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육부는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학원 옥외가격 표시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학원 옥외가격 표시제’란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8조 1항 제2호에 따라 학원이 건물이나 학원 출입문 주변에 교습료를 공시해야하는 제도를 말한다. 17개 시·도 교육청 중에선 충북 교육청이 가장 먼저 이 제도를 의무화했고 대구교육청이 그 뒤를 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대구에 이어 지난 7월부터 학원들의 옥외가격 표시를 의무화했다.

제도를 시행하는 지역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청이 만든 교습비 게시표가 알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목, 교사의 능력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교육기관의 성질을 간과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학원가에서는 정부가 ‘보여주기식’ 정책만 펼친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학생과 학부모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공지하긴 했지만 보는 사람 없어...
학부모들 “있는지도 몰랐고 봤어도 신경 안 썼을 것”

서울시교육청이 학원 운영자들에게 발송한 안내문에 따르면 교습비 게시표는 학습자가 학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발견하기 쉬운 장소에 붙어 있어야 한다. 서울의 최대 학원 밀집지역인 강남구 대치동에는 많은 학원들이 조례에 따라 교습료를 공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학습자들이 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건물 출입문 등 눈에 띄는 곳에 교습료를 명시한 곳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은 학원 내 구석진 벽면, 책장 옆 등 주의 깊게 찾아봐야 볼 수 있는 곳에 교습료를 게시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총 교습시간과 교습료가 분 단위로 표시돼 월 단위로 학원비를 비교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A학원’ 입구. 액자에 담긴 교습비 게시표는 주의 깊게 찾아봐야 볼 수 있는 곳에 붙어 있다(왼쪽). 대치동에 위치한 또 다른 ‘B학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학원 교재를 넣은 서랍장 옆면에 교습비 게시표가 붙어 있다(오른쪽).

교육청에 따르면 학원은 교습시간을 분 단위로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원들이 요일단위, 주 단위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게시물을 통해 학부모나 학생들이 교습비를 한 번에 알아보기란 어려워보였다. 학원마다 천차만별인 교습내용과 교습시간, 교재비도 게시표에 자세히 담겨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교습비 게시표를 보고 학원에 오는 학부모나 학생은 거의 없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숙(40)씨는 “학원 들어오는 계단에 교습비가 게시돼 있지만 이것을 보고 들어오는 학부모님이나 학생들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봐도 모르겠다는 학부모님들은 계시죠”라고 말한다. 학부모들도 교습비 게시표가 있는지 모르거나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이영희(45)씨는 보통 지인을 통하거나 전화상담 등을 통해 미리 교습료를 알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습비 게시표는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가격을 미리 알고 가지 않아도 상담을 받으면 교습비를 알 수 있기에 교습비 게시표가 필요하지 않아요.”

학원은 식당이 아니야…수업의 질이 더 중요해

학부모들이 교습비 게시표를 보지 않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학원을 선택할 때 가격보다 수업의 질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김진숙(48)씨는 “아이들 학원을 알아보러 다녀도 가격에는 큰 차이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와 잘 맞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업을 선택했어요”라고 말한다. 다른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자녀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 선생님의 강의력과 유명세를 학원 선택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조재민씨도 “비싼 학원도 다녀보고 저렴한 학원도 다녀봤지만 성적에 큰 차이는 없었다”며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와 맞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수업의 내용이 학원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은 같은 동네에 있는 학원들이 이미 서로 경쟁하며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한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들은 고등부 수업의 경우 대부분 월 평균 30~40만 원의 교습료를 받고 있다. 학원 관계자들은 같은 동네에서의 경쟁은 일찍부터 있어왔기에 옥외가격 표시제로 경쟁이 더 심화되진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마포구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도연(58)씨는 “어차피 교육청이 정한 기준 때문에 동네 학원들의 수강료는 가격대가 거의 비슷하다”며 “옥외가격 표시제 때문에 가격을 낮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동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서문소영(46)씨도 “신경은 쓰이지만 양심적으로 학원을 운영하고 있기에 (옥외가격 표시제로 인해 가격을 낮춰야겠다는)부담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학원비를 인하해야한다는 부담은 없지만 간혹 학부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허위로 가격을 표시하는 학원들을 볼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결국 학원도 교육기관인 만큼 그 특수성을 반영해야한다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 학원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사교육 경감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 2국장 구본창(40)씨는 수업내용, 학년, 수업 난이도 등 다양한 기준으로 책정되는 교습비를 일괄적으로 게시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식당이 메뉴 가격을 게시하는 것과 학원이 교습비를 표시하는 것은 다르다”면서 옥외가격 표시제가 실질적인 사교육비 경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학원, 교습소 외부 게시 서식. 총교습시간과 총교습비가 분 단위로 표시돼 있어 학부모들은 한 달 교습비를 직접 계산해야 한다. (자료=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사교육 정책, 학생들을 학원으로 이끄는 근본적 문제를 타파해야

구 국장은 정부의 사교육 경감 정책들이 대부분 ‘비용 경감’에 초점을 맞춘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학원으로 가던 학생들이 EBS 강의나 방과후학교 수업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 학교 정규과정 외의 사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 학생들에게 EBS 강의나 방과 후 학교라는 선택지만 늘려주고 실질적인 사교육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수능과 70% 연계가 되는 EBS 교재 구입은 필수였다. 2014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3년 EBS 방송 참여자들은 연간 사교육비로 278만원을 지출한 반면 미참여자의 지출은 249.4만원으로 EBS 참여 학생들이 더 많은 사교육비를 냈다. 이는 학생들이 EBS 강의를 듣는 것이 사교육비 경감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방증한다.

▲2014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발표한 ‘EBS 방송 참여 유무에 따른 사교육비 차이’ 통계. EBS 방송 참여자들의 사교육 지출이 도리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자료=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교육통계센터 홈페이지)

2014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532명의 초·중·고 학부모들은 ‘우리나라 사교육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44.5%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답했다. 45.1%는 ‘큰 변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부모 이영희씨는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해마다 바뀌는 교육정책과 복잡한 입시전형을 꼽았다. 그는 “입시유형이 이렇게 복잡할 바에는 차라리 수능 성적 하나로 입시를 치르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며 “수 십 종류의 수시전형을 학교에서만 준비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교육이 보충학습을 넘어 전반적인 대학입시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사교육의 원인에 대한 논의는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현실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학원 옥외가격 표시제’에 대한 비판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입시에 대한 부담이 줄지 않은 상태에서 옥외가격 게시표를 보고 더 저렴한 학원을 찾는 것이 학생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8%만이 앞으로 학벌주의 사회가 약화될 것으로 바라봤다고 밝혔다. 나머지 응답자 중 51%는 학벌주의 행태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36.2%는 더 심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대학 서열화에 대한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 국장은 “사교육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성적 평가제도, 특히 대학 입시에서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사교육 경감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놨지만 번번이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올해 초 교육부가 내놓은 통계를 보면 사교육비 총액은 최근 6년 간 아주 미세하게 감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사교육의 규모가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할 만큼 줄어들었는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고 꽤나 많은 돈을 사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월 내놓은 ‘2016 청소년 통계’를 보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1인당 월평균 47만 원, 중학생은 39만 원, 초등학생은 28만 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사교육에 뛰어든다.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학벌주의 행태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들은 바위에 계란치기일 수밖에 없다. 외부에 학원비를 표시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은 백년대계, 교육 정책이 고민해야 할 것은 앞으로 백년 후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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