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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지 않은 대학가 ‘걷고 싶은 거리’
노유정 기자 | 승인 2016.08.24 00:02

대학가의 ‘걷고 싶은 거리’가 걷고 싶지 않은 곳이 됐다. 매일 거리를 지나다니는 학생들조차 걷고 싶은 거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아는 학생들도 걷고 싶은 곳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사업은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998년 처음으로 시행됐으며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지정한다.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시가 지정한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많이 걷는 길로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대학가의 ‘걷고 싶은 거리’들은 사정이 달랐다.

“여기가 걷고 싶은 거리라고요? 전혀 걷고 싶지 않은데요.”

이기쁨(24.여)씨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생으로 6년째 학교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번은 가는 학교 앞 참살이길이 ‘걷고 싶은 거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쓰레기도 많고 입간판도 있어서 지나다니기 불편하고, 사람들은 많은데 길이 좁아요. 걷고 싶은 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땐 ‘왜 저기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명 대학가의 걷고 싶은 거리 네 곳을 걸었다. 고려대 앞 성북구 참살이길, 연세대와 이화여대 인근 서대문구 명물거리, 홍대입구역 인근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숙명여대 앞 용산구 청파로47길(구 효창공원길)이다. 이 씨를 포함해 기자가 만난 각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은 모두 ‘걷고 싶은 거리’를 걷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왜 대학가의 거리는 유독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

▲서대문구 명물거리(왼쪽), 용산구 청파로47길(오른쪽)

우선 대학가 걷고 싶은 거리 네 곳 모두 쓰레기가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빨간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 아래에 보란 듯이 쓰레기봉투가 버려져 있는 곳이 절반이었다. 성북구 참살이길과 서대문구 명물거리에는 길가에 흩어진 쓰레기도 눈에 띄었다. 담배꽁초로 가득 찬 하수구 옆에는 토사물의 흔적이 보였다. 윤수정(27.여)씨는 “신촌 명물거리와 홍대 걷고 싶은 거리는 외국인 홍보 책자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망신감이다”라며 두 거리를 ‘토사물 거리’라고 평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걷고 싶은 거리’의 풍경은 쓰레기뿐만이 아니다. 성북구 참살이길의 가로수에는 가게에서 내놓은 듯한 대걸레가 걸려 있었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의 경우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단속하는 사람은 없었다. 용산구 청파로47길의 공사 중인 가게 앞에는 나무 파편과 깨진 유리조각이 굴러다녔다. 거리를 걷던 기자는 엄지발가락만한 초록색 유리조각을 밟았다.

불법주차는 모든 거리에 만연하다. 특히 용산구 청파로47길의 경우 1km의 구간에만 13대의 오토바이가 주차돼 있었다. 100m마다 한 대 이상 꼴이다. 길가에 서 있는 기자 바로 앞에 멈춰서는 오토바이도 있었다. 성북구 참살이길에서는 인도 중간까지 주차된 차들 때문에 길을 걷는 사람들이 중간에 멈춰 줄을 서서 지나가야 했다.

가게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입간판도 예외는 없다. 3월 24일 수정된 서울시 옥외광고물 조례에 따르면 업소 앞 1m 이내에 설치된 입간판은 허용됐지만, 1m 이내라도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보행자 통로일 경우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네 거리에는 5~10걸음마다 한 개 이상의 입간판이 서 있었다. 용산구 청파로47길에는 쓰러진 채 방치된 입간판이 보였다.

거리 자체의 특성도 보행환경에는 중요하다. 숙명여대 재학생인 한동아(23.여)씨는 자신이 매일 다니는 청파로47길을 ‘걷고 싶은 거리’라고 부르는지 몰랐다며 “이름을 완전히 잘못 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르막길이고 거리 폭이 굉장히 좁아서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청파로47길에는 세 명이 나란히 걷기 힘든 구간이 있다. 성북구 참살이길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려대 재학생인 김현지(25.여)씨는 “참살이길 인도 폭은 물리적으로는 세네 명까지 일렬로 걸을 수 있는 정도지만, 평소에는 두 명이 이상 나란히 걷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의 길가에는 20여 개의 건물이 있다. 그중 1층에 자리한 술집과 고깃집이 10곳가량 됐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5시쯤 거리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고기 냄새와 음악 소리로 가득찼다. 홍익대 학생인 유혜림(23.여)씨는 이곳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대의 다른 골목에 있는 가게들에 비해 이 거리는 술집이나 프랜차이즈만 즐비해서 너무 유흥가 같아요.”

▲성북구 참살이길(왼쪽)과 홍대 걷고 싶은 거리(오른쪽)

 다른 거리들도 비슷하다. 용산구 청파로47길은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점령해 있었다. 1km가 안 되는 구간에 1층에 자리한 음식점, 카페, 화장품 가게와 핸드폰 대리점 등 유명 프랜차이즈 상점만 30개를 훌쩍 넘었다. 오후 6시에 방문한 서대문구 명물거리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의 풍경과 유사했다. 곳곳에 자리한 고깃집에서 풍겨나오는 고기 냄새와 프랜차이즈 화장품 가게에서 틀어놓은 아이돌 노래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각 구청의 관계자들은 주기적으로 거리를 관리한다고 답했으나, 관리 자체의 어려움도 있다. 서대문구 지역활성화과 최민하 계장은 “명물거리는 일반 거리와 청소 체계가 같고, 그 앞의 연세로는 현장사무소가 있어 현장 직원들이 관리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말에도 쓰레기차가 골목마다 다니며 쓰레기 수거를 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유동 인구가 정말 많다”고 했다. 성북구청 건설관리과 광고물팀 박석주 주무관은 불법 입간판에 대해 “민원이 워낙 많이 들어오고, 주기적으로 나가서 계도도하고 과태료도 부과한다”고 했지만, “가게들도 수익과 연관되다 보니 과태료를 물고도 다시 꺼내놓는 경우가 있어 마찰이 있는 상태다”라고 답했다. 그는 “보행자들의 보행을 방해하거나 위협할 경우 입간판을 강제철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보는 기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윤수정 씨의 말처럼 서대문구 명물거리와 홍대 걷고 싶은 거리의 경우 서울 메트로에서 제공하는 서울 관광안내지도에 ‘신촌이대거리’와 ‘홍대거리’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었지만, 상세한 위치 표시나 거리 설명은 없었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서울시 도시계획위원)는 저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에서 ‘걷고 싶은 거리’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걷고 싶은 거리’의 의미가 애매하기 때문”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많은 시민들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이라는 것인지, 지금은 아니지만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겠다는 공언인지 뜻이 분명치 않다.’

네 곳의 대학가 ‘걷고 싶은 거리’를 지금 시민들이 걷고 싶어하는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리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거리마다 하수구에는 담배꽁초가 꽉 차 있었고, 길거리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는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과 과자 봉지가 대다수였다. 고려대 재학생 정여진(24.여)씨는 “새벽에 미화원 분들이 청소하기 전에 가면 아이스크림 봉지나 맥주캔같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다”며 “무단투기를 하지 않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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