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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천덕꾸러기, 표석의 눈물
심소희 기자 | 승인 2016.09.13 13:58

거리를 걷다보면 삼각형 모양의 검은 돌이 눈에 띤다. 역사적 사실을 기념해 놓은 표석이다. 서울시는 3년 전 문화유산 터나 역사 유적지에 세워진 표석의 오류를 올해까지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과연 대한민국 역사 지키기의 현 주소는 어떨까? 2010년 스튜디오홀호리가 주관한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프로젝트에 나와 있는 표석 54곳 (중복 2곳; 우미관, 제중원)을 기준으로 관리 실태를 취재했다.

특별한 점 없이 양호한 상태인 곳은 52곳 중 26곳에 불과했다. 7곳에서는 표석을 찾을 수 없었다. 불교계 독립운동의 중심이 됐던 곳인 ‘독립운동 유적지 유심사 터’는 ‘안국역 3번 출구 중앙고등학교 정문 전 주택가 우측’에 있다고 쓰여 있었다. 중앙고등학교 앞 주택가 골목을 20분가량 샅샅이 뒤졌지만 표석은 찾을 수 없었다. ‘유심사 터’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자 좀 더 자세한 위치 정보가 나왔지만 그 자리에서도 표석은 찾을 수 없었다.

▲2010년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이트에 있는 사진에서 ‘독립운동 유적지 유심사’ 표석이 우물가 옆에 있다 (왼쪽). 2016년 현재 같은 자리에 ‘독립운동 유적지 유심사’ 표석이 사라지고 없다 (오른쪽).

드라마 ‘다모’의 주 배경이 되었던 ‘좌포도청 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전 표석 사진이 검색됐지만 현재 ’종로 3가역 15번 출구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선극장 터인 인사문화마당에는 식당과 푸드트럭이 들어차 있었다. 조선극장 터 인근에서 일하는 홍성래(56)씨는 “2년 전 쯤에 자동차가 표석을 들이 받아서 두 동강이 났다”며 “그 이후로 표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사용 집 터, 원각사, 혜민서 터, 훈련도감 터라고 명시된 장소에서도 관련 표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표석 관리가 불량한 곳도 3곳 있었다. '평창터' 표석 중심부에는 새의 오물이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린 자국이 있었다. 오물이 단단히 굳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가회동 주민센터 부근에 있는 ‘손병희 집 터’ 표석 앞에는 차량이 서 있었다. 이 부근을 3번 정도 다시 방문했는데 매번 같은 위치에 같은 차량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표석 앞을 주차 공간으로 삼는 듯 했다.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던 ‘도화서’의 표석은 우정총국 앞뿐 아니라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뒤편에서도 발견됐다. 우정총국 앞의 도화서 터가 관청이었다면 을지로입구역 부근의 도화서 터는 교육기관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표석의 내용만으로는 그 차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을지로입구역 부근 표석 옆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끼워져 있었다. 표석 뒤편에도 종이 상자와 기계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신나희(26)씨는 “지저분해서 잘 보지 않게 된다”며 “쓰레기 때문에 ‘도화서’ 자체의 이미지도 안 좋아지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평창터’ 표석에 새의 오물이 묻어 있다(왼쪽). ‘손병희 집 터’ 표석 앞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가운데). 을지로입구역 ‘도화서’ 표석과 지하철 입구 틈새에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끼워져 있다. 표석 뒤편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오른쪽).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위치 정보가 잘못된 경우도 3곳 있었다. '시위병영 터' 표석은 '숭례문 앞 30m 지점의 부영빌딩 앞 화단'에 있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실제로 시청역 9번 출구에서 중앙일보 빌딩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견됐다. ‘제중원 터’ 표석은 ‘2호선 을지로입구역 5번 출구 외환은행본점 화단 뒤편‘에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언급된 장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광혜원 터’ 표석이 있는 장소인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헌법재판소 오른쪽 화단 내‘에서 ’제중원 터‘라는 이름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광혜원은 제중원의 옛 이름이었다. ‘금위영 터’ 표석은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직진 현대본사 건너편의 매일유업 건물 앞’에 있다고 나타나 있었는데 현재 매일유업 건물은 삼환기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표석도 삼환기업 건물 앞 화단에 있었다.

