2시간동안 벽돌을 나르고 -허락도 받지않고 엉망으로 일했지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기. 장휘거가 이미 이틀 전에 사라진 역에서 안내방송을 한 뒤 하염없이 기다리기. 아무도 모르는 '쑤시엔 초등학교'만 달랑 연락처로 적은 벽보 100장을 쓰면서 역에서 밤을 세우기. 역에서 만나 부랑인의 말만 듣고 무작정 방송국에 가서 장휘거를 찾아달라고 하기...그러나 이틀을 꼬박 방송국 앞에 서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국장을 찾았던 웨이민쯔의 그 무모함이 결국 통한다. 국장의 도움으로 장휘거를 찾는 웨이민쯔의 눈물이 방송을 탄 것. 하지만 TV를 보고 전국에서 보내준 성금, 학용품과 함께 방송국 차를 타고 금의환향하는 장휘거의 인터뷰 장면은 끝까지 씁쓸하다.

교실이 붕괴된다?

수업이 시작한지 10분이 넘도록 교실은 쉬는 시간처럼 소란스럽다. 아이들은 교탁 앞에 선 선생님도 아랑곳 않고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참다 못한 선생님이 주의를 주며 1분단 쪽으로 걸어가자 4분단에 앉은 아이 중 몇몇이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의 등을 때리는 놀이를 시작한다. 이것을 보고 선생님은 다시 4분단 쪽으로 가서 수업을 진행하지만 아이들은 숨어서 놀이를 계속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게임에 져서 엎드리는 순간 갑자기 1,2분단에 앉은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일어나서 그 아이의 등을 때리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제 상황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실에 3일간 설치했던 CCTV에 찍힌 이 장면은 지난 10월 21일 KBS의 시사다큐멘터리<추적60분- 절망하는 아이들, 분노하는 교사>에 방영된 내용이다. '교실 붕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최근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는 교육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해낸 이 장면은 기성세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이 화면이 제작진의 부탁으로 쉬는 시간에 일어났던 일을 재연한 것임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화면 속의 일들이 평소에도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중국 시골의 초등학교와 한국 도시의 중학교. 전혀 장소의 다른 두 교실이지만 사실 아이들의 행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생님이 한번 말해서 듣는 법이 없고 윽박지르고 쫓아다녀도 잠시 조용해질 뿐. 또 금방 모든 것을 잊은 표정으로 딴 짓을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이나 반성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선생님들에게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의 수업시간, 한 아이가 '나한테는 너무 어려워서 못쓰겠다'며 교실을 나서지만 문 앞에서 선생님에게 저지 당한다. 마찬가지로 <절망하는 학생, 분노하는 교사>에서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 할 궁리만 한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중학생들의 모습을 본 기성세대들은 교사와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활동력이 왕성하고 모두 개성이 다른 수 십 명의 아이들이 비좁은 교실에서- 그것도 고분고분하게- 갇혀있기를 바라는 게 더 무리가 아닐까?

<책상 서랍 속의 동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하얀 글씨만 빈틈없이 정렬되어있던 칠판에서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두 한 자씩 적은 보라색 天 초록색 水 파란색 名 그리고 '웨이 선생님'이라는 글자들이 꽃처럼 피어난다. 아직 글씨를 못쓰는 한 아이는 정말 붉은색 분필로 꽃을 그렸다. 크기도 색도 제 각각인 글자들이 서로 어울려 칠판에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며 모두 똑같은 글자를 같은 크기 한가지 색으로 쓰게 하는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다큐같은 영화 vs 영화같은 다큐          

<책상 서랍 속의 동화>가 다큐멘터리적인 영화 스타일로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는 호평을 받은 반면에 <절망하는 아이들, 분노하는 교사>의 일부 화면이 연출된 것이라는 의혹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는 얼마나 사실인 척 할 수 있고 다큐멘터리가 허용할 수 있는 극적 연출은 어디까지 일까? 일단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 100% 허구도, 100% 사실도 없다는 것만 잊지 말자.

김재은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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