표석의 위치 정보가 모호해 찾아가기 어렵거나 표석을 발견하기 어려운 곳도 9곳이나 됐다.  1912년에 개관한 뒤 1000명을 수용할 정도로 큰 극장이었던 우미관은 맥도날드 종로 2가점 앞에 있다고 나와 있었다. 현재 맥도날드 종로 2가점은 폐업해 공사 중이었다. 표석은 잔디밭 안에 있었는데 풀이 길게 자라 표석에 쓰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우미관’ 표석 내용이 풀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1936년 개관 후 한국 영화 80년의 역사가 담긴 '국도극장'은 현재 호텔국도로 바뀌었다. 표석은 호텔국도 건물의 농협 옆에 남아있다고 쓰여 있었지만 현재 농협은 없어진 상태였다. 표석은 호텔국도 우측 골목길 안에 있었는데 조형물에 가려져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김영호(57)씨는 “저기에 표석이 있는 줄 몰랐다. 저쪽 골목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중요한 역사가 깃들어 있은들 눈에 안 띄게 해 놓으면 어떡하나”라고 덧붙였다. 3.1독립운동 기념 터 두 곳, 금위영 서영, 내자시터, 마포전차 종점, 어영청, 장악원을 설명하는 표석도 위치가 불분명해 찾아보기 어려웠다.

▲골목길 바깥에서 사람들과 조형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국도극장 터’ 표석(왼쪽) 반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 안 쪽에 자리한 ‘국도극장 터’ 표석(오른쪽)

역사 현장이 우수하게 보존된 곳도 있었다. 탑골공원, 보신각, 나석주 의거 터, 강우규 의거 터 4곳이었다. 탑골공원 입구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자세하게 설명된 안내판이 있었다. 공원 내부에도 유적지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적힌 별도의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고 그중 일부는 안내판에 QR코드가 붙어 있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QR코드를 인식하자 ‘문화유산정보서비스’ 페이지로 연결됐다. 유적의 세밀한 부분을 확대해 볼 수 있는 사진과 관련 문화재 정보 등이 적혀 있었다. 3.1 독립만세시위의 중심지이자 4.23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인 보신각 앞에도 한국어와 외국어로 적힌 안내판이 함께 비치돼 있었다. 보신각을 배경으로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멕시코인 다니엘라(21)씨는 “영어로 적힌 안내판이 있어서 이 장소가 어떤 곳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나석주 의거 터’가 있는 장소인 외환은행 본점은 현재 하나은행과 통합돼 ‘KEB하나은행’으로 바뀌어 있었다. 표석은 KEB하나은행 본점 우측면에 있었는데 그 옆에 동상이 있어서 덩그러니 표석만 있는 것보다 훨씬 눈에 잘 띄었다. 옛 서울역사 앞에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밑에는 그가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순국 직전에 남긴 유시가 적혀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울역 앞을 지나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유시를 읽었다.

스튜디오홀호리의 서석준(41) 대표는 “서울시의 행정구역 변경 등으로 인해 표석의 위치 정보가 바뀔 수 있다”며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 바뀐 위치 등의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종각역 부근에 있는 YMCA 표석을 찾아 나선 날이었다. YMCA 빌딩 1층에 있는 표석에 눈길이 가던 찰나, 발걸음이 멈칫했다. 표석 앞에는 만취한 노숙자가 죽은 듯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표석을 들여다 볼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 곳이 과거 학생단이 3.1 독립운동을 준비했던 곳이라는 자부심도 기억도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듯했다. 역사의 자랑스러운 흔적인 표석은 마치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우연히 보물을 발견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잠시 눈길을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표석은 그저 돌 일뿐, 그것에서 어떤 자부심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